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chotomy of Silence

아주 가끔 뒷끝 걱정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대화 상대 자체를 찾지 못했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대를 못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얘기가 즐겁다. 무엇보다 머릿속으로 어떤 말은 하고 또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그냥 듣고 또 얘기하면 된다.

반면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연히, 힘들다. 혼자 있다면 모를까,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침묵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아니면 책임감 비슷한 부담을 느낄 때도 있다. 마치 저 사람이 내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이유가 내 잘못-편안하게 못 해줬다거나 좋아할만한 화제를 제공하지 못했다거나-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나마 보기에 침묵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얘기를 하고 싶은데 여러가지 이유로 못 하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많은 부분을 내 책임으로 알아서 돌리고 힘들게 생각해야만 하는 부담은 줄어드니까. 또한 이런 사람과 어렵사리 대화의 줄거리를 이어가며 얘기를 나누는 즐거움은 또 만만치 않기도 하고.

그러나 침묵을 어떠한 이유에서든 방어기제처럼 끌어 안고 호시탐탐 카운터 펀치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어렵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침묵이 천성이 아닌, 일종의 방어이자 공격 수단이다. 절대 먼저 말하지 않고, 그야말로 침묵을 지키며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상대방의 이야기 속에서 새어 나오는 헛점을 하나 둘 그러모아 뭉쳐놓고 기다렸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그걸 상대방의 입을 향해 던진다. 그의 무기는 ‘그건 그게 아니고’ 라는 이름을 가진 물매, 어느새 그는 오랜 시간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담석과도 같은 인간전체를 향한 미움을 꺼내 가운데에 넣고 상대방의 헛점을 뭉쳐 두었던 것인지…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매를 당겨, 돌을 던진다. 입에 돌을 맞은 상대방은 피를 흘리며, 당분간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 물맷돌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라고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가 주았던 것 같은데, 그렇게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떼로 모여 개체의 골리앗이 되고, 나머지는 소수로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윗이 된다. 지하철에까지 텔레비젼이 달리고, 어떤 골리앗의 전화기가 끊임없이 예능 프로그램의 소음을, 원하지 않는 다윗들에게까지 쏟아내는 가운데, 정작 이 시간 속에 단 한 번 태어난 많은 사람들에게는 침묵이 끝없이 강요되고 있다. 채 입 밖으로 내 뱉지 못한 말은 그 따뜻한 숨결을 잃고, 대체 어느 하늘 아래에서 흐느끼고 있나?

 by bluexmas | 2009/08/29 01:06 |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8/29 16:59 

제가 말을 좀 많이 하는 편이어서 그런가요, 저도 침묵을 지키는 상대방은 많이 불편하더군요. 비겁해보여요.

제 블로그 좀 잠시 봐주세요. 토픽 바톤이라는 것이 넘어왔는데, 한 말씀 부탁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4:53

제가 만난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좀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더라구요. 그랬다가 빌미를 잡아서 시비를 걸구요…

블로그 가 보았습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시면 관련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8/30 15:56

이번이 두번째지요. 너그러이 받아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제일 복잡한 주제를 드렸어요. 그래도 가장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1 23:31

^^ 감사합니다. 조만간 그 동네에 갈 일이 있으니 갔다와서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