아주 오랜만에 구워 본 바나나 넛 머핀

비단 바나나 넛 머핀뿐만 아니라, 머핀 자체를 너무 오랜만에 구워봤다. 블로그에 제대로 얘기를 안 한 것 같은데, 백 개에 가까웠던 짐상자들 가운데 하필이면 모든 베이킹 틀이 들어있던 것이 증발되었다. 결국 실갱이끝에 미국쪽의 배송업체에서 250불을 물어주기는 했지만, 내가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대로 견적을 뽑았던 것은 거의 500불에 가까웠고, 그것도 같은 제품이면 가장 싼 것을 골라서 그 정도의 가격이 나온 것이었다. 못해도 800불 정도는 했겠지, 지난 3,4 년 동안 꾸준히 모아왔던 것이니까.

어쨌든, 없어진 건 없어진 것이고 또 우리나라 오븐 크기랑 다른 것도 있어서 어차피 쓰지 못하는 것도 있고 하니까 이런저런 것들을 방산시장에서 샀는데,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아무개님께서 쓰던 머핀팬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머핀팬은 사지 않고 기다리다가, 받아서 두 번 연속 아주 신나게 바나나 넛 머핀을 구웠다.

굳이 바나나 넛 머핀을 두 번이나 구웠던 이유는, 사실 냉동실에 익어서 처치 곤란인 바나나를 굉장히 많이 얼려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마트에만 가서 다른 곳의 바나나 판매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아마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적어도 너무 익은 바나나를 진열해놓고 그것도 최소 여섯, 일곱개 달이 한 송이 밑으로는 잘 안 팔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바나나는, 그 익는 방식(과일이 익어서 단맛을 지니는 건, 가지고 있는 녹말을 당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만을 놓고 본다면 다른 여느 과일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과일은 나무에서 떨어지면 익지 않고, 또 어떤 과일은 더 익는데, 바나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한다. 그러니까 파란 바나나를 따서 두어도 결국에는 익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무에서 먹을 수 있게 될 만큼 익혀서 먹는 건 또 다른 맛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파란 바나나도 먹을 수 있게 된다. 어느 가게든지 바나나를 수입해서 들여오는 곳에서는, 노란 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바나나,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더 익은 바나나를 따서 들여오는 과정에서 익히든지, 아니면 들여와서 익혔다가 내놓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분명 그런 상태였을 바나나가, 진열대에 오를 때에는 꼭지 끝에 파란 물이 약간 남아있거나, 아니면 아예 없고 껍데기에 갈색 또는 검정색 점이 콕콕 박히기 시작하는 상태다. 이런 바나나는 사면, 신맛이 돌고 무르기 시작하는, 그러니까 맛이 변하는 단계까지 채 3일을 못갈 것이다. 물론, 냉장고에 넣으면 껍질은 까맣게 변해도 맛은 더 변하지 않지만 혼자 살아서 하루에 많이 먹어야 두 개 먹는 사람은, 이런 상태의 바나나를 최소한 여섯 개씩 사면 결국 너무 익은 바나나를 억지로 먹거나, 아니면 그 상태에서 동면시켜 머핀팬이 오는 그 날을 기다리며 잠들어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웃기는 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리 가격표까지 다 붙여놓은 바나나는 대부분 여섯 개 정도가 붙어있는 것이 한 송이로서 가장 작은 편이다. 그래서 가끔, 더 작게 떼어내려고 하면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 뭐 바나나 하나 가지고 유난 떠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은 선택의 여지가 적어지는 셈이다. 식구가 열 명이 아니라면, 조금 덜 익은 바나나를 사다가 두고 익히면서 먹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아주 미약하다고 해도… 사실 바나나는 수입과일이라 비싸지는 않지만 아주 싼 편도 아니다). 오늘 밤에도 이마트에 들렀는데, 이제는 그냥 먹지 못할 상태의 바나나를 봉지에 담아 떨이로 팔고 있었다. 셰이크나 스무디 만들어 먹기에도 너무 벅찬 양이었다. 생각 좀 하고 장사하면 안 될까 싶다. 안 들어도 되는 인사만 연신 하지 좀 말고.

평화로운 머핀 얘기를 하려다가 쓸데없이 흥분했는데, 가라앉히고 다시 머핀 얘기로 돌아가보자. 뭐 솔직히 조리법이나 기타 다른 것에 대해서 할 얘기는 별로 없다. 어차피 머핀은 오븐을 예열시키는 동안 잽싸게 반죽을 준비해서 구울 수 있는, 그야말로 quickbread이다. 컵케잌과 머핀은, 같은 틀을 쓸지는 몰라도 접근 방법은 다른데, 컵케잌은 큰 케잌을 위한 반죽을 만들어서 머핀팬에 나눠 담아 작은 케잌으로 굽는다고 설명해도 별 무리가 없는데, 이럴 때 쓰는 제누와즈와 같은 경우 베이킹 파우더를 쓰기도 하지만 계란을 물 중탕에 올려 거품기로 세워주는 방법으로 반죽에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보다 제대로 된 방법이고, 머핀의 경우에는 화학적 팽창제(chemical leavener)인 베이킹 소다를 쓴다.

