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바나나 우유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 바나나 우유라는 게 있었다. 바나나를 먹을 여건이 안 되었던 사람들은 대신 바나나 우유를 먹고, 그 맛이 바나나 맛이려니 생각하고 살았다. 잉어 우유도 아니고 소나무 우유도 아닌, 바나나 우유라는데 바나나 맛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바나나라는 과일이 흔하디 흔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그때 바나나 우유의 맛이 바나나 맛이라고 순진하게 믿던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진짜 바나나를 먹고 그 맛이 바나나 맛이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내 주변에서는 진짜 바나나를 먹고 화를 내던 사람도 있었다. 이게 진짜 바나나 맛일리 없다면서. ‘바나나 우유가 진짜야, 그 맛이 바나나 맛이야’ 라고 너무나도 멀쩡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니, 뭐라고 반박을 할 여지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래, 너는 바나나 우유나 먹고 살아라. 이 바나나가 흔하디 흔한 세상에서도, 그냥 바나나 우유나 먹고 그게 바나나 맛이려니 생각하고 살아라…그러나 제발 좀, 다른 사람한테는 그 맛이 진짜 바나나 맛이라고 우기지나 않았으면 좋겠구나. 액상과당이 널 그렇게 만들었니? 순진한 믿음이 세월 때문에 발효되어 고집으로 승화되면, 가끔은 짐승에게나 가할 수 있는 매도 약이 안 된다. 인류라는 생물체의 집단에 존재하는 저 따위의 감정은, 때로 후천성 면역결핍증 따위의 질병보다 더 지독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그 심각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 by bluexmas | 2009/08/09 00:57 | Lif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