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제공되는 해석 및 해설
여기는 내 블로그, 나의 공간이다. 나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대신, 내 마음대로 쓴다. 그래서 솔직히 오독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글에다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담으면 그만이지, 그걸 또 어떻게 읽으라고 방향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며칠, 쓴 글 몇 편이 본의 아니게 오독의 여지를 제공하여 몇몇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내부방침을 무시하고 해석 및 해설을 제공한다. 이것 역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고 한들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정도 상황이 되면 ‘오독’ 말고 요즘 유행하는 단어를 써야할 것 같다. 왜 있잖나, 난독이라고.
손 닦기와 인류의 평화
손 안 닦는 것이 신종 플루를 비롯한 만병의 근원이라는, 어처구니 없이 과장되고 의학적 근거도 없는 주장 따위는 애초에 펼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작은 것, 그리고 상식에 집착하는 사람이라 그런 수준에서 잠깐 기다려 손 못 닦을 만큼 우리가 그렇게 다급하게 살고 있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까놓고 말하자면, 누군가의 행동이 나에게 영향만 미치지 않는다면 나는 굳이 내 에너지를 낭비하면서까지 간섭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만약 이게 손을 닦는 일이 아니라 밥 먹고 이 닦는 정도의 문제라면 ‘아 밥 먹고 양치질 하면 좋은데’ 정도로 생각하고 말지, 이 정도로 민감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안 닦아서 상대방 입에서 냄새 나는 정도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손은 다르다. 손이 신체기관으로서 가지고 있는 위상이며 의미는 입과 다르지 않은가? ‘나는 손 안 닦는데 괜찮아요’ 라는 얘기는 솔직히 듣고 싶지 않다. 이건 아침으로 밥이 좋으냐, 빵이 좋으냐를 놓고 싸우는 것처럼 두 동등한 대안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내 생각을 썼을 뿐이고, 그게 아닌 무엇인가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다, 이 사안에서는.
말 많은 곰탕과 단맛 나는 깍두기
말 많은 곰탕집에 대한 글을 썼더니 그 글에 대한 말도 많아졌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런 것이었다. 곰탕 자체는 맛이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장사하는 것이 요즘 시대에 맞는 것인가? 전통을 지켜야 할 부분은 음식맛이지 손님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서비스가 아닌 것이다. 홈페이지에 가 보면 대를 이어가며 음식맛을 지켜간다고 얘기하고 있을정도로 신경쓰면서 왜 조금 과장을 보태 표현하자면 옛날 저잣거리 국밥집 정도의 환경밖에 조성해놓지 못하는지,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맛이 저잣거리에서 먹던 분위기이고 그게 좋다고 진짜 식당 환경이 그래야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뭔가 초점이 안 맞는 시도라고는 생각하지만 정부에서는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사도하신다는데, 이 정도면 우리 음식을 대표하는 맛일 하동관 곰탕에 그런 서비스와 탁자를 붙여 내보내면 과연 좋은 반응을 얻게 될까? 이런 것이 전통이라고 말하면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좋게 받아들일까? 이건 정확하게 미국의 길거리 음식(street food)와 일대일 대응하는 음식도 아니다. 그런 음식들은 저렴하다. 하동관 곰탕은 가장 저렴한 것이 팔 천원이다.
물론, 나도 이전하거나 건물을 새로 올린다음 맛이 말도 안되게 변해서 버린 단골집들을 겪여봤지만, 그게 무서워서 식당이 환경개선의 노력도 없이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하동관이 그런 의도에서 그런 낡고 좁아서 불편한 식탁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동관의 곰탕은 팔 천원짜리가 맞지만, 그렇게 불편한 탁자는 팔 천원짜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을 고수하는 건 어찌보면 그 곰탕의 가치를 깍아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역시 말 많은 깍두기. 내가 과학적인 레시피라고 믿고 따라 담그는 깍두기 레시피는, 약간의 설탕을 넣으라고 명기하고 있다(그렇다, 나 김치 직접 담궈서 먹는다). 이건 굳이 이 레시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담그시는 깍두기에도 설탕이 들어가니까. 그러나 가정에서 담그는 깍두기는 그 단맛이 치고 나올 정로도 분명하지 않은 반면, 곰탕집 같은 식당의 깍두기는 보다 더 분명한 단맛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단맛이 대부분 음식에 쓰는 백설탕이 아닌, ‘뉴 슈가’에서 비롯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 둘의 단맛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백설탕의 단맛이 보다 더 윤곽이 뚜렷하니까.
하동관의 곰탕을 먹었을 때, 내가 느꼈던 단맛은 백설탕의 그 단맛이 아니었고, 나는 내 입맛을 의심했다. 그래도 하동관인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정도의 위상을 가진 집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뉴 슈가를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단맛에 대해 나는 그렇게 둘러서 표현했던 것이고, 아직도 내 입맛이 잘못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어딘가 가서 음식 한 그릇 먹고 그렇게 구구절절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게 나 스스로를 표현하는 궁극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표현방식에 대해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찍은 사진 위주로 올리면 나 역시 힘이 덜 든다. 어차피 이미지 위주의 시대에 글은 뒷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길고 또 길게 쓰는 이유는, 그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 내 블로그에 와서 그 긴 글을 다 읽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존중할 수 있다. 여기까지와서 그 긴 글을 다 읽는 행위는 지극히 자발적이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사실에 관련된 지적도 아니고, 다 읽고 이해한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을 주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반가울 수도 너그러울 수도 없다. 더구나 그 때문에 이렇게 해설까지 덧붙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발전적일 수 없는 논쟁은 사양한다. 사람 무시하는 것, 너무 피곤한 일이라 하고 싶지 않다. 무시하고 싶은 여지를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 by bluexmas | 2009/09/23 23:04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