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두 번 얽힌 하루

1. 책을 드디어 팔기 시작했다. 워낙 헐값에 팔으니 돈보다는 사실 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책을 사서 보는 데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아니, 책은 사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고 나서 쌓이는 책이 처치곤란인 건 벌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게다가 팔 생각도 없고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전공책들을 기본적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걸 생각하면, 필요가 없는 책은 어서 처분을 해서 짐을 줄이는 게 좋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팔기로 마음 먹고 꺼내서 인터넷을 뒤져봐도, 생각보다 팔 수 있는 책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는 좌절을 느낀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책=지식의 소우주, 라고 생각해봤을 때에 나에게 속할 필요가 없는 소우주들은 다른 더 좋은 주인을 찾는 게 나은데, 그럴 방법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고 책 매입을 한다고 말하는 인터넷 서점은 조금이라도 가격이 변했거나 하면 책을 받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설 종류의 책들은 아마 새거라도 속여서 서점에 내가 팔아도 그냥 다들 살 텐데, 책 벼룩이라도 해야 되나?

가장 처음 판 책은 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 였는데, 이 책이 절판이었더라. 내놓은지 하루만에 포항의 누군가가 사갔다.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미안한 소리지만, 10년 전에 하도 사람들이 폴 오스터, 폴 오스터 얘기를 많이 해서 몇 권을 사서 읽어봤는데 애석하게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번역을 탓해야만 하는 것일까?

2. 책장을 정리했다. 다섯 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칸을 더 작게 나누고 남은 칸막이들을 넣어 여섯 칸을 만들었다. 보면 화가 나는 책들은 붙박이 장 안에 쳐박아 두고 이제는 신경쓰지 않으리라고 마음 먹었는데, 신경 써야할 일이 좀 생겼다^^;;; 인연을 끊으려 해도 건축과 인연을 끊지 못하는 듯? 어쨌든 그래서 책을 다 내리고 칸막이를 다시 끼우고 또 책을 올렸다. 아아, 너무 귀찮은 일. 사진도 계속해서 비뚤어지길래, 귀찮아서 그냥 되는대로 찍었다. 맨 오른쪽의 책꽂이에는 건축관련 책을 꽂는데, 큰 책이 많다 보니 여섯 칸으로 나누면 아무 책도 꼽지 못하는 칸이 생긴다. 건축이라는 학문은 정말 쓸데없는 허세가 너무 심하다. 어제 오늘 ‘건축가 되기’ 따위의 책을 필요에 의해 읽고 있는데, 그 심히 자위스러운 잘난척에 구역질을 느꼈다. 이봐, 니들 아직도 다 직장은 다니고 있는거야? 라고 묻고 싶어졌다. 건축이라는 직업에는 창의력, $$$, ### 등등이 필요… 하다는 것에 나도 동감은 하는데, 어쨌거나 밥은 먹고 살아야지.

 by bluexmas | 2009/08/28 01:40 | Life | 트랙백 | 덧글(16)

 Commented by basic at 2009/08/28 02:11 

폴 오스터는. 영문판으로 읽어야 느낌이 확 오는 것 같아요. 저도 한글판으로 moon palace 읽었었는데 별 느낌이 없었어요. 근데 영문으로 읽으니까 너무 다르더라구요. 미국작가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이 사람만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작품 구하기가 힘든데…그 책 아쉽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28 02:43

아마존에는 이것저것 꽤 많이 있는데, 캐나다로는 배송이 안 되는 걸까요? 심지어는 하루끼도 원어가 아니라 영어로 읽어도 느낌이 다르다고 누가 얘기해서 충격을 좀 받았다니까요.

 Commented by basic at 2009/08/29 01:18

하루키 작품은 영문판과 한국판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데. 영어로 읽으면 느낌이 참 달라요…하루키는. 한 작품안에서도 어떤 부분은 영어로 읽을 때가 더 느낌이 살고 어떤 부분은 한국어가 나은 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5:01

그렇군요.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잘 안 읽게 되어서요. 일본어를 모르니까 그렇더라도 영역으로는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그것도 잘 안 되네요.

 Commented by weed at 2009/08/28 07:47 

하루키는 그럴 수 밖에 없겠네요.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하는건 번역이라기 보다는 이미 창작의 영역이니까;; 반면에 일-한 번역은 웬만해서는 뉘앙스가 다 살지요. 문법이나 어휘가 상당부분 일치하거든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28 13:30

앗,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15년 전에 제가 멀쩡하다고 읽었던 하루키의 번역본들이 생각보다 별로였고, 일본어-우리말-영어 모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영어로 읽으면 그 느낌이 좋다고 했던 얘기를 옮기려던 것이었는데요-_-;;;; 요점은 우리나라 번역은 어디로 가는 걸까? 였습니다…

 Commented by worldizen at 2009/08/28 13:27 

맞아요..하루키도 영어로 읽으면 그 유머가 살지 않는 것 같아요. 영어로 웃기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그 느낌이 살지를 않더라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5:01

그런가요? 더더욱 영역판 하루키를 한 번 정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정말 너무 오래 되었더니 하루키를 읽는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모르구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8/28 15:17 

제목들이 잘 식별이 안됩니다만 <디지털이다> 사고 싶네요. 그리고 밑에서 두번째 책도 <사회와 건축공간>(시공사 맞나요)이라면 사고 싶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5:02

사회와 건축 공간은 팔려는 책은 아니구요. 디지털이다는 팔아야 되는데… 조만간 책 벼룩을 한 번 하려고 하니 많은 성원해주세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8/30 16:01

앗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빵과 책이라… 흥미 지수 200 돌파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1 23:33

네, 곧 벼룩 한 번 하겠습니다. 안 읽은 책들도 꽤 되거든요… 자랑은 아니네요 T_T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8/28 15:26 

번역 까는 글이 자주 보여서 왜 그러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된 걸 접하고 나니 몰입이 안 되는 게 확 느껴지더라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5:03

어릴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대다수가 잘못된 번역이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이상해지더라구요. 자꾸 번역을 안 믿게 되는 상황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문제의 많은 부분은 무성의한 번역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Commented at 2009/08/28 18: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5:03

저 역시 뉴요커 마인드는 아니라서요… 어떤 것들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기도 어렵죠, 워낙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