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와 오징어
요즘 글을 잘 못 쓰고 있다. 아니 하루에 두 세 개씩 글이 잘도 올라오는데 무슨 엄살이냐고 누군가는 궁금해하겠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글은 그런 글이 아니다.
어떤 글을 쓰는 과정은 백 원을 넣고 하는 두더지 잡기나, 통오징어를 사다가 껍질을 벗긴 뒤 내장을 살살 빼내는 행위에 빗댈 수 있다. 두더지가 어느 구멍에서 언제 잽싸게 고개를 내밀지 모르는 것처럼, 어떤 생각은 언제 의식의 물 위로 그 고개를 빠꼼 내밀지 모른다. 그러므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냉동된 오징어를 샀고 또 그 몸통의 주머니를 그 모양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면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몸통을 채워 오징어 순대라도 만들라치면 내장을 빼내는 데에는 아주 약간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내장을 꺼내다가 끊어지거나 먹물주머니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대략 낭패, 물로 또 한참을 헹궈야한다. 이 과정에서 미끈거리는 점액질을 너무 많이 만지다가는 아예 밥맛을 밥통째 잃을 수 있으니 신경을 써야 한다.
흐름이 계속해서 끊기고 있다. 어떤 감각은 다른 쓰임에 헌신하다가 일시적으로 퇴화한다. 한 번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 재활기간을 만만치 않게 거쳐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내장을 빼려고 부엌에서 밥맛떨어지게 미끄덩거리는 것과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미끄덩거리는 것을 내팽게치고, 손을 닦고 수건을 들어 물기를 가셔내면서 달려가 전화를 받았더니 카드사의 홍보전화인경우도 있다. 손에 남아있는 비린내, 더 이상 만지기는 커녕 냄새를 맡기도 싫어진다. 쓰레기통에 미끄덩거리는 걸 쳐 넣어버린다. 힘이 쭉 빠져나가는걸 느낀다.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
# by bluexmas | 2009/08/06 22:33 | Life | 트랙백 | 덧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