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가벼운’ 낮술(10)-생골뱅이 무침과 피자
굳이 ‘가벼운’ 낮술이라고 토를 다는 이유는, 고작 맥주 한 캔을 마셨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공짜로 얻어 시음기도 올렸던 여름 한정판 맥스가 분명히 이마트에서 사라졌었는데, 지난 주에 우연히 컵과 함께 나온 여섯 캔 들이를 발견해서 얼씨구나 좋다고 사오게 되었다. 마침 골뱅이를 먹어볼까 생각도 했던터라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골뱅이를 먹기 전에 냉장고에 남은 호박이 있길래 호박전을 부쳤다. 마침 막걸리까지.
생골뱅이는 사실 딱 한 번 먹어보았다. 1986년이었는데, 가족끼리 갔던 최초의 제대로 된 바닷가 피서였다. 주문진 해수욕장 바로 옆에 소돌해수욕장이라는 작은 해수욕장이 있다고 해서, 큰 곳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갔었다.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었고 가족들은 민박집에서 오징어회와 생골뱅이 등등을 먹었다. 누군가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시끄러웠던 기억이 나는데, 누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런 이십 몇 년 전의 기억이 있어서 마트에서 지나치면서 오랫동안 쳐다만 봤던 생골뱅이를 만원어치 샀다. 그 많은 골뱅이들을 삶아서 껍데기에서 꺼내 무칠 수는 없으므로 파무침을 따로 준비했다. 사실 나는 골뱅이 무침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맥주집에서의 골뱅이는 대부분 더 많은 맥주를 마시도록 만들려고 엄청나게 맵게 만드는데, 내 입맛에는 그렇게 매운 음식이 맞지 않아서 내가 안주를 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는 골뱅이무침을 시켜본 경우가 별로 없다. 을지로의 골뱅이 무침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나는 을지로까지 일부러 가서 먹어본 적은 없고, 다동의 골뱅이무침은 먹어보았는데 역시 너무나 맵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익은 골뱅이를 껍데기에서 꺼내는 건 좀 어렵고 귀찮다. 이쑤시개로 몸통을 찔러서 끄집어 내면 되는데, 중간에 끊어지지 않도록 살살 끄집어내야만 한다. 그나마도 작은 골뱅이들은 너무 작아서 꺼내기 힘들고 따라서 먹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껍데기가 얇아서 그런지 많이 깨져 있거나, 끄집어 낼때 깨지는 경우가 많아서 그걸 일일이 떼고 먹느라 좀 귀찮았다. 그런 수고를 해야하는 데에 반해 맛은, 평범했다. 골뱅이의 특유의 고소한 맛이 아직 덜 든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맥주 그래니타가 남아서, 장난을 쳐봤다. 또 요즘엔 쓸데없는 걸 얼려서 곁들이는 게 유행이기도 하니까. 골뱅이 무침을 좀 고급스럽게 만들어 세계화라도 시키면 이러게 될라나?
배가 적당히 고팠지만 껍데기를 벗겨 먹느라 배가 차기는 커녕 다시 고파져서, 애초에 계획했던 피자를 구웠다. 미리 만들어 두었던 반죽을 썼는데 그때 다른 생각하면서 밀가루를 섞느라 한 컵을 더 넣은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정말 그랬는지 반죽이 굉장히 뻣뻣했다. 이 통밀 반죽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물을 넣으면 뻑뻑해지기는 해도 힘은 여전히 없고 축축 처진다. 그래서 구워놓고 보니 피자가 좀 뻑뻑했고, 치즈도 토마토 소스도 싱거워서 결국 뻑뻑하며 싱거운 피자가 되었다. 그나마 단 하나 돋보였던 건 살아남아 쑥쑥 자라주고 있는 바질. 사실 그것 때문에 피자를 만들어 먹기로 계획한 것이었다. 토마토가 언제까지 나오는지도 모르니까 있을 때 열심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간단한 마르게리타 피자.
두 번째는 말도 안되는 팬체타와 표고버섯의 조합이었는데, 심심해서 반으로 접어 칼조네를 만들었다. 어째 거대한 군만두가 된 느낌. 역시 소금을 아낀 나의 불찰로 피자의 맛은 좀 밋밋했다. 마트에서 파는 피자치즈라는 걸 사다가 두 번 써봤는데, 맛도 별 볼일 없지만, 물기가 너무 많아서 더 별 볼일없다는 생각이다. 피자를 구워서 치즈가 녹으면 너무 늘어지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맛이 피자의 맛이 흐려진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노력도 많이 안 들이기는 했지만 맛도 뛰어나지 않았던 음식들의 토요일 오후였다. 골뱅이와 피자의 조합이라니 어째 좀 이상하기는 하다-_-;;;;
# by bluexmas | 2009/09/24 10:29 | Taste | 트랙백 | 덧글(14)
이게 어찌 혼자서 드셨나요~ 저도 좀..마르게리따 피자 T_T
저도 일 없으면 가끔 낮맥주를 즐기는데 안주는 과자부스레기ㅠㅠ
저염으로 먹도록 신경쓰는 편이라 싱거운 편이 더 좋아요~ 게다가 버섯이라면-!
술보다 안주..으아 저 비단결 같은 치즈……………..ㅠ.ㅠ
전 식은 저스트치즈피자를 즐겨 먹기도 하는데 고소한 맛이 더 잘 느껴지더라구요 물론 퍽퍽하긴 하지만ㅇ>-<
비공개 덧글입니다.
빵집을 찾아보니 단국대 근처네요. 거기는 강 건너는 버스타고 지나다가 내려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한번도 내려본 적은 없는데, 다음에 한 번 시도해봐야겠네요.
그나저나, 추석 연휴 지나면 어떻게 한 번 오래 묵은 궁금증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연락 주세요. 연락처는 알고 계시리라…
누군지는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지요. 힌트 안 줘도 알아차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