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구워먹는 구례통밀 막반죽 빵

뭐 집근처에 폴 앤 폴리나 같은 빵집이 있다면야, 집을 빵굼터로 바꾸는 수고는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있다고 해도 문제인게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까. 게다가 통밀빵이 없는 것도 문제다. 누군가는 통밀빵이 입에 더 맞을 텐데, 왜 이렇게 찾아보기 힘든지… 그래서 결국 자급자족하게 된다. 어떤 책-이 책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은 빵에 필요한 기본 재료를 섞어서 반죽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상온에서 1차 발효를 시킨 뒤, 공기를 빼고 냉장고에 넣어 저온 발효한 반죽을 2주까지 숙성시키면서 쓰는 레시피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 레시피가 내가 산 구례통밀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 너무 곱게 간 탓인지 물을 먹어도 먹어도 지치지 않는 밀가루 덕분에 물과 밀가루 둘다 멀쩡한 배합비를 찾아내는 데 시행착오를 좀 겪었는데, 결국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타협을 하게 되었다. 흰 밀가루로 만드는 반죽의 레시피에서 다시 물의 비율을 조정한 것이다.

레시피를 공개하기 전에 미리 밝히자면, 제목에서처럼 이 반죽은 집에서 가급적 시간을 안 쓰고 빵을 굽는다는 차원에서 쓰는 일종의 ‘막반죽’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병에 담긴 물을 써도 되지만, 굳이 찾으려고 난리치지 않고 수돗물을 써도 되고, 발효도 그냥 손에 잡히는 효모라면 상관없다는 것이 이 반죽의 기본 개념을 세운 사람들의 주장이다. 아직 2주일까지 숙성시켜보지는 않았지만, 4-5일 정도는 냉장고에 놓아 두었다가 필요한 때 꺼내서 반죽의 모양을 원하는대로 잡아주고 적당히 오븐에서 구우면 생각보다 먹을만한 빵이 나온다. 나는 주로 공처럼 둥근 ‘Boule(불어로 ‘ball’ 인듯)’ 을 만들지만, 길게 모양을 잡으면 바게트가 되고 치아바타도 될 수 있다. 올리브 기름을 안 쓰기는 하지만, 물기가 많은지라 피자의 반죽으로도 얼마든지 응용가능하다. 심지어 며칠 전에 올린 찐빵도 이 반죽으로 만든 것이다. 물의 양을 맞추느라 지난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서너번을 만들어 봤는데, 물의 양에 상관없이 먹을만한 빵이 나왔다.

그럼 일단 레시피부터,

재료(450 그램짜리 빵 네 덩어리 분량)

구례통밀가루 6 1/2 컵

소금 1 큰술(원래는 1큰술 반이었으나 너무 짜서 반큰술 줄였다. 취향에 따라 더 줄여도 될 듯)

효모 1 1/2 큰술

적당히 따뜻한 물 2 컵+1/4컵(전자렌지에서 1분 30초 돌리면 기온에 영향을 덜 받고 1차 발효가 잘 되는 온도가 된다)

4리터 정도 들어가는 플라스틱 용기를 구한다. 다이소에서 이천원에 살 수 있다. 단, 완전 밀폐용기는 아닌 것이 좋다. 어쩔 수 없이 밀폐용기를 샀을 경우에는 그냥 밀폐만 안 시키면 된다. 어쨌든 그런 용기에 밀가루와 소금, 효모, 그리고 물 두 컵을 섞는다. 나무 주걱으로 섞으면 물기가 좀 없는 듯한 반죽이 된다. 여기에서 혹해서 물을 더 부으면 안된다. 구례통밀은 먹깨비처럼 미친 듯이 물을 먹으니까. 어쨌든 두 컵의 물을 섞으면 바닥에 섞이지 않고 남는 밀가루가 있을텐데, 그 때 나머지 물 1/4컵을 부어 전체를 골고루 섞어준다. 원래 책에서는 반죽 자체가 필요없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냥 재미삼아 손으로 적당히 반죽한다.

여기까지 재료를 섞어준 다음, 뚜껑을 덮어 1차 발효를 시킨다. 한 시간 반-두 시간 정도. 너무 까다롭게 잴 필요는 없다. 부피가 두 배 늘어났는지도 확인할 필요 없다.

반죽이 적당히 부풀었으면, 쳐서 공기를 대강 빼준뒤 뚜껑을 덮어(밀폐시키지 않는다) 냉장실에 넣는다. 이렇게 1차 발효를 마친 반죽은 냉장고에서 세 시간 정도 묵은 다음 부터는 쓸 수 있게 된다.

