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급행전철 안에서

밤의 급행전철 안에는 지루함의 이산화탄소가 흐른다. 열차는 역과 역 사이를 지나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을 줄여주지만, 반대급부로 새로운 사람을 보거나 서 있을 경우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거의 같은 느낌으로 지루하다, 그리고 밤에는 한결 더 그렇다. 하루 종일 삶에 찌든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변화도 없이 몇 십분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피곤해진다. 사실은 내 얼굴도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어느 역에라도 들른다면 조금은 신선해 보이는 얼굴을 태우게 될지도 모를텐데, 이 열차는 종착역까지 가는 동안 어디에도 서지 않을테니 신선한 얼굴의 가능성은 없다. 사실 이 밤에 신선한 얼굴을 기대하는 심보가 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밤의 얼굴은 신선할 수가 없다. 어둠에 찌들었으니까. 고개를 들어 반대편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하루 종일 밝은 해에게 시달려 형광등도 버거워 보인다. 빨리 집에 가자,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숨어 있는 시간도 필요해… 당신에게도?

 by bluexmas | 2009/09/03 00:11 |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9/03 14:06 

지루함의 이산화탄소…말만 들어도 축 늘어지는 느낌이네요

본인 표정관리도 안 하고선 남의 무뚝뚝한 얼굴 보며 “좀 웃어주지”…속으로 투덜대요

그래서 웬만하면 외출 중엔 보살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거 정말 피곤한 일이더라구요. 소리내서 웃는 건 아니지만 우야든동 웃으면 살 빠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하여요-w-;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4 11:17

삶에 찌들어서 살다 보면 참 표정 관리하기가 쉽지 않죠. 웃어서 손해볼 건 없는데 또 사회 일각에서는잘 웃는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도 있고… 역시 표정관리하기가 쉽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