조리법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고, 첫 번째 구웠던 것은 녹인 버터와 피칸, 그리고 우리밀 흰밀가루를 썼고, 그 다음에 구웠던 건 버터를 녹이기 귀찮아서 카놀라유와 아몬드를 썼다. 녹인 버터와 카놀라유는 점도가 달라서, 카놀라유를 같은 양의 버터만큼 쓰면 너무 기름기가 많아지는 것 같으므로 반 컵 정도로 줄여서 써도 괜찮을 것 같다(곧 그렇게 해서 구워볼 생각이다). 그리고 두 번째 구웠던 머핀에는 빵 구울 때 쓰던 구례 통밀을 썼는데, 이게 워낙 곱게 갈아놓은 밀가루라 그런지 반죽이었을 때도, 그리고 구웠을 때에도 통밀의 뻣뻣한 느낌이 없었다. 그러므로 흰밀가루를 위한 조리법에 같은 양을 써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어째 통밀이 통밀 특유의 거친 느낌을 안 가지고 있는 건 좀 섭섭하다.

아이스크림 스쿱이나 국자를 이용해서 나눠담는데, 워낙 성질이 급해 공을 안 들이는 사람이라서 아주 딱 맞아떨어지게 못 나눠 담는 건 내 문제니까 조금 반성이 필요하고, 이런 종류의 머핀팬은 가급적이면 작은 오븐에도 들어갈 수 있게 날개를 안 달아놓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말 너무 여유가 없어서 중간에 팬을 돌리거나 다 구워져서 오븐에서 꺼낼 때 반죽을 건드릴 확률이 너무 높다. 잔뜩 만들어서 부모님 드리고 몇 개를 얼려두었는데, 그 상태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던져서 1분만 돌리면 따끈따끈하게 먹을 수 있다. 바나나며 견과류가 들어가서, 아침으로 딱 저것만 먹기에도 좋다. 물론 아침 머핀에는 커피나 차 보다는, 우유가 훨씬 낫다.

(맨 처음 사진은, 적당히 식힌 머핀을 팬째 뒤집어서 빼낸 것. 하나씩 꺼내는 것보다, 저렇게 뒤집어서 다 꺼낸 다음 잽싸게 뒤집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

 by bluexmas | 2009/10/15 10:21 | Taste | 트랙백 | 덧글(22)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0/15 11:04 

와 바나나머핀이다~ 머핀종이를 안 끼우고 구우니까 더 예쁘네요!

그리고 뒤집는거 잘 배웠어요~ ^^ 저 이때까지 젓가락으로 손 데어가면서 하나하나 꺼냈거든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2

아 사실은…. 그 종이는 머핀에는 필요가 없어요. 컵케잌 만들때만 필요하지요. 저는 그래서 종이를 쓰지 않아요. 잽싸게 뒤집어서 빼고 다시 뒤집으면 되니까 그 방법이 훨씬 편할거에요. 잠시 식혔다가 빼셔도 되구요. 적어도 5분 정도는 그대로 식히는 것이 좋답니다^^

 Commented by shortly at 2009/10/15 11:06 

머핀.. 저는 오븐에 빵 구워 본 적이 상당히 오래 된 것 같네요- 한때는 집에 밀가루가 항상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밀가루를 잘 안 사 놓으시게 된 이후부터는 감히 사 와서 시도하기가 쉽지가 않게 되었어요(게다가 집에 설탕도 없는) . 건강한 빵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은데- 고민해봐야겠네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3

네, 우리밀도 많고, 적당한 정도의 지방에 적당한 정도의 설탕이면 사실 빵이 굳이 나쁠 이유는 없지요. 맛있게 만들어서 드시라고 권해보세요. 그러면 생각이 바뀌시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Gony at 2009/10/15 11:11 

우와~ 저도 나중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베이킹 한번 배워보고 싶네요. ㅎㅎ 맛나겠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3

대기업 생활이 뭐 여유가 없기는 하죠?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0/15 12:02 

아침머핀으로 우유를 곁들여 먹으면 입에서 부드럽게 살살 녹겠네요

아호 저는 식탐을 참고 아침도 샐러드먹고 나가야겠네요 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3

