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다 분코: 기다림은 보상받고 있는가?
뭐 저런 라면집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얼마전 까지는. 무시한 게 아니라, 원래 아는 게 없어서 그랬다. 들었는데, 생긴지 몇 년 되었는데도 늘 줄을 서서 먹어야 된단다. 가게가 작아서 그런가봐, 라는 얘기를 누군가 했지만 꼭 그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가게가 작아도 음식이 맛없으면 손님보다 파리를 더 많이 들이다가 간판 내리는 집들도 있을테니까. 그래서 한 번쯤은 호기심에서라도 먹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일본 라면이라면 딱히 이런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니 더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음식을 먹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에 1(최약)-10(최강)의 스케일에서 6 정도로 가늠할 수 있는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서 지난 몇 달 동안 아예 줄을 서봐야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줄을 서는 것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니까 성질이 급하기 때문이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끼니를 아주 배가 고파질 때까지는 먹지 않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먹어야 하는 식당에 이르면 그 기다리는 동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파진다. 그러므로 오래 기다려야 하는 집에는 발걸음이 잘 내키지 않게 되고, 그건 사실 순전히 나의 문제이기는 하다.
게다가 나는, 너무 오래 기다리면 기대 역시 기다리는 시간에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에, 음식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하면 실망이 너무 커질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다 완벽하기는 힘든데, 오래 기다리다보면 음식이 완벽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또한, 사람이 식당이 소화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이 모이는 현상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식당도 어떤 식으로든 손님을 조금 더 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조금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한다. 물론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많이 받아서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조리해야 한다면 본의 아니게 맛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식당으로서는 공간을 확장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음식을 아주 빠른 속도로 몇 시간이고 쉴새없이 계속해서 조리하게 된다면 그건 또 어떨까? 물론 이 모든 생각은 그런 식당의 깊은 속내를 모르고 하는 얘기이니 그냥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사설이 길었는데, 지난 수요일에도 꼭 하카다 분코의 라면을 먹어봐야 겠다는 생각-줄 서기 싫으니까-은 하지 않았다가 그냥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 전날 술을 적당히 마셔 식욕도 없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픈, 그러니까 사실 줄 따위를 서서는 안 될 날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줄을 서 있었다. 줄은 생각보다 짧았고, 내 뒤로 곧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아마 삼 십분보다는 조금 짧았다고 생각되는 시간동안 기다린 후, 나와 일행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인라면과 청라면을 각각 하나씩 시켰다.
미리 얘기하건데, 나는 이런 종류의 일본 라면에는 철저하게 문외한이다. 마지막으로 먹었던 일본라면은 2년 전 겨울 삿뽀로의 라면골목에서 먹었던 미소라면이었다.하카다 분코에서 하는 후쿠오카식의 라면은 그런 라면과는 다르다고 들었고 나는 그 맛을 예전에 접해본 적이 없으니 이런 음식에 대한 느낌은 하나의 음식을 먹는 경험에만 온전히 입각해서 새겨지게 된다.
어쨌든 곧 두 라면이 나왔는데, 더 진한 인라면에서조차 나는 그렇게 느끼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냥 조금 더 맛의 입자가 굵고 끝에서 고기의 풍미가 강하게 남는 정도? 라면이 나오기 전에 무엇인가를 체로 걸러 넣는 것을 보았는데, 그게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라면의 맛에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졌으나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므로 입닥치고 라면을 부지런히 먹었다. 가격이 육 천원이므로 부담이 크지는 않지만, 양이 많지는 않으므로 라면은 국물의 진한 맛을 경계선으로 역시 조금씩만 더해진 다른 재료들이 적당히 특유의 맛으로 방점을 찍는 정도에서 맛의 경험을 완성한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기본인 진한 국물과 그다지 큰 느낌이 없었던 면의 밋밋하고 굵은 조합에 곁들여진 파의 살짝 맵고 단맛이 스타카토처럼 액센트를 불어넣고, 역시 적당히 들어간 숙주가 면만 먹으면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식감에 생기를 주는 정도? 거기에 차슈가 파와 숙주가 너무 그쪽으로 라면의 맛과 식감을 몰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장 정도 들어가 인심을 베풀어 주는 정도?
뭐 그 정도였다. 그래서, 나의 기다림은 보상받았을까? 처음이니까 이번 한 번으로만 한정해서 생각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몰랐던 맛을 아는 차원에서도 괜찮았고, 또 음식 자체로서도 기본적인 간이며 국물의 맛이며 나무랄데가 없었다(그러나 면은 살짝 아쉬웠다고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자). 그러나 그렇게 맛을 보았으니 적어도 일 년 정도는 다시 줄 서서 기다리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가 되려면, 이 라면이 어떤 종류든 불특정한 음식이 먹고 싶어지거나 그 모든 음식이 먹고 싶어지지 않을 때 먹고 싶어지는, 그런 종류의 음식으로 각인되어야 할텐데,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이 라면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의 기억속에서 인상을 남긴 맛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누군가에게는 아마 한 시간이라도 기다려서 먹을 가치가 있는 라면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어차피 너무 좁은 공간이라서 별로 할 얘기는 없는데, 그게 ‘다찌’든 ‘바’든 혼자서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렇게 혼자라는 사실에 부담스럽지 않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이 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는 그 아무 것에도 개의치 않고 혼자서 밥 꾸역꾸역 잘 먹는 사람이기는 한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4인용, 아니면 2인용 식탁마저도 때로는 버겁다. 원래 일본식이 그렇겠지만, 이 식당의 다찌는 마음에 들었고, 내 앞에 있는 여자도 혼자 와서 라면을 먹었다.
