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두고 싶지 않은 책

중고판매를 위해 온라인 서점에 올려 놓은채로 잊고 있었는데, 토요일에 책이 팔렸다는 문자를 받았다. 별 미련없이 굴러다니는 상자를 주워 책을 쓸어 담고 테이프를 둘렀다.

MIT의 교수(그 전에는 내가 다녔던 학교에도 있었다더라-)인 Karl Michael Hays가 1968년 이후의 건축 이론들 가운데에 그야말로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것들만 편집하여 펴낸 ‘Architectural Theories Since 1968.’ 사실은 벌써 십 년 전에 원서를 사서 가지고 있었는데(가지고 있었다-라는 말은 읽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몇 년 전인가 번역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것마저 덜컥 사버렸다. 심지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아 이렇게 어렵고 상업성 없는 책을 어떻게 낼 생각을 다 하셨대요-‘ 라는 말까지 하면서. 그러나 결국 나는 돈을 헛되이 쓴 셈이었다.

물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얘기이므로 여기에 쓰지는 않겠지만, 학교에 있을 때에 누군가로부터 이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는 차마 여기에 쓸 수 없지만, 이런 얘기 정도는 할 수 있다. 이 정도 난이도와 분량의 책이라면, 적어도 일 년 정도는 작업해야 번역 초고 정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보다 책이 빨리 나올 수 있었다면…? 어쨌거나, 나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얘기를 듣고 책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책들의 번역서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지 않아서 그 뜻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사전을 찾아 일대일 대응 식으로 연결하듯이 번역을 하다 보니, 문장은 나와도 그 문장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은, 번역된 것을 읽어도 정작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감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결국 그건 늘 말하고 또 말하지만, 우리말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주는 한단계 더 위험한 수준의 문제는, 이런 책을 무슨 말인지도 정확하게 이해도 못하며 읽은 뒤 자신이 그걸 소화한 줄 알고 엉뚱한 곳에다 인용한다든지 해서 잘못된 지식의 체계를 더욱 악화시키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 바탕이 되는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이 언제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던가? 그러므로 벌써 허술한 대지며 기초에 계속해서 썩은 보를 얹고 또 얹어 구조물을 세우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책만 계속 읽어 자기가 공부하는 분야의 지식을 쌓으려는 사람은 결국 그가 가진 지식 세계의 수준과 실제 인간의 상식적인 수준이 전혀일치하지 않는, ‘지식의 기형아’ 가 되어버린다.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또 인용하는 발터 벤야민. 대체 그가 누구길래? 어려운 책 따위를 뒤질 필요도 없이, 네이버의 사전을 찾아보자. 그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온다.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좌익 학생운동을 하였고 나중에 시오니즘운동에 관계하였으며 형이상학 요소를 사적 유물론과 결합시킨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와 교류했던 학자로 아도르노, 블로치, 브레히트 등이 있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한 논문은 <독일 낭만주의에서 예술비평 개념>(1920)이다. 그리고 대학교수 자격 취득을 위한 박사 학위 논문 <독일 비가극의 기원: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1928)이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거부되자 교수를 단념하고 문필생활로 들어갔다. 보들레르, 프루스트에 심취하여 그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한편, 1925년부터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매우 개성적인 그의 사상은 당시의 현상학(現象學)과 신(新)헤겔주의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의 유저(遺著)인 《역사철학의 테제》에는 종말론적 역사관이 보인다. 나치스에게 쫓겨 망명 도중 자살하였다. 저서로 《괴테의 친화력》(1924~1925)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1936) 《계몽》(1961) 등이 있다.’

