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낮술(8a)-짝퉁 치아바타와 무화과/브리치즈 샌드위치

몰랐다, 생무화과를 살 수 있는지. 사천원짜리 평양냉면을 먹으러 제기동 시장에 들렀다가 청과물 시장에서 무화과를 발견하고는 어찌나 반갑던지… 풋내가 좀 나기는 하지만, 무화과의 부드러운 단맛은 일품인데 특히 언젠가 글을 올렸던 것처럼 브리치즈와는 찰떡궁합. 무화과를 보자 그 전날 코스트코에서 산 샤도네이가, 브리치즈 샌드위치가 생각났다. 토요일에 해 먹으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음식이 있었으나, 뭐 두 병 마시면 되는거지. 무화과는 잠깐 반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술도 있을때 꼭 이 샌드위치를 해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홍대 앞에 갈 예정이어서 쿄 베이커리에서 보았던 치아바타도 생각났다. 바게트도 좋지만 이왕이면 치아바타로… 처음 본 곳에서 바로 사지 않고, 시장을 좀 돌다보니 딱 두 바구니 남은 걸 한 바구니에 이천원씩 팔길래 떨이로 삼천원에 달라고 해서 들고 왔다. 아무래도 동년배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얼굴이다 보니, 이런 데에 좀 강한 편이다. 덤이나 떨이 얻기 같은…^^;;;

한 가지 실수라면 무화과가 얼마나 익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게 나중에 보니 정말 익을때로 익어서 바로 뭉개지더라. 어째 예감이 불길해서 브리치즈를 사러 신촌 현대백화점에 들렀다가 길건너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사서 거기에 봉지채 담았는데, 한 서너개는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어쨌든, 신촌현대백화점에서 브리치즈를 찾았는데 요즘은 국산도 상하나 덴마크 상표로 나오더라. 그러나 나의 선택은 프레지던트. 이것도 뭐 더 나을 건 없었지만, 그래도 먹어봤던거라서… 언제나 그렇지만 브리는 치즈라기 보다는 버터의 느낌이다. 이 작은 한 덩어리에 할인해서 육천 구백원, 나쁘지 않은 편이다.

최종 목적지가 홍대라서, 상수역 근처 쿄 베이커리에서 치아바타를 찾았는데, 정말 내 손바닥 하나 만한게 천 팔백원이더라. 다행이 두 개를 사니까 남은 하나를 그냥 주셔서 세 개를 두 개 가격에 샀으니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 빵이 정확하게 치아바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 다들 아는 얘기지만 샌달이나 슬리퍼를 닮아 이탈리아어로 그걸 일컫는 ‘ciabatta’ 가 이름이 된 이 빵은, 아주 물기가 많은 반죽으로 구운, 겉은 딱딱하며 속은 크고 불규칙한 구멍이 특징이다. 그런데, 어째 살때도 그렇게 딱딱해보이지 않던 이 빵을 집에 와서 만져보니, 거의 모닝롤 수준이었다. 반을 갈라보니 크고 불규칙한 구멍? 전혀 없었고 그냥 고른, 식빵 종류의 작고 고른 구멍들이 가득했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그렇게 물기가 많은 반죽이 아닌, 거의 식빵 반죽으로 구운 빵이라는 느낌이었고,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 말고도 우유나 버터와 같은 재료가 들어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바게트를 사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화과도 부드럽고, 브리치즈도 부드러우니 거기에 이렇게 부드러운 빵을 쓰면 식감의 조화가 전혀 없는, 씹는 맛을 찾을 수 없는 샌드위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 집 빵이 맛있기는 하지만, 이 빵은 확실히 치아바타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에 빵을 사러 가게 되면 물어볼 생각이다.

어쨌든 빵이 나를 속여도 노여워는 하지 말아야지… 무화과 맛을 보니 역시 풋내는 나고 조금 싱겁다. 잠시 생각하다가 뭉개진 무화과를 설탕시럽과 함께 갈아 puree를 만들어 소스처럼 쓰면 맛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좀 촉촉한 느낌을 더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언젠가 요리프로그램에서 경쟁자들한테 이상한 재료를 줘서 30분안에 뭔가 만들어 내라고 그랬는데, 누군가가 무화과를 받고는 딱 저런 식으로 해결을 했던 생각이 났다.

샌드위치에만 넣기에는 무화과가 남을 것 같아서, 단맛도 보강할 겸 장난을 좀 쳤다. 얼마전에 홍대 앞 호미화방에서 금속공예에 쓰는 토치를 채 삼 천원도 못 되는 가격에 샀는데, 그걸로 흔히 말하는 brulle를 했다(맞다, 그 크림 브’휠’ 레의 brulle, 불어로 ‘태운’ 의 의미라네). 설탕를 살짝 뿌려서 토치로 불 세례…우와, 화력이 엄청나게 좋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어쨌든 말은 많았지만, 샌드위치는 딱 5분 만에 만들 수 있다. 재료를 차례차례로 쌓고 무화과 퓨레를 얹고, 접시에 담아 내면서 장난을 쳤다. 맛을 보니 역시 빵이 맛있지만 그 식감은 정말, 눈물이 났다. 폭신폭신해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샌드위치 자체의 맛 조화는 괜찮았고, 브리며 무화과며 그 모든 게 합체된 샌드위치마저 맛의 느낌이 풍성하고 넓은 느낌이어서 아주 굵지는 않아도 중간은 가는 샤도네이가 잘 받쳐주었다. 거기에 적당한 크기의 느낌표를 꼭, 찍어주는 신맛이 느끼함도 덜어주고.

