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치아바타! 압구정동 뺑 드 빱빠
온갖 멋지고 쿨한 가게와 사람으로 가득한 것 같은 가로수길에 대체 왜 빵집이 하나도 없을까… 라고 생각하며 막 압구정동으로 가는 골목으로 꺾어 발을 들여놓았는데, 거기에 바로 빵집이 있었다. 빵집이지만 은근히 빵집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 늘 지나다니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가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불도 꺼져있고 빵도 없는 가게가 문은 열려 있어서 들어가 물어보았다니 원래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데 일 을 하느라 열어놓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주로 유럽풍 ‘식사빵’ 을 그것도 새벽 세 시부터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번에 꼭 들르겠다고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드디어 빵집 ‘뺑 드 빱빠(아빠의 빵, 뭐 그런 건가?)’ 에 들를 수 있었다. 통밀식빵과 잡곡식빵, 두껍고 푹신한 종류의 포카치아, 프랑스식 바게트와 깡빠뉴(내가 알고 있는 그 ‘시골빵’ 의 이름이 깡빠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등, 얼핏 기억하기로 최소한 스무 가지 정도 되는 담백한 빵들이 있었다. 마침 요즘 이유 없이 집착하고 있는 치아바타도 보통과 강황가루를 넣은 두 가지가 있어서, 맛을 비교하기 위해 보통으로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는 계산을 하면서 이런 종류의 빵집에 갈때마다 묻게되는 물음을 계산하시는 분께 건넸더니, 주방장과 직접 얘기를 해 보라며 안에서 일하시는 분을 불러 주셨다.
솔직히 그렇게 엄청난 대화를 원했던 것은 아니라 좀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그런 곳에 가서 말을 건넸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딱히 즐기지 않는 인상을 받아왔던 나로는 이런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삼십 분 정도 빵집 가운데의 탁자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주요화제는 당연히 빵 만들기로, 천연효모를 쓰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관리도 어렵도 요즘 나오는 효모의 순도가 높아 천연효묘를 쓴다는 것이 다분히 홍보 전략 아니겠느냐, 라는 얘기-이 집에서도 프랑스 빵 몇 종류는 건포도를 써서 키운 천연효모로 만든다고 했다-도 했고, 빵을 만드는 데에는 인내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사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어디를 가서 무엇을 사거나 먹어보더라도 적어도 한 번 먹어볼 때까지는 명함을 주거나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원칙 비슷한 것이 있는데, 그걸 깨다시피 하고 얘기를 나누고 나니 빵이 어떨지 대강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깨자마자 치아바타(2,000)를 꺼냈다. 어째 겉이 적당히 딱딱한 느낌부터 기대가 컸는데, 반을 갈라보니 내가 언제나 집착하는 큰 공기 구멍… 한 입 베어물자 적당히 씹는 맛이 있는 겉껍질과 쫄깃한 속살, 그리고 분명히 스폰지를 써서 만들고 여유있게 발효시킨 빵에서 나는 살짝 시큼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까지… 내가 참고로 삼는 치아바타의 맛에 가장 가까운, 아니면 이제부터 치아바타 맛의 기준으로 새롭게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치아바타였다. 올리브 기름이며 발사믹 식초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내 손보다 조금 큰 방 하나를 다 먹어 치웠다. 역시 뒷맛도 아주 깔끔했다. 지난 번에 먹었던 트레비아의, 천연효모를 쓰고 국산과 캐나다산을 섞어서 반죽한 뒤 72시간을 발표시킨다는 트레비아의 포카치아도 정말 좋았지만, 조금 더 딱딱한 겉껍질 때문에라도 이 집의 치아바타가 조금 더 나았다.
그리고 통밀식빵도 먹었는데, 어째 색이 하얗다 싶었더니 통밀은 20%정도가 들어간다고 했다. 두께가 1센치미터 정도였는데, 처음 봉지를 열었을때 치아바타와 비슷하게 비교적 오랫동안 발효한 듯 살짝 시큼한 냄새가 돌았고, 꺼내서 씹어보니 통밀 덕분에 적당히 거칠었고 의외로 굉장히 쫄깃거려서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우러났다(물론 고기는 아니지만…). 제대로 잘 발효시켜 만든 빵은 정말 그 맛도 냄새도 굉장히 복합적인데, 치아바타와 식빵 모두 그런 느낌이었다. 의외로 식사빵은 간이 짭짤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의 빵은 간마저 딱 맞았다.
