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버터를 사재기한 이유
뭐랄까, ‘너이기를 원했던 이유’ 같은 거라면 좀 멋지기라도 할 것 같은데 그저 땅콩버터를 사재기한 이유라니 어째 좀 좀스럽다. 땅콩버터는 그저 땅콩버터일 뿐, 금도 아닌데.
아무 것도 들지 않고 그저 땅콩과 소금만으로 만든 땅콩버터를 찾아 헤매다가 지쳐 이마트에서 산 스키피와 타협하고 살던 어느 날, 현대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사진의 땅콩버터를 무려 반값에 파는 걸 발견했다. 기름이 위에 분리되어 떠 있는 걸 보니 땅콩만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땅콩버터. 그렇지 않아도 Peanut Butter & Company는 땅콩버터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인데다가, 맨하탄 번화가에 샌드위치만 파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는 그야말로 땅콩버터의 전문가들인데 대체 어떤 연유로 이들의 땅콩버터가 여기까지 굴러들어와서 스키피 따위에 밀려 반값에 팔리고 있는 걸까?
…라는 물음을 가지려다가 일단 월간 땅콩버터 소비량과 진열되어 있는 땅콩버터들의 유효기간을 살펴보고는, 그 유효기간이 다 할 때까지 먹을 수 있을만큼을 사버렸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사진에서처럼 흐뭇한 마음으로 탑쌓기 놀이를 했다. 그래봐야 한 통에 삼천, 삼천 오백원 정도였으니까.
왜 이 땅콩버터들이 반값에 팔리고 있었을까? 아마 잘 안 팔려서? 그렇다면 왜 잘 안 팔렸을까? 추측해보건데, 위에 저렇게 기름이 뜨는 걸 보고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뚜껑을 열고 저어서 위아래를 섞어주기가 귀찮았던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떤 땅콩버터들은 멀쩡한데 왜 쟤들은 위에 저렇게 기름이 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그냥 스키피 따위를 들고 갔을 가능성이 무척 크다.
스키피처럼 상온, 혹은 버터가 딱딱해지는 냉장실 안에서도 꺼내 바로 펴 바를 수 있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땅콩버터에는 수소화된 지방(Hydrogenated Fat)이 들어있다. 간단히 말해서 불포화결합을 가진 유기화합물에 수소를 더해 포화결합상태로 바꿔주는 것인데, 이 기술 또는 화학반응은 1900년대에 독일과 프랑스의 화학자들이 개발해 식물성 기름으로 마가린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같은 기술로 요즘 나오는 ‘버#가 아니라니 믿을 수 #어’ 와 같은 제품들이 냉장실에서 갓 꺼낸 그대로 빵에 발라 먹을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수소화된 지방이 골칫거리가 된 것은, 요즘 모두가 호환과 마마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트랜스 지방이 바로 이 수소화 과정을 거쳐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소화된 지방이 더해졌으면서도 트랜스 지방은 없는 마가린 종류가 나온지도 오래니까, 이 문제는 철저히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맡기는 편이 낫다. 개인적으로는 트랜스 지방을 논하기 이전에 맛과 질감이 싫어서 수소화된 아쟈유 등이 들어간 땅콩버터는 사먹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소화된 지방이 더해진 보통의 땅콩버터가 아니라면 땅콩버터가 들어가는 쿠키레시피 따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수소화된 지방이 없으면 온도에 따라 땅콩버터가 그냥 액체로 변해 흘러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순수하게 땅콩만으로 만든 땅콩버터는 맛을 위해 노동력을 바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뚜껑을 열어서 기름이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버터칼이나 젓가락 따위로 버터를 저어 기름을 최대한 잘 섞어준 뒤 냉장고에 다시 넣어서 어느 정도 단단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저어도 바닥에 이르면 기름은 없는 딱딱한 땅콩덩어리를 만날 확률도 높다.
사실 그 중독되기 쉬운 맛과 질감 때문에 땅콩버터는 위험한 음식이기는 하지만, 적당히 먹는다면 단백질 섭취원으로도 훌륭하다. 통밀빵에 땅콩버터를 한 숟가락 정도 바르면 열량도 적당하고, 영양소도 골고루 얻을 수 있는 간식이 되니까. 영화 ‘A Love Song for Bobby Long’의 스칼렛 요한슨처럼 땅콩버터를 바른 숟가락에 엠엔엠 초콜렛을 찍어서 먹으면 대략 낭패.