사람들이 일본말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솔직히 일본어로 말하는 그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지만(음식을 먹는 건 결국 문화를 경험하는 것 아닌가? 독일 맥주집에서 우리나라 여자가 독일 옷을 입고 독일어로 인사하면 그것에도 불만을 가지려나?), 너무 크게 계속해서 얼버무리는 건 그게 일본말이든 우리말이든 영어든 그다지 편하지 않다. 그게 다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것일텐데, 어찌보면 너무 크게 소리만 질러서 빨리 먹고 나가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처럼 들린다. 게다가 안 틀어도 될만한 시끄러운 음악은 그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킨다. 일하는 사람들은 심심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기다려서 자리잡고 먹는 음식이 몇 젓가락 후루룩거리면 없어지는 라면인데다가 밖에 또 자기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어차피 빨리 먹고 나가기 마련이다. 그런 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그리고 그릇의 평평한 부분이 너무 넓어서 그 투박한 숟가락으로 바닥에 깔린 국물을 먹기에는 좀 불편했다. 마시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이 라면과 우리 김치는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는데, 김치 자체에는 별 특징이 없었다. 김치까지 기대하면 너무 많이 바라는 것일까? 느낌이 꼭 군에서 겨울에 나오는 김장김치 같았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뭐 그렇게 나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딱 파는 김치의 느낌이었다는 것 뿐.
# by bluexmas | 2009/09/25 10:03 | Taste | 트랙백 | 덧글(34)
라면이 나오기 전에 체로 걸러넣는 무언가가 있는데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냥 드셨다는 그부분… 진짜 최고로 공감해요!!!!!!!!!! ㅋㅋㅋㅋㅋㅋ 너무 궁금해요!!
저는 항상 인라멘만 먹는데, 한번은 국물이 연해졌다는 인상을 받아 한동안 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다시 갔을 땐 다시 좀 진해졌다고 느꼈지만… 뭐랄까, 예전 같으면 사리 한번 더 시키고 국물까지 삭삭 완식했는데, 이번에는 사리를 한번 더 시켰음에도 국물을 남겼어요. (그러니까, 면을 먹으면서 국물을 떠먹노라면 자연히 국물을 완식할 수 있는 면:국물의 비율을 먹었음에도 국물을 남겼다는 의미) 하도 띄엄띄엄 가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맛이 변한 건가? 라는 의문을 갖고 나왔습니다. (그 후 다른 돈코츠라멘집에 갔을 땐 국물을 완식했기 때문에, 제 입맛이 변해서 돈코츠라멘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닌 듯 하고요)
아무튼, 저도 전반적인 맛과 가격에는 불만이 없지만 멀리서 찾아와서 다시 1시간씩 서서 기다려가며 먹을 가치가 있느냐는 건 회의적이 됐습니다. 요새는 거리는 비슷하지만 훨씬 덜 기다리고 맛도 괜찮은 다른 돈코츠라멘집을 다니고 있네요. 말씀하신대로 너무 시끄러워서 편안하게 먹을 수도 없고요.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빨리 먹고 나가는 거야 그렇다 하지만, 먹는 동안에는 좀 마음편하게 먹고 싶잖아요;;)
김치맛은 동감! 딱 파는 김치여서 저는 초생강만 집어먹습니다. 초생강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단, 저도 우마이도는 몰리는 시간은 피해서 다른 시간대에 갑니다. (주로 밤 9시쯤) 한창 저녁시간일 때에 가면 거기도 줄서서 기다리더군요 ^^; 하지만 하카다분코는 밤 10시에 갔는데도 기다렸던 경험이 있어서… (일부러 줄 서기 싫어서 늦은 시간에 간 건데 말이죠 ㅠㅠ) 그 후로는 다시 안 가고 있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가볍게먹어줄 만한 곳은 늘어났는데, 진득하게 정말 잘한다 싶은 곳은 없는 느낌..이죠~
국물위에 뜬 하얀것이 그것이지요.
뭐 그냥 일품 요리로는 귄챤지만 … 한끼 식사를 한다고 하면 좀 기다리는 시간이 압박일수 있습니다.
그냥 그런 집에 가면, 음식을 먹는 경험이라는 게 뭔가 쓸데없이 오래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좋아하니까 계속 가는 것이죠.
그래서 작년에 친구에게 이 맛을 알게하고자 데리고 갔습니다.
청라멘을 먹고난 친구가 ‘농심 사라곰탕면’ 먹은 것 같다고 합디다..
왠지 기다리며 먹었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죠..
근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긴 합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빨리 나가라’ 였습니다
하카타분코는 제가 가고싶어서 보다는 남들 소개시켜주는 의미로 많이 들렀던 기억이 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 였었죠…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걸 좋아하지만 가리지는 않는데
정말 한 번 이상은 그렇게까지 줄서서 먹어야 하겠다는 의지는 생기지 않더군요
(전 http://lullaby.egloos.com/1923062 여기가 더 맛나더라구요 근데 비싸서ㅠㅠ)
홍대 [나고미라멘]은 국물이 진하다~를 떠나서, 챠슈도 포함해 역한 돼지풍미가 도는게 개인적으론 별로더군요. 진하다 해서 꼭 역한 돼지냄새가 나란 법은 없는데 말이죠. 경험치로 ‘미하마야’정도는 한번 가볼 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나고미라멘 추천해 드립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다녀본 홍대근처 라멘집 정리한 포스트가 있으니 궁금하시면 한번 방문해주세요.
http://mhjin.egloos.com/4162724
평가는 개인적인거라서 자신없습니다만. ^^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서 편안하게 천천히 먹는 곳이 좋아요.
물론 음식맛도 좋아야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