이래서 졸지에 부랴부랴 만든 샌드위치와 함께 먹은 낮술, 그러나 이것은 본식도 아니었으니 곧 나온다, 이날의 주연 음식…

 by bluexmas | 2009/09/01 09:58 | Taste | 트랙백 | 덧글(27)

 Commented by Joanne at 2009/09/01 10:40 

매번 아니라고 말씀 하시지만 보세요! 이렇게 다 잘하시는걸요! ㅎㅎ 나중에 시집가기 전에 저 요리나 좀 가르쳐 주심이….(누가될 진 모르지만 요리 못하는 저화 결혼 할 남자가 벌써 불쌍해지기….아흥)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2

앗 저는 누군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_-;;;;

이것도 사실 정말 간단한 샌드위친데요-_-;;; 뭐 음식 만들줄 아는 게 중요할라구요 서로 사랑하면 -_-;;;

 Commented by 가젤 at 2009/09/01 11:47 

치아바타라면 바게뜨의 간지가 좀 풍겨야 하는데 저 빵은 말씀처럼 네모진 모닝롤에 가깝네요

무화과 진짜 좋아하는데 우왕~ 맛나겠어요.

샌드위치가 탄생하기까지의 엄청난 정성들에 그저 넋을 잃고 갑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3

그렇죠? 저런 치아바타라고 할 수 없는 빵입니다. 그냥 롤이죠. 사실 정말 간단한 샌드위치였어요. 조리도 필요없었구요^^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09/01 11:49 

치아바타가 아니예요.;ㅂ; 치아바타를 따로 파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홍대 정문 근처에 있던 제니스 카페는 직접 만든 치아바타로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다음번엔 직접 만드셔서…-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4

어제 압구정동에서 우연히 어떤 빵집을 찾아서, 거기에서 치아바타를 샀는데 그것 역시 제가 생각하는정도는 아니더라구요. 사람들이 그런 정도로 딱딱한 빵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아무래도 곧 한 번 만들어봐야 겠네요-_-;;;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09/03 07:37

홍대에서 치아바타를 파는 곳을 한 곳 더 봤지만 거기도 제대로 맛이 날지는 모르겠습니다. 거기 말고는 이전에 신세계 본점의 베키아앤누보에서 본 것 같고요.

 Commented by 제이 at 2009/09/01 12:03 

아아아아-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6

으으으으-_-;;;;

 Commented by 제이 at 2009/09/03 15:14

이젠 부럽다라든가. 저도 먹고싶어요라든가 ………그런 덧글쓰기도 죄송해염.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4 11:19

아이구 별말씀을요… 올렸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저야 뭐 민망하면서도 즐거운데요^^

 Commented by 쿠뇽 at 2009/09/01 13:56 

브’휠’레라고 강조하셨으니 저도 샤’흐’도네… ^^

샌드위치 맛있어 보입니다! 무화과는 껍질을 까지 않는 건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7

무화과는, 사실 아이스크림 같은 걸 만들때에는 껍질을 벗겨야 되는데 너무 익어서 껍질을 벗길 수도 없더라구요. 또 껍질 벗기는 게 엄청나게 귀찮아서 웬만해서는 그냥 먹습니다.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9/01 15:48 

단순히 치즈 포장 벗긴 거랑 무화과를 자른 사진만 봐도 멋스런 요리로 보이는 이 현상 어쩜 좋아요 책임지세요-w-….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7

앗 책임까지 지시라니 두렵습니다T_T;;;;

 Commented at 2009/09/01 18: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8

네, 즐기셨겠죠? 제 입에는 다소 얌전하게 느껴지던데 어떠셨을까 모르겠네요.

 Commented at 2009/09/02 00: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9

네, 사과에는 조금 더 딱딱하고 냄새나는 치즈를 곁들여도 좋구요. 과일의 단맛과 치즈의 짠맛, 그리고아삭아삭함과 끈적하고 부드러움이 잘 조화를 이뤄서 과일과 치즈는 디저트로도 좋은 궁합이죠^^

 Commented by december at 2009/09/02 09:50 

>< 브리, 무화과 다 너무 좋아하는데. 오늘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날인가봐요. 이 글 읽으니 또 배가 고파진다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2 17:19

미국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미친 듯이 살찌니 조심하시기를- 저 역시 한 15kg 쪘던 과거가 있지요~

 Commented at 2009/09/03 09: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4 11:18

제 말 들어서 손해볼 건 없는데…-_-;;; 차 없으면 불편할텐데, 버지니아나 디씨는 법이 다를 수도 있으니 한 번 잘 알아보세요. 다른 동네라면 빨리 딸 수 있을지도.

10불 이하의 저렴하고 괜찮은 술이라면 저에게 물어보셔도 될 듯…^^

 Commented by 유우롱 at 2009/09/04 11:22 

아아 무화과 무화과 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브리브립릐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4 11:43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무화과를 좋아하시는 군요^^ 브리야 뭐 워낙…

 Commented by Claire at 2009/09/05 03:28 

샌드위치가 근사한데요? ^^

무화과! 저는 건무화과만 먹어봤었는데

며칠 전 우연히 청계광장 지나다가..

농산물 홍보의 일환으로 무화과 시식회를 하더라구요 ^^

그 때 생무화과를 처음 먹었는데

먹기는 좀 불편하지만 달큰한 것이 맛 좋더군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9/05 11:38

생 무화과도 풋내가 좀 나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시장에 나가 봤는데 또 이 동네에는 없더라구요. 벌써들어간 건 아닐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