*참고문헌: Harold McGee / On Food and Cooking, 네이버 사전
# by bluexmas | 2009/08/12 10:21 | Taste | 트랙백(1) | 덧글(55)
제목 : 트랜스지방은 어떻게 생길까..
땅콩버터를 사재기한 이유 이 글을 읽다가 의문이 들어서 트랙백 합니다. 탄소 이중결합을 갖고 있는 액체 기름(불포화지방)을 경화시키리면 수소를 첨가해야 합니다. 위 그림의 탄소간 결합(C=C)을 이중결합이라고 하고, X의 위치에 따라 시스와 트랜스로 나뉩니다. 참고로 위 그림은 시스형태입니다. 여기서 X에는 다른 알켄이 쭉 이어지거나, 글리세롤이 붙어서 지방의 구조를 이룹니다. 보통 이 불포화지방……more
언젠가는 집에서 땅콩버터 만들어 먹는 글도 올라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후후후….;;;
유화제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 기름이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마트내 유기농매장에서 파는 땅콩버터는 다 저렇고 훨씬 더 비싸게 팔리고 있지요.
원래 비싸게 팔려야 할 땅콩버터를 싸게 팔고 있는 이유라면 유통기한 마감 임박 밖에 없습니다.
백화점에서 수입과자를 반값세일 할 때도 다 저런 이유지요.
덧글을 쓰시려면 글을 읽고 쓰시던지요.
자세한 내용을 쓰셨군요. 죄송.
저도 한달전에 롯데백화점에서 저거 2천원에 팔고있길래 사려다가
유통기한이 어디에도 찍히지 않아서 찝찝해서 안 샀는데.
저건 정확히 적혀 있군요.
엠엔엠 속에 아예 피넛버터가 들어가있는거 저 진짜 좋아하는데 ㅋㅋ아 근데 살이-_-;;
땅콩이랑 소금으로만 만든 건 스키피 같은 애들이랑 맛이 많이 다른가여?
가끔 사람들 보면 오히려 진품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은듯여ㅋ
땅콩이랑 소금으로만 만든 건 수소화된 기름이 빚어내는 조금 더 부드러운 질감은 없어요. 어느 부분은 좀 뻑뻑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가짜가 많아지면 진짜가 가짜행세를 하게 되죠.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그게 바나나 맛이라고 우겨대는 것처럼…
그나저나 전 첨에 사진만 보구 헉 블루크리스마스님 이젠 땅콩버터까지 만드셨나요!! 라고 생각했어요=ㅂ=;; 뭐든 만드는 남자 이남자.. ㅋㅋ
땅콩버터는 만들 수 있는데 저런 통은 만들기 좀 어렵지요… 뭐든 만들지는 않는답니다^^ 초콜렛 같은건 그냥 사먹어요. 물론 일년에 한 두 번 사먹지만;;;
그런데, 미국의 식품공업이라는게 가짜를 더 잘 만드는 꼼수를 부리는데 능해서, 아마 방법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싶네요-_-;;;;;
어디에요~ 어디~ ㅋ
비어버린 통과 함께 몰려오는 허무함은 크리지만요.
사진보고 덧글 달다보니 몰려오는 땅콩버터에 대한 갈망이 으아….ㅜㅜ
먹은 칼로리에 대한 눈물이 빈통을 꽉 채우더라니까요 T_T
정말 사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어요-_-;;;;
저도 이 회사에 관심을 많이 두지는 않는데, 꽤 많은 종류의 땅콩버터를 만들더라구요.
크런치와 스무스 오퍼레이터 각 1개씩 사왔어요. 크런치는 재고가 딱 1개 있는걸
가져왔답니다. 후후후^^
좋은 정보 감사해요. 그런데 저 휴가여행 다녀와서 돈 아껴야 하는데 어흑..ㅠㅠ
그래도 한 칠천원밖에 쓰지 않으셨으니 재정적 손실이 그렇게 크지 않으실거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끊었지만 예전에 스키피를 즐겨먹었기 때문에 흠칫했어요. -ㅁ-;
저 땅콩버터는 처음 보네요 ^^
여튼 정보 감사합니다~
(이러니까 정말 홍보대사 같네요-_-;;; 돈은 안 받았어요 정말…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