아이고 아침에도 샐러드를 드시면 금방 질리실텐데-_-;;;; 단백질도 많이 드세요. 탄수화물도 꼭 필요하구요~

 Commented by 샐리 at 2009/10/15 13:30 

마, 맛있어 보입니다. 추릅추릅추릅~~~ ;ㅁ;ㅁ;ㅁ;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4

아이고 드릴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요…

 Commented by 새침데기 여왕님 at 2009/10/15 14:22 

오, 좋은거 알고 갑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4

네, 제가 올린 글이 도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저도 기쁘지요^^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10/15 15:02 

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을 쓸 때는 반 정도로 줄여 쓴다고 합니다. 컵 단위가 아니라 무게 단위로 줄이는 것 같더군요. 이전에 브라우니 만들 때도 버터 대신 포도씨유를 넣으면서 80g 들어가는 것을 40g으로 줄여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ㅠ- 식감차는 나겠지만 버터 꺼내기 귀찮을 때는 옆에 있는 액체 기름을 쓰는 것이 편하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5

사실은 모두 무게로 달아야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또 집에서 편하게 만들어 먹는건데 굳이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요. 다음에는 조금 더 줄여서 구워봐야겠어요.

 Commented by 나비 at 2009/10/15 17:53 

오호, 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을 쓸 때는 줄여쓰는 거였군요! 좋은 것을 알아갑니다~ 저도 너무 익은 바나나 으깨서 넣은 머핀 좋아해요. 간단하게 케이크 만들어도 좋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5

혹시 바나나가 씹히는 걸 더 좋아하시면, 반에서 1/4 정도는 그냥 포크로 으깨서 넣으셔도 괜찮아요. 저는 씹히는 느낌이 별로 안 좋아서 그냥 다 물처럼 만들어서 넣지요.

 Commented by 아리난 at 2009/10/15 21:17 

포스팅을 보면서 자주 느끼는건데 베이킹을 비롯 음식하실때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지는 원리라든가 재료의 속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시면서 하시는것 같아서 배우는게 많아요ㅎㅎ

꾸준히 모아오셨다는 베이킹틀이 없어졌다는건 제가 다 아깝고 속상하네요;;;;;;

아직은 베이킹에 대해 잘 몰라서 똑같애 보이는데 뭐가 다른거지 이름만 다른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머핀과 컵케익의 차이에 대해 왠지 속시원히 알게되서 좋았어요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8

아, 제가 그냥 그런 부분을 좋아해서 책도 읽고 텔레비젼도 많이 보거든요. 요리의 원리를 말해주는 것들을 좋아해요. 없어진 베이킹틀은 필요한 만큼 다시 사기는 했는데, 잘 쓰던 파이렉스가 없어져서 좀 속상하지요. 사려고는 하는데 어디에서 사면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T_T

사실 머핀과 컵케잌은 개인적으로 전혀 다른 빵이라고 생각해서요. 컵케잌이 더 손이 많이 가지요.

 Commented by Amelie at 2009/10/15 22:46 

아 맞아요. 작은 오븐의 경우는 팬 위치를 더 자주 바꿔주어야 하는데..

쿠키나 머핀 구울 때 마다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꼭 한두번씩 반죽을 건드리게 되더라고요.

바나나의 대한 이야기 처음 들었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29

집에 있는 컨벡션 오븐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아요. 쿠키를 구우면 들쭉날쭉… 그래도 머핀은 조금낫네요. 정말 조심해서 반죽 안 건드리기가 힘들죠. 잘못하면 또 델 수도 있구요.

 Commented by 레일린 at 2009/10/16 01:05 

우와 베이킹도 하시는군요.

근데 바나나는 정말 먹기 힘들어요.

좀 덜 익은건 텁텁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입안에 남아있고..

너무 익은 건 무르고 까만 점이 보기 싫고…..

그래도 여기선 조금씩 팔아서 참 다행이에요 수퍼마켓 가서 그냥 사고싶은 만큼만 똑똑 떼와도 암말도 안하고..(무게로 파니까요) 전 한번에 3-4개만 사놔도 나중에 막 물러져서 먹기 싫고 그런데…한아름씩밖에 안판다니^^;;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7 23:30

저도 미국에 있을 때에는 바나나를 파란채로 사서 한참 익혀서 먹었어요. 그래도 정말 거기에서는 몇 개씩도 살 수 있으니까 참 좋더라구요. 벌써 까만 점이 박힐 때가 되면 신맛도 좀 나구요. 그래도 포타슘이 많이 들어 있어서 몸에, 특히 운동할 때 좋으니까 간식으로 하루에 두세개씩 드셔도 좋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