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인간의 고립
이마트에서 때가 되면 삼다수 큰 병 여섯 개 들이를 사오곤 하는데, 이게 너무 무거워 단지 앞 가게에서 한 번 사 보았다. 한 병에 천 백원씩 받으니 여섯 병이면 육천 육백원이지만 한꺼번에 사니까 깎아서 육천원에 해 주겠다는 가게 주인 여자의 생색이, 나중에 이마트에서 가격을 확인하니 같은 여섯 병에 사천 오백 얼마였다는 걸 알고 나서도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내 기분을 나쁘게 했던 건 ‘카드 쓰지 마요’ 라는, 다른 무엇인가를 더 사고 카드로 계산하려는 나를 막아서는 그 여자의 하대에 더 가까운 존대였다. 깎아주니까 카드를 쓰지 말라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기분이 무척 나빴다. 내가 조금 더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라면 그 여자가 뭐라고 말하든 무시하고 그냥 카드로 계산을 했을텐데, 또 그런 얘기를 들으니 카드를 쓰기가 뭐해져서 남은 현금을 탈탈털어 계산을 했고, 그러고 나니 결국은 나 자신에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는 멀리에서 무겁게 들고 오는 한이 있어도 저기에서는 다시 물을 안 사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인터넷을 뒤져, 대충 그럴싸한 가격에 파는 것들만을 골라 주문했다. 이러면 무겁고 귀찮게 멀리에서 들고 올 필요도, 내가 나이 어려 보인다고 대충 대하는 가게 주인여자도 상대할 필요도 없어진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이라는 게 결국 인간의 고립을 심화시키나? 얼핏 겉만 보기에는 그런 것도 같다. 가게에 갈 필요를 없애버리니까 가서 사람들이랑 어떻게든 부대낄 근원이 없어지는 셈이고.
그러나 한 번 더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결국 인간을 고립시키는 건 같은 인간일 뿐이다. 사실 나는 인터넷 주문을 귀찮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태껏 몇 번 시도해보다가 끝을 맺지 못했었다. 지마켓이며 인터파크며, 그 정신 하나도 없어지게 반짝거리는 GIF도 싫고, 겉으로 보기에는 X원에 파는 것 같지만 실제로 물건을 살때 보면 얼마나 더 붙기도 하는, 반 속임수에 가까운 장삿속도 싫은데다가 뭔가를 계속해서 쳐 넣게 만드는 전자상거래 시스템 역시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가장 가까운 가게를 시험삼아 찾아가봤던 것인데, 가게 주인 여자는 내가 다시 찾아가 물을 사고 싶지 않도록 만들었고, 결국 나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인터넷에서 물을 주문하고야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서도 인터넷이 인간을 고립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보다 더 생활에 가까운 쪽으로 화제를 돌려, 인터넷 때문에 실제세계의 상점이 잘 안 된다고, 불평하는 걸 맞장구 쳐 줘야만 하는 걸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다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딱 듣거나 보기만 해도 전혀 안 친절하고 싶은데 시켜서 그런 척하는 가짜과잉친절함이나, 아니면 아예 드러내놓고 친절하게 굴고 싶지 않은 불친절함으로 양분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전자는 각종 텔레마케팅이나 고객상담센터에서, 후자는 저 따위의 동네 장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어떨 때에는 후자보다 전자가 더 싫다. 가식은 인류의 적이니까.
# by bluexmas | 2009/08/15 03:43 | Life | 트랙백 | 덧글(12)
그런데 저도 혼자 살기 시작한 뒤 한동안 물을 사다 먹다가, 지금은 브리타 정수기를 씁니다. 십여년전 쯤에 열심히 쓰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안썼는데, 역시 이게 정답이지 싶습니다. 저는 보리차를 계속 끓여 식혀 먹습니다만, 그냥도 마십니다. 물론 요리할 때 두루 쓰고요. 필터만 제때 갈아주면 맛도 괜찮습니다.
예전에 일화가 있습니다. 남 잘 안 믿으시는 제 아버지께서 끝내 여기서 걸러진 물을 들고 무슨 수질 검사 하는데를 다녀오셨지요. 조그만 통에 걸러진 물이 어째 너무 간단하다고 계속 불평을 하시다가, 거기 다녀오신 후로는 아무 말도 안 하셨다는 슬픈 전설이 제 본가에 아직도 전해내려옵니다.
전 제일 싼 물로 시킵니다만 오륙천원대에 삽니다 ~_~
저 주인은 저래놓고는 인터넷때문에 자기들 장사가 망한다고 하겠죠?
우리나라 서비스업 대우가 그 모냥인게 (호텔 서빙이나 동네 알바나 시급 4천원인건 거기서 거기) 서비스의 질을 너무 하찮게 생각해서인것 같아요. 그거 받고는 일하는 입장에서도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 할 수밖에 없고, 그럼 업주 측에서도 올려줄 이유는 없어지고.. 악순환.. @_@
마음에서 우러나서 서비스 할 수 없는 여견인게 참으로 안타깝죠. 오늘 밤에도 이마트 갔는데 그 여자 점원의 ‘어서요세요 손님, 즐거운 쇼핑되세요’ 전 차라리 녹음기로 틀은 소리를 듣고 싶더라니까요 T_T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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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heima를 듣고서 시규러 로스의 모든 앨범을 늦게 사서 들었고, 최근 글을 올린 riceboy sleep도 듣게 되었는데, 참 좋더라구요. 겨울이 다가와야 조금 더 좋게 들리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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