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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관료주의가 아니었다면 기록 갱신은 아니어도 두 시간 안쪽으로는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달리는 당일과 그 전날은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많이 마시면 결국 화장실에도 자주 가게 된다. 출발하기 10분 안쪽으로 화장실을 갔다 오면 두 시간 정도 뛰면서는 화장실에 안 가게 되는데, 이렇게 출발시간에 맞춰 화장실을 갔으나 서울 시장이니 중구청장이니 하는 사람들 소개와 훈시하는 순서 때문에 결국 출발한 것은 여덟시 이십 분… 결국 그리운 마장동에 이르렀을 때에는 자연의 부르심에 거부하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장거리를 달려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느 정도 뛰고 나서는 잠시라도 멈추면 다시 뛰는 게 굉장히 힘들어진다. 아마 후반부였더라면 더 이상 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10km를 넘길 때까지는 킬로미터에 5분에서 5분 30초를 유지해서, 이대로라면 한 시간 오십 분대나, 아무리 못해도 두 시간 안 쪽으로는 들어올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앞으로 곧 두 시간 페이스 메이커들이 지나가서 이상하다 싶었더니 결국 막판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아침에 우여곡절이 있어서 몸을 제대로 데우지 않고 뛰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5km 정도를 남겨두고 나서는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그래도 중간중간 맨소래담 스프레이의 도움을 입어 걷지는 않을 수 있었다. 원래의 계획은 마지막 3km 정도를 남기고 스퍼트다! 라는 것이었는데, 그 기점에서 비장의 마지막 무기, 하나 남은 에너지 젤을 쭉 짜서 삼켰으나, 세상에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_-;;;
뭐 삼만원 내고 티셔츠도 괜찮은 걸 받았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열악한 준비가 돋보였다. 일단 물을 5km마다 한 번씩 주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3km에 한 번씩은 줘야 되는 것 아니었을까? 조금씩이라도 물을 마셔야 돼서 결국 물병을 들고 뛰었는데, 이것 역시 기록이 처지는데 공헌을 했다. 나눠준 안내책자에는 무슨 영양식도 준다고 나와있던 것 같은데, 그 영양식이라는 게 마지막 5km를 채 못 남기고 하나씩 주는 바나나-_-;;; 아아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나 유치원 다닐 때처럼 바나나 귀해서 마라톤이나 뛰어야 먹고 그런 거 아닌데-_-;;;;
결승점인 서울숲 입구는 썰렁했고, 사회보는 사람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릴 뿐이었다. 코스는… 어차피 의미가 없는게 뛰다 보면 힘들어져서 어디를 어떻게 뛰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집에 와서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지만, 옛날에 자주 다니던 청계천부터 마장동, 학교 뒷쪽 길 이후로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코스가 어이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일단 강을 따라 난 자전거길 또는 산책로로 뛰기 때문에 좁고, 무슨 돌발사태가 벌어져도 차가 들어올 수 없으며, 제대로 통제를 못한 자전거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미친 듯이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썰렁한 서울 숲을 지나고 나서는, 왕십리 사거리에 와서 십 년 전 자취시절에 다니던 목욕탕을 찾아갔으나 망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왕십리 민자역사에 엄청나게 큰 ‘워터랜드’ 그 생겨서였고, 결국 거기에 가서 육천원을 내고 찬물에 몸을 식혔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성수대교를 건너 와서 모처에서 꽃등심님이라는 동물성 단백질의 왕을 섭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와서는 잠을 자려고 했으나 모종의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결국 그걸 끝내고 드림콘서트에 나오는 수퍼주#어를 봤는데, 마른 떼거지 가운데 있는 정원관 아들 같은 애는 뭐냐. 이번 주 말고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나이키에서 주최하고 여의도에서 열리는 휴먼레이스 10km를 또 뛴다.
# by bluexmas | 2009/10/11 22:01 | Life | 트랙백 | 덧글(21)
비공개 덧글입니다.
걔들때문에 신경 곤두섰던 건 아니구요, 일이 잘 안 된 부분이 있어서 그랬어요. 먹은 건 뿌듯한게 지갑에 완전히 금이 가서요…T_T
마라톤이라니 저도 도전해보고 싶네요
기록이라던가 경쟁이라던가 상당히 흥분될거 같은데요
전 평발이라 대단해보입니다 @_@
하지만 역시 끝에 정원관 아들 발언은 ㅎㅎ 슈퍼주니어팬들이 토라지겠는데요? (제가 보기엔 정원관 아들 같은애 둘 같던데) 전엔 j+글 보고 패션피플들이 노할까 염려되었다는; 시한폭탄 같으세요 으허허
으하하 +j글은 정확하게 까려고 쓴 글은 아니었는데요? 아이돌 그룹은 잘못까면 블로그 닫아야 될 위험이 있어서 조심을…정확하게 저의 문화도 아니니까요 사실.
저거 위에 뭔가요? 발이 있어서 좀 깨지만 그래도 귀엽네요.’ㅅ’!
제 옆에서 같이 자세를 취해준 건, 바로 ‘뉴 밸런스’의 신발이지요. 나름 귀여워서 같이 사진 찍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