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등심님 영접 후기-청담동 시골집
두 사람이 밥 한 끼 먹는데 드는 비용이 다섯 자리를 넘어선다면, 때로 이성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 어떤 이유로든지 이성을 잠시 잃고, 그 사이에 지름신이 강림해야 한다.
20킬로미터가 넘는 달리기 정도라면, 이성을 잃고 지름신이 강림하기 충분한 상황이다. 절반을 조금 넘게 뛰고 나자, 점심으로 꽃등심정도는 먹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머지 반을 계속 꽃등심 생각을 하면서 달렸다. 어디를 가야 되나?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결승점을 통과하는데 시골집 생각이 났다.
사실은 좀 뜬금없었던 게, 시골집에는 고작 몇 년 전 딱 한 번 가보았을 뿐이고, 그때도 내가 돈을 내지 않아서 별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밖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적이 거의 없어서 요즘 식당에서 파는 고기의 맛이 어떤지도 잘 모르고, 특히나 비싼 한우님 정도쯤 되면 상상력 밖이라 짐작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날을 빌미삼아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오후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이었는데, 식당은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이 식당이 밖에서는 작아보여도 미로처럼 안쪽 공간이 들어차 있는지라 바로 앉을 수 있었다. 가격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메뉴판을 보니 1인분 160그램에 52,000원? 최소 2인분은 시켜야 되니 일단 기본 고기값만 100,400원. 뭐 자주 이런 곳에서 밥 먹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그 정도 돈이라면 고기를 굽는 것보다는 다른 음식을 먹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어쨌든, 그렇게 비싼 고기가 대체 얼마나 좋은지 보자, 라는 고기구경 자주 못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생각이 들었고 주문을 받는 여자분한테 따로 오천원을 찔러주었다.
곧, 특별히 좋은 것을 가져오셨다는 얘기와 함께 여자분이 고기를 들고 왔는데, 솔직히 돈을 안 찔러주면 어떤 고기가 나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고기가 정말 말처럼, 아니면 말만큼 좋은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마블링이 인상적이기는 했다. 생각보다 반찬이 많이 깔렸는데, 하나하나 맛을 보았으나 그렇게 인상적인 건 없었고, 무엇보다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굳이 이런 것까지 내올 필요는 있을까, 생각되는 것도 좀 있었다. 기억에 예전에 왔을 때는 선지가 든 찌개를 맛있게 먹었었는데, 나온 찌개에 든 선지조각에 숟가락을 찔러 넣으니 약간 과장을 보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선지가 원래 이런 것이었나?
숯불이 들어오고 고기를 두세점씩 굽기 시작했는데, 처음 두 세 번 정도를 신경 써 준 다음부터는 여자분은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았고, 나와 일행은 알아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나는 고기를 직업적으로 굽는 사람이 아니니까, 처음에 여자분이 구워준 것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기대했던 것만큼 연하면서도 나름 씹는 맛이 있었지만 쇠고기다운 진한 맛이 어째 부족한 느낌이었다. 물론, 고기라는 게 같은 동물에서 나와도 부위별로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갈비 같이 기름기가 많은 부위의 진한 맛 따위를 염두에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쇠고기라는 고기가 기본적으로 가진 풍미가 어딘지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한우맛을 잘 모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니, 그냥 한우라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고기맛을 음미해야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여자분은 더 이상 오지 않아서, 간신히 불러서 불판을 한 두 번 갈아서 남은 고기를 ‘셀프’ 로 구워먹었다. 공기밥을 하나만 시켰는데 역시나 고기값이 그 정도 하는 음식점의 밥으로는 부족한 느낌이었다. 원래 처음 몇 번 오신 다음에는 안 오시냐고 여자분한테 물어보자, 사람이 모자라서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곧 찌개를 더 가져다 주었는데 이번에 나온 선지는 그 전 것보다 조금 더 단단했다.