 

네이버 사전과도 같이 가장 기본적인 참고 문헌에서 말하는 발터 벤야민이라는 학자를 이해하기 위해, 나와 같이 무지한 사람은 적어도 ‘시오니즘’,’형이상학’,’사적 유물론’,’현상학’,’테제’ 와 같은 정도의 개념을 이해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기 위해 저 용어들을 또 사전에서 찾아볼 것이다. 예를 들어, ‘시오니즘’ 을 한 번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자. 한 마디로 친절하게 요약해서 ‘고대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 뭐 이 정도라면 괜찮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어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그 하부 개념을 먼저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 어떤 사람은 옛날 고등학교때 미적분을 전부 공식화 시켜 외우듯, 저 발터 벤야민에 대한 개념을 외운다. 그리고 그걸 자신이 어디에선가 무엇을 할 때,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주장의 지적 근거로 떡허니 쓴다. 뭐 예를 들어 그렇게 쓰려나, 위의 문구를 인용해서, ‘매우 개성적인 그의 사상은 당신의 현상학과 신 헤겔주의와는 철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필자가 주장하려는 ###의 %%%에 대한 주 개념은…’ 뭐 이렇게 쓸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저걸 인용해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정확하게 ‘현상학’ 이 무엇이며 ‘신 헤겔주의’ 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전을 찾고 또 찾아서 그 사전적인 정의는 어떻게든 머릿 속에 주워 담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기가 몸으로 이해하는 단계까지는 다다르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쓰고 또 쓴다,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물론 이건 그냥 발터 벤야민을 예로 든 것 뿐이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어쨌든 발터 벤야민이 나에게는 무슨 지적허세 나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섹시스타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느낌이다.

사실 저런 책이 담고 있는 건축 이론 따위를 깊숙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저변에 밀도 높게 깔려 있는 몸으로 익힌 서양철학의 저변이 없어서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철학? 내가 배운 철학교육은 기껏해야 중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철학자 이름을 주워 들은 것이 전부다. 철학과 같이 사물의 깊은 이해에 대한 기본이 잡혀 있지 않은 현실에서, 저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 따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다. 싫은 책 얘기를 하다가 흥분해서 말이 길어졌는데, 완전 새 책을 40%의 가격으로 내놓아서 번 돈으로는 고기나 사 먹으려고 한다. 먹고 배설하고 나면 어째 저런 책을 사고 느꼈던 죄책감을 좀 덜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by bluexmas | 2009/09/15 00:00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09/15 00:16 

요상하고 어렵게 번역된 책인가보군요 ^^; 저런 책은 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해가면서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대학다닐 때 학부생들의 간단한 레포트에까지 벤야민, 라깡, 데리다, 보드리야르.. 이런 대단한 이름들이 난무(?)하는 걸 보고 속으로 무지 놀랐었어요. 아니 이것들 왜이리 똑똑해 하고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5 00:22

네, 뭐 뭔말하는지도 모르고…

아마 그런 레포트 다 어디에서 베꼈을걸요? 뭐 알고 썼을라구요…

 Commented by worldizen at 2009/09/15 08:25 

이런 번역본들도 문제지만, 저는 “번역체”로 일부러 쓰는 글들에 더 환멸을 느낍니다. 특히 디자인, 건축 계통에서 활동한다는 분들의 글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봐요. 그렇게 어렵게 돌리고 돌려서 3인칭으로 쓰는 건지..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지….아름다운 국어 문체도 많을 텐데 왜 꼭 번역체를 고집하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5 10:49

그건 번역체로 일부러 쓰는 게 아니라 우리말을 모르는 데 그런 책을 자꾸 읽어서 습관이 된 건 아닌가싶어요. 모든 건 일단 우리말을 몰라서 문제인 것인데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문제죠…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9/15 14:05 

네이버 사전이 어떤 사전을 올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베끼면서 축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용이 참 그렇군요. 각설하고, ‘블로흐E. Bloch’를 ‘블로치’로 해놓았군요. 최소한 한글 원본을 베끼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알파벳으로부터 베낀 것으로 추정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6 09:43

으하, 옮기면서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정말 그렇네요. 영어 발음조차도 사실 ‘블로흐’ 가 맞지요. 물론 전 블로흐가 누군지는 모르고, 블로그는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