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탄의 컬트 짬뽕집 ‘영빈루’- 기대만큼 하는 짬뽕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참맛을 보러 전국 각지를 여행한다지만, 서울에서 짬뽕 한 그릇을 먹으려 송탄까지 내려온다는 건 그만큼 그 짬뽕이 가치가 있다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 곳에 살기 시작한 지난 몇 달 간 그 짬뽕 맛을 보러 송탄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정말 맛 때문이 아니고, 남들 다 먹으니까 나도 먹는다는 생각으로는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멀거나 오래 기다리는 집들은 웬만하면 먹으러 가지 않게 된다).
내가 말하는 이 곳은 오산이다. 그러므로 나는 게으른 인간.
여전히 무더워서 중국음식은 입에도 대고 싶지 않은 저녁이었지만, 쭐레쭐레 전철을 타고 송탄으로 향했다. 내려서 좀 헤맸는데, 오산에서라면 버스도 얼마든지 타고 갈 수 있었다. 일곱시를 넘은 시간이었으니 저녁 때가 지났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꽤 많은 편이라, 나와 일행은 주문을 넣고 문 앞에 서서 앞의 두 무리를 먼저 보내고 난 뒤에야 자리, 그것도 사람들이 등 뒤에서 기다리는 거울 기둥 앞의 바로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신관에 가면 되려나… 생각하다가 기다리더라도 처음이니 구관에서 먹자, 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먹고 길을 걸어내려가 보니 신관은 건물 자체가 아예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공사중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잘 모르겠다. 처음 계획은 간단하게 짜장면과 짬뽕, 거기에 만두만을 먹으려고 했는데 만두가 안된다고 하더라. 앞으로 아예 안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어서 나가면서 다시 물어봤더니 만드는 분이 몸이 안 좋아서 일을 못하신다나? 물어보는 사람이 꽤 되는 듯 얘기해주는 분도 좀 짜증이 난 분위기였다. 어쨌든 그래서 과식을 염두에 두고 탕수육을 시켰다.
윗층에서 음식이 내려오는 듯, 조금 기다려서 탕수육이 나왔는데 두 번 정도 튀긴 것으로 보이는 탕수육은 적당히 간이 된 튀김의 상태가 훌륭했다. 튀김이 맛있으려면 튀김옷을 입는 고기에도 간을 잘 해야 하지만, 튀김옷에도 간을 해야만 한다. 영빈루의 탕수육은 짠맛이 아주 약간 두드러지는 튀김과 옛날 느낌의 하얀, 단맛의 소스가 아주 잘 어울렸는데, 오히려 튀김이 조금 뻣뻣한 감이 있어서 소스와 적당히 섞어서 먹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연이어 나온 짬뽕과 짜장면. 사실 매운 기름맛만 두드러지는 깊이 없는 짬뽕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짬뽕맛이 이래야 한다고 읊을 능력은 없지만, 하나의 독립된 음식으로서 이 짬뽕은 훌륭했다. 구수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은 맛이 닭고기 국물은 아닌 느낌이었는데, 기름기가 없는 돼지고기도, 칼집을 꼼꼼히 넣은 오징어도 좋았다. 엉터리 짬뽕은 국물의 매운맛이 면과 어우러지지 않고 겉돌 뿐인데, 영빈루의 짬뽕은 그렇지 않았고 또 그렇게 맵지도 않았다. 오히려 심심하다 싶게 얼큰했다고나 할까? 면의 촉감도 너무 쫄깃거리지도, 또 너무 미끈거리지도 않고 적절했다.
거기에 짜장면은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윤기가 나는 까만 춘장이 끈끈한 것이 맛의 느낌이 어디에선가 옛날짜장이라고 읊어대는 그 옛날짜장들과는 다른, 정말 아주 옛날에 먹어봐서 기억 속에서도 간신히 남아있는 옛날 맛의 짜장이었다. 거기에 면도 보조를 맞추느라 그랬는지, 짬뽕의 면과는 조금 다르게 미끈거렸다. 전체적으로는 묵직하고 모서리가 아주 둥글둥글한 맛이었는데, 약간 심심해서 소금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벌써 잘 알려졌겠지만, 나도 살짝 언급하자면 짜장면은 이천원, 짬뽕은 이천 오백원, 그리고 탕수육은 만 오천원짜리를 내온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만원으로 정말 믿을 수 없는 가격이었는데 물론 서울이 아니라는 것을 백분 감안하더라도 동네 김밥집의 라면보다도 더 싼 가격에 이 정도로 질 높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기 조금 어려웠다. 그러나 가격까지 그러하다면 어디엔가는 모나거나 부족한 구석이 있어야만 하는 법, 바빠서 그렇겠지만 서비스라는 것은 없어서 눈치를 보다가 추가 단무지를 부탁해 간신히 얻었으며, 잘 먹고 좋은 기분에 명함이 있나 여쭤봤더니 그냥 고개만 젓는 주인 아주머니의 쌩함을 후식으로 얻었다. 물론 이 가격과 이 품질의 음식에 사근사근한 서비스까지 바라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심한 인간은 작은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고.
뭐 군산에도 잘 하는 짬뽕집이 있어서 서울에서 세 시간 차를 몰고 가서 이십 분을 줄서서 기다려서 먹기도 한다던데, 나는 그 정도의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할 것 같지 않으니 짬뽕 맛을 잘 모를지라도 영빈루의 짬뽕은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UPDATE: 칭찬 일색으로 써 놓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조미료를 만만치 않게 넣은 듯, 입안이 깔깔했다. 아무래도 짜장면이 의심스러웠다.
# by bluexmas | 2009/08/11 10:51 | Taste | 트랙백 | 덧글(8)
요새 짬뽕들은 홍합껍질 몇 개로 밀어붙여서 말이죠 ㅎㅎㅎ
송탄은 또 어디여 ㅠㅠ
제가 먹어본 바론 강릉의 교동반점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_@!
강릉이라면 바다니까 해물도 많아서 짬뽕도 맛잇겠네요.
송탄에는 미스진버거 밖에 먹어본 적이 없어요 ㅎㅎ 맛집 소개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