빵을 굽게 되면, 필요한 만큼을 통에서 잘라내서 내키는 대로 적당히 반죽을 해서 모양을 잡고 40분 정도 휴식을 시킨 뒤 섭씨 23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30분 정도 굽는다. 여기에서부터는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반죽의 모양이나 부피에, 그리고 원하는 정도의 굳기에 따라 굽는 시간이나 온도도 달라질 수 있다.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물을 끓여 빈 팬에 부어주면 되는데,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못난이 빵들. 굽지 않았을때에는 좀 시큼한 냄새가 나서 어떨까 싶었는데, 굽고 나면 구수하다. 굽는 시간에 따라 껍데기가 질기거나 딱딱해질 수 있지만, 속은 굉장히 부드럽다. 통밀이므로 백밀보다 밀도가 높은 건 아무래도 극복하기 어렵기는 하지만(역시 통밀반죽은 많이 부풀지 않는다. 이 반죽은 냉장고에서 꺼내놓으면 40분 동안 별로 부풀지 않는데, 오븐에 넣으면 굽는 동안 생각보다 많이 부푼다)… 한 번도 집에서 신경써서 sourdough를 만들어보지는 않았지만, 반죽을 며칠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시키면 그 느낌이 꽤 가까워진다.

아직도 이 레시피는 현재진행형이므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덧붙이면,

1, 물의 양을 적당히 조절한데다가 찬 데 오래있었던 반죽이라 처음 꺼내서 손으로 만질 때에는 적당히 탄력이 있는 것 같지만, 굽기 전에 30-40분 정도 휴식시키면 다시 그 탄력을 잃고 반죽이 처지는 경향이 있다. 팬에 굽는 사람이라면 구울 팬에 아예 모양까지 다 잡아놓았다가 그대로 넣어서 구우면 되는데, 나처럼 피자 주걱을 써서 오븐 바닥의 빵굽는 돌판에 넣을 경우에는 밀어서 돌판 위에 올려 놓을 때 모양이 망가질 수 있다. 이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피자 주걱에 유산지를 깔고 그 위에 반죽을 올려 형태를 잡으면 만사해결된다. 넣을 때에는 유산지채 밀어 넣으면 가볍게 올라가고, 10분 정도 지나 빵의 겉이 적당히 구워진 뒤 유산지만 잡아 빼내면 된다.

2. 김이 빠져 나오도록 칼금을 넣어주는데, 반죽의 속성이 그래서 그런지 칼금을 내도 그게 빵을 굽고 남 뒤에 남지 않는다. 물론 금을 넣는 목적은 그럭저럭 이뤄내는 것 같다.

3. 이건 모든 빵에 통하는 얘긴데, 진짜 빵맛은 빵이 식고 난 뒤에 나온다. 그러므로 굽고 뜨거운 빵이 기분도 맛도 좋기는 하지만 식을 때까지 참아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요즘은 쓰기만 하면 길어지는 느낌인데, 이 반죽으로 만든 빵은 그 맛이며 식감이 좋은 빵집에서 파는 빵만큼은 아니어도 밀가루가 좋아서 그런지 신선한 맛에 먹는데 빨리 질리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 반죽을 만들어 빵을 굽는데 질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by bluexmas | 2009/09/12 10:33 | Tast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09/12 14:24 

집에서는 오븐 토스터를 쓰니 납작하게 빚어 구우면 되겠군요. 담백한 빵이니까 잼보다는 달걀 노른자 찍어 먹는 쪽이 맛있을 것 같고요. 구례통밀가루를 못 구하면 … 그냥 물 비율을 조금 줄여서; 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2 15:36

아, 계란 노른자도 찍어먹나요? 그냥 올리브기름을 찍어 먹거든요. 하긴 지방이니까요^^;;; 참기름도 괜찮을 듯…

시중에서 파는 보통 통밀가루로 한 번 시도해보세요. 저 레시피 반만 만들어도 되더라구요.

 Commented by guss at 2009/09/12 14:37 

말린 바질 가루 넣고 구워도 맛있을 거 같은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2 15:37

그것도 좋겠네요^^ 어차피 막반죽이라 아무거나 넣고 구워도 되더라구요. 또 뭐가 있을까요…?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9/12 16:15 

블루마스님도 태양의 손 소유자?

피자편식인 저도 이 반죽으로 만든다면 꼬다리까지 전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9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2 23:04

아뇨 그냥 막손이에요, 히히…

저도 밖에 나가서는 피자 안 먹어요. 가끔 한 번씩 만들어 먹고 말죠 뭐. 우리 통밀이 정말 좋더라구요.

 Commented by  at 2009/09/12 20:19 

크랜베리나 건과류 넣어도 맛있을꺼 같아요.

저도 아티잔 브레드 레시피로 통밀 100%빵 가끔 만드는데요.

빵 만들기는 정말 매력적인 작업 같아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2 23:05

네, 이 반죽은 정말 뭐든지 넣고 만들 수 있겠더라구요. 다음엔 피칸을 좀 넣고 만들어볼까 해요. 빵 만들기 좋아하시면 이 반죽 레시피를 한 번 써 보세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09/13 09:21 

빵에 구멍이 마음에 드네요 ㅋㅋ

‘이 책’이 뭔지도 궁금해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14 07:00

물기가 많은 반죽이라 그런지 구멍이 크게 생기더라구요.

그 책이 뭔지는 비밀이랍니다, 아직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