그럭저럭 잘 먹고 나가면서 물어봤더니, 내가 앉은 구역에 사람이 세 명 밖에 할당되지 않아서, 고기를 먹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고기를 구워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면 사람을 더 쓰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내가 너무 요식업의 생리를 몰라서 그런 것일까? 물론 고기 아니고도 여러가지 음식을 하니까, 그 손님들을 전부 시중드느라 고기에 신경 못 쓸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 돈을 주고 먹는다면 누구라도 그냥 밥만 먹고 가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대접받고 싶지 않나? 환풍시설이 잘 되어 있어도, 아무래도 고기를 굽는 건 고기를 굽는 것이니까 그냥 식사를 하는 사람과 고기를 먹는 사람이 쓰는 구역을 분리하는 것도 두 종류의 손님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는 구역에 한 사람만 전담으로 붙여놓아도 왔다갔다하면서 구워줄 수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이 깔린 반찬들 대부분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고 음식을 먹으니 반찬도 한 상 가득 깔리는 것이 그 돈에 걸맞는 대접을 받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그래서 한식을 먹으러 가면 반찬이 너무 많이 깔리는 것일까 싶은데, 고기 맛이 좋다면 많은 반찬은 고기맛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당 입장에서도 손님들이 반찬으로 배 채우는 것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게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나? 뭐 그래봐야 엄청난 차이는 없겠지만… 지지난주엔가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서 ‘불고기 브라더스’ 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고기야 이런 집과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정갈한 느낌의 반찬이 딱 적당한 가짓수로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우리 음식도 이런저런 시도를 안 하는 것은 아닌데 오래된 식당들은 이름이 알려지면 어쨌거나 손님이 많이 오니까 무엇인가 특별히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화폐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이라서,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식당이라면 그 정도의 가격에도 그렇게 아랑곳하지 않고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서비스랄지, 딸려 나오는 모든 음식 들을 논외로 하고, 나오는 고기만을 놓고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을까, 따져본다면 쉽게 그렇다는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은 나의 화폐가치라는 것이 보잘것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런 식으로 고기를 많이 먹으러 다니지 않아서 그런 식당에서 먹게 되는 고기의 질이나 전체적인 서비스가 어떤지 잘 몰라서인지 모르겠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기회비용의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그 근방에 몇 군데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점심 메뉴를 먹는 것이 개인 취향에는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뭐 어쩌면, 이제는 예전같지 않은데 이름으로 장사하는 집에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워낙 충동적으로 가서 찾아보지도 않았도, 먹고 와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가가 어떤지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불만족도가 지나쳐 돈을 괜히 썼나, 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실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금 만든 경험이었다.
아, 혹시나 했는데 공기밥은 따로 돈을 받았다. 그 정도 돈을 내고 고기를 먹는다면 공기밥에 돈 정도 쓰는 게 뭐 대수겠냐는 생각일까? 뭐 그렇게 따지면 그렇겠지만… 그리고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면, 고기는 전라도에서 가져온다고만 되어 있고, 어디라거나 어느 정도의 품질이라는 얘기는 없었다. 하긴, 이 정도의 이름값을 가진 집이라면 굳이 그런 것까지 여느 식당들처럼 내세워서 손님을 더 끌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 by bluexmas | 2009/10/13 11:13 | Taste | 트랙백 | 덧글(20)
가격에 비하면 좀 그렇네요. 저렇게 사람많은 곳 고깃집보다 방을 빌려야 하는 고깃집이 훨 낫지 않을까 싶어요(한정식 코스라던지). 저도 저런곳 가봤는데 정육점가격이라고 하면서 싸게 파는 척 하면서 죄다 비싼 고기만 팔고 삼겹살은 팔지도 않아서 당황스러웠어요. 별로 맛있지도 않고..
직원분의 맛있어지는 주문이 특별히 통하지 않았나봐요…
제가 다 씁쓸해요…
인테리어나 반찬수준..뭐라 딱집어 대단해보이지 않으니까, 고기질 자체로 승부하는 가게인것처럼보이려고..의도한 훼이크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