문을 연지 일년하고도 반인가 되었다니까 그래도 꽤 된 집인데, 어째서 들어본 적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나 빵의 맛을 생각한다면. 사실 특별히 빵맛을 찾아 서울 시내를 헤메고 다녔던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이빵저빵 많이 먹으며 방황했는데, 이제는 그 방황을 끝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이 집의 빵을 먹고 나니 들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 by bluexmas | 2009/10/05 10:00 | Taste | 트랙백 | 덧글(41)
유레카!!라고 외치시는 듯한 제목이네요 🙂
부첼라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링크 추가 신고드려요~^^
부첼라는 얘기 많이 들어서 한 번 가서 먹어봐야겠더라구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나무위에 빵집도 지난 번에 어떤 분이 말씀해주셔서, 지난 주에 이대앞을 일부러 지나가봤는데 사실 못찾았어요. 다음에는 인터넷을 뒤져서 미리 위치를 알아두고 가봐야겠더라구요. 선전이라고 생각할리 없지요. 그렇게 따지면 이런 글도 다 돈 안 받고 하는 간접광고 아닐까요?-_-;;;(저는 당연히 다 돈주고 사와서 먹고 글 씁니다…-_-;;;;) 좋은 정보 나눠주셔서 감사드려요^^
마지막의 충분하다는 글이 너무 와닿네요….
블루마스님의 만족감이 절절하게 느껴져요!
아 너무 절절하게 만족했나봐요, 민망해요T_T
그간 별 흥미없이 지나치기만 했는데, 오늘도 그냥 지나치다 문득 선배님 생각이 나서
이 빵집은 어떠려나? 맛있으면 알려드려야지-하고선 치아바타랑 통밀식빵, 바게뜨,
복숭아쨈 등을 사왔거든요.
치아바타나 바게뜨는 생각한대로의 맛이였는데, 통밀식빵이 정말! 맛있더군요.
제가 가진 식빵에 대한 편견이 허물어지는,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
전 빵은 당일에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종류별로 맛보고 남은 것은 냉동실에
넣어서 보관하는데, 글을 보니 하루가 지나서 드시기도 하네요.
당일에 드셨으면 더 맛있었을 듯! ㅎㅎ
보통 빵을 사오면, 저녁때라 먹을 수가 없는데(살찌니까T_T) 한 입 정도는 꼭 먹어봐요, 정말 맛이 어떤가 알수 있게… 냉동실도 지금 각종 쿠키반죽에 아이스크림에 꽉차서 자리가 없어요T_T 사실은 오늘도 아주 우연히 어떤 빵집을 발견해서 빵을 한 덩어리 사왔는데, 저녁 꾸역꾸역 쳐먹고 집에 와서 빵은 또 맛을 봤다는T_T 아 살찐다.
전 동네 일본수퍼에서 파는 포장해서 파는 천연효모빵을 가끔 사먹는데요, 다른 빵보다는 약간 시큼한 맛/냄새가 느껴지더라구요. 천연과 화학(?) 효모는 근데 뭐가 다른가요.
효모는 사실 미생물이라서, 심지어 건포도 같은 데에서도 찾을 수 있거든요. 이걸 여러가지 방법으로 ‘키워서’ 그걸로 빵을 발효시키는거에요. 그렇지 않은 상업용 효모는 공장 같은 곳에서 빵을 잘 부풀릴 수 있게 일종의 ‘사육’을 한 셈이구요. 사실 천연발효빵이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운 과정이거든요. 그 천연발효빵으로 만든 빵의 발효종(starter라고 하지요)은 장기보관 및 숙성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빵에서 시큼한 맛이 좀 두드러질거에요. 공상과학소녀님이랑 관계가 있나 오해하는 샌프란시스코도, sourdough가 굉장히 유명하죠. 시큼한 냄새가 좀 많이 두드러지구요.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