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꽃피는 유감

한글날을 맞아 한글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대는 뉴스의 바로 뒤를 이은 스포츠 뉴스에서 여자 ‘아나운서’ 는 ‘디펜딩 챔피언’ 이라는 말을 썼다. 챔피언이라는 말이야 외래어로 그렇다고 해도, 굳이 ‘디펜딩’ 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지난해 챔피언’ 정도로만 표현했어도 그 의미는 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말에 얽힌 가장 큰 문제는, 말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말이니까, 본능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 그저 입시과목으로만의 ‘국어’ 에 대한 접근, 또 밑도 끝도 없고 기본마저 없는 영어에 대한 집착 역시 한두몫씩 열심히 거들어, 우리말은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손해보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우리말이 망가진다는 건, 곧 생각의 체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집 대문에 붙어있던,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개인교습장사의 홍보물을 보면 고작 이 정도가 우리가 우리말을 생각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너무나 뻔하게 잘 알 수 있다. 가운데에 떡허니 박힌 저 문장-7,8,9 세 아이는 많이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가 앞서갑니다-은, 호응도 전혀 되지 않는 비문이다. 이런 문장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우리말 향상을 위해 남의 돈을 먹겠다는 장사치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쓰니, 대체 이런 데에 돈을 내고 뭘 배우겠나? 어느 동남아시아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어떠한 이유에서든 가르치겠다고 거들먹거리지 이전에, 이런 문제나 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밖에다가 대고는 자랑스럽다고 떠들어대고는 왜 안에서는 망가뜨리고 있나.

 by bluexmas | 2009/10/09 16:24 | Life | 트랙백 | 덧글(14)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0/09 17:14 

많이 배우것이라고.. 오타까지 났네요^^;

독서 및 논술능력 검사라고 쓰여 있는데 관계자분들 먼저 검사를 받으셔야 할 듯 -_-;; 그래도 한글날이라고 큰 사이트들은 한글 간판을 달았더라고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사이트 중 정작 한글 이름으로 된 곳은 하나도 없어서.. 약간 마음이 요상했어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0/09 17:16

아 생각해보니 다음은 한글이름이네요! 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0 21:28

아 뭐 한글 전용 같은 건 할 수가 없지만…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까지는 안 괜찮은지도 이젠 모르니까 혼란스러워요.

 Commented by 혼琿 at 2009/10/09 19:38 

음.. 어떤게 유감이란 건가요? ‘세계문화유산’도 한글 명칭이 아니군요. 한글날은 문자 한글이 창제된 날이지 ‘한국어의 날’인가요?

 Commented by blue ribbon at 2009/10/09 21:22 

멘토라는 말은 순화하기가 약간 힘드네요.

한글이라니요?

한글은 원래 한자를 발음하기 위해서 만든거 아닌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0 21:29

‘멘토’ 를 순화하자는 얘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쓴 게 아닙니다만…

 Commented by SF_GIRL at 2009/10/09 22:14 

사실 우리말엔 멘토에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없어서 이 단어 자체엔 거부감이 안들어요. 근데 광고에선 완전히 잘못 쓰였군요. 수업료 내가면서 배우는 게 왜 멘토가 되는 건지? ‘ㅅ’;;;

딴 얘기지만 미국선 mentor가 좀 권위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라서 그런지 buddy같은 좀 낯간지러운 단어로 바꾸어 부르기도 하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0 21:32

윗 분 답글에서도 얘기했듯, 솔직히 많은 단어들에 우리말 짝이 없지요. 저는 한글 전용주의자도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뭐랄까,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이 맞고 또 틀린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른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하다고나 할까요? 말이든 뭐든 쓰는 데에 고민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만만한 영어 단어들도 있고 하니까 그런 과정이 없이 바로바로 대체될 수 있는 말이 나오면서 결국 안 그렇게 해도 되는 말들도 안 쓰다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Mentor가 권위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봐요. 건축에서는 아예 제도적으로 멘터를 둬서 서류에 올리고… 뭐 그런 절차도 있거든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10/10 22:47 

한글이 뭔지 혼돈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이미 한글(한국어)에 포함된 한자어는 한글이 맞습니다. 당연하지요. 흔히 말하듯 외국어와 외래어의 차이 또한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의외로 많으시네요. 모든 외래 근원의 단어들을 척살하자,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나요? “디펜딩 챔피언” 따위가 답답하다는 글에 어째서 이런 희한한 덧글들을 보게 되는지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2 00:07

아이고 서생님께서 심기가 불편해지셨군요^^;;; 그러나 그렇게 신경쓰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에 오시는/의견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아니구요.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는 것이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만, 귀가 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10/12 01:47

남의 집에서 많이 실례했습니다. 사실 관계조차 모르는 분들이 똑똑한 듯 말하시니 잠시 머리가 좀 아팠습니다. 반성했습니다. 하지만 ‘한글은 한자를 발음하기 위해 만들었다’니… 허 참…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3 00:05

아이구, 별 말씀을 다 하세요. 제가 싫은소리 하는 거 귀찮아서 아무 얘기도 안 했을 뿐입니다. 계속 대꾸하면 말만 섞고 머리만 아플 것 같아서요.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0/11 03:23 

한글이라…

이상하게 한글에 관심이 많아서 교과공부 중 국어는 상위권 점수가 나왔고…

군대에서 열심히 보던건 리외도 선생님의 ‘교양 있는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올바른 우리말 사용법’ 이었는데

저도 요즈음 많이 느끼는건 비슷한듯 싶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느낌?

특히나 여기선 사람들이 태국말을 같이 사용하니 더욱 그러하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12 00:08

저는 정말 미국에서 영어에 쩔다 왔는데,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더 많이 우리말에 섞어서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늘 갈등과 고민 속에 살지만, 적어도 ‘웰메이드 영화’ 따위의 말은 쓰면 안되는것쯤은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