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늦은 밤에 장을 보러 이마트에 갔다가, 결국 짐이 불어나서 택시를 타게 되었다. 보통 이마트 앞에 있는 택시 정류장에서 몇 대씩 손님을 기다리기 마련인데, 늦은 밤에는 별로 없어서, 길을 건너서 타려고 건물 앞 건널목까지 나갔다가 막 길을 건너려던 차에 정류장으로 들어온 택시를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별로 나이가 많지 않은 기사였는데, 내려서 피우려고 막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담배를 끄고 다시 운전석에 앉는 것을 보았다.
나는 왠지 그 기사가 피우려던 담배까지 끄고 나를 태운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껴서 ‘피우셔도 되는데’ 라고 말을 붙여봤으나, 그는 ‘차에서는 안 피워요’ 라고 생각보다 썰렁하게 대꾸를 하고 차를 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정말 맹렬히 과속해서 집에 나를 내려놓고는, 수고하시라고 건너는 내 말에조차 대꾸도 없이 차를 몰아 사라졌다. 그는 화가 난 듯 보였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데 손님이랍시고 와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일로 화가 나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그런 인간이었는지 나는 헤아릴 길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서비스 직종 가운데 택시만큼 서비스를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70% 정도의 택시 기사는 자기에게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사는 사람에게 불친절하다, 그리고 나는 그 불친절이 위에서 언급한 적대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적대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위치가 누군가에게 차를 몰아주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따지면 버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또 버스 역시 불친절하고 거칠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버스를 탔을 때에 웬만해서는 버스 기사와 개인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건 버스라는 교통 수단의 크기와, 그 크기에서 나오는 공간감 때문이다. 버스는 크고, 또 다른 승객들도 타니까 그 불친절함과 거칠음이 딱히 자기 자신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택시는 다르다. 당신 혼자서 택시를 탔다면, 그 크지 않은 승용차의 공간에 당신과 기사 둘만이 일정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당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고 택시 기사가 판단함에 따라 그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나처럼 늘 나이만큼 어려보이지 않는 데다가 옷이라고는 반바지에 티셔츠 쪼가리를 걸치고 예의 바르게 부탁을 하면, 오히려 그는 더 적대감을 드러낸다. 나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 일대일로 차를 몰아 행선지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주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막말로 얘기해서 택시 따위는 안 탈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란 어렵다. 그는 당신을 미워하니까, 당신에게 서비스를 주기 싫으니까.
지지난 금요일에 홍대앞에서 강남역까지 택시를 탔을 때에, 어이없게도 광명에서 왔다는 그 택시의 기사는 오십도 넘었는데 이거저거하다 망하고 나니, 자식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운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니 ‘이것 밖에 할 게 없어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많은 택시 기사들이 ‘이것 밖에 할 게 없어서’ 라는 생각으로 택시 운전을 업으로 택했기 때문에 애초에 불만이 쌓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을 그렇게 좁게 만든 사회에 대한, 또 그 사회 속의 사람에 대한 불만, 언젠가 어떤 일로 가지게 되었던 모종의 일이나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기억, 핸들을 잡으면 그런 생각이 나는 걸까? 그래서 자신에게 계속 핸들을 잡도록 만드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품는 것일까? 물론 나야 알 수가 없다, 추측만 할 뿐. 친하게 지냈던 고등, 대학교 동창의 아버지도 택시를 운전하셨는데 나는 내 친구를 봐서 그의 아버지가 불친절한 택시기사일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같이 밥을 먹던 고등학교 이 학년 때의 점심시간이었나, 그의 아버지가 택시 기사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가 택시 기사 전체를 싸잡아서 욕했다. 나는 속을 찔끔, 했는데 친구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정말 기분이 나쁜 건, 내가 택시를 타고 나서 이 따위의 글을 쓰고 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덧글을 달거나 안 달거나 맞장구치도록 만드는 현실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 by bluexmas | 2009/08/31 00:01 | Life | 트랙백 | 덧글(6)
직업선택이야 일단 넘어가고, 이 정도 요금체계에서 좋은 서비스 기대하는 건 솔직히 무리입니다. 그러니 빙 돌아서 요금을 늘리는 경우도 생기고,장거리 손님 태우려 승차거부하고, -아직도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미터기 끄고 바가지요금 부르는 것이겠죠.
유럽,일본 쪽에 가면 아무래도 택시 기본요금부터가 꽤 높죠. 일본 나리타공항>나리타 닛코호텔이라고 5분걸리는 곳에 1300엔을 받더군요;; 베를린도 베를린중앙역>티어가르텐 정도 8분 거리에 10유로 정도 나왔던 듯 하구요.
전 그 시큰둥한게 싫어서, 택시는 거의 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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