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과 쓸데없는 이야기
그저께 한참동안 벼르던 책을 한 열 권 정도 주문하려고 아마존을 들여다 보다가 갑자기 전자책에 넋이 나가, 살까 새벽까지 인터넷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들어오기 전에도 심각하게 살까 고민을 했다. 싸가지 없게도 당분간은, 웬만해서는 번역서를 읽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영어책을 사야만 하고, 전자책을 살 수 있다면 부피를 생각하기 이전에 운송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자책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그러나 300불이 넘는 가격은 부담스러웠고, 나는 곧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더 이상 책이며 음반 따위를 물리적으로 모아서 쟁여놓고 사는 삶에 관심이 없어졌다. 누군가는 자기가 편집장으로 칼럼을 쓰는 잡지에서 으시대며 대학 4년 동안 목록에 올려 두었던 책 천 권을 읽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가 운동경기하듯 책 천 권을 읽었지만 그가 읽은 것은 단지 글자일 뿐, 행간에 서려 있는 생각하는 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읽은 글자는 그를 으시댈 수 있게는 만들었지만, 그렇게 책을 읽었다고 으시대는 것이 그가 읽은 천 권의 책을 쓴 사람들이 그에게 주려는 가르침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천 권을 읽었다고 으시대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지 그 책들에서 자신이 진짜로 얻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결국 책이며 지식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막말로 책 천 권이 정말 뭐 그렇게 대수라고? 어렸을 때에 읽은 동화에, 남에게 보여주려고 책을 전집 채로 사다가 책장에 가득 꽂아놓은 부자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책을 그냥 꽂아만 놓는 것도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육체적으로만 책을 읽고 계속해서 주워 섬기면서 결국은 자기 주장 없이 남의 주장의 껍데기만 따다가 우기는 것에 불과한 지적 폭력을 상대하는 것 만큼 또 피곤한 일이 없잖아.
전자책 얘기하다가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의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는데, 어차피 빠지는 거 뭐 확실히 빠지기 위해서 하나 더 얘기하자면 지식의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소위 말하는 ‘텍스트’를 그것도 말도 안되게 조져놓은 번역본으로 읽는 것 역시 참으로 애처로운 지적허세며 개인의 지적 능력 발달에 도움이 안 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유식한 사람들이 기본으로 들먹이는 ‘기표’ 며 ‘기의’ 따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에는 그 말에 딸린 의미가 있게 마련인데, 일단 국어 능력부터 안 되는 사람들이 사전을 뒤져서 영어와 일 대 일로 대응하는 한글, 혹은 한자 언어를 찾아서 대입하는 식으로 번역해 봐야, 그 말이 주는 의미도 모르면서 번역하는 것에 불과하고 거기에 역시 국어를 모르므로 작문 능력이 안 되어 문장 자체를 비문으로 번역하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문장이며 책은 곧 읽은 사람들이 그 내용의 어렵고 복잡함에 원작자를 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겠지. 거기에 원전이 영어가 아닌데 영어 번역본을 가져다가 중역까지 했다면, 그 책이 정말 ‘나 이 책 읽었어요’ 라고 티나 낼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읽을 가치가 있을라나? 더 웃긴 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책을 읽는 사람들도 또 원래 말도 안 되게 국어 자체를 모르므로 그게 이상한지 아닌지 생각도 안 하면서 읽으니 결국 그런 말도 안 되는 단어 일 대 일 대응과 비문 양성의 초라한 번역은 결국 전염병처럼 다음 대로 이어져 또 그 사람들이 공부 좀 했다고 똑같은 풍의 번역을 하게 된다는 사실… 이 무슨 애처로운 유사지식의 대물림인 것이냐. 우리나라 훌륭한 교육에 대학 졸업할 때까지 어려운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학원 갔으니 참 어려움에 도전해본다는 건 좋은데, 애초에 지식의 기반이라는게 아예 없는 상황에서 정말 무엇이 그 뒷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책 한 권을 자기들끼리 찢어 번역해서 세미나 몇 번 해서 그 내용을 이해했으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닐 때에 벌써 유토피아가 되었을 듯. 어쩌면 그 때 유토피아였는데 그때 그런 유사지식의 범람으로 오염되어 이제 아닐지도 모르고 뭐…
(그런 책을 하나 꺼내서 뒤져보니 바로 ‘이탈리아를 향한 전망이 비쳐지는 창틀의 형태 또한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라는 문장이 떡하니 튀어 나오는구나. 이젠 이런 문장이 잘못되었다는 걸 말하는 자체가 무의미하지… 왜 그런지 생각을 안 하니까. 잘못된 것을 바른 것처럼 너무 오래 썼으니까).
어쨌든, 다시 오산에서 삼천포로 돌아와서 전자책 얘기로 마무리를 하자면, 사려는 책들의 절반 이상이 전자책으로 출판되지 않아서, 돈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한 겹 더 얹어 기쁨의 눈물을 머금고 구매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리고 책 열 권인가를 주문하고는 운송료를 책 서너권 값 정도 지불해야만 했다. 참, 그 쓸데없는 걸 지고 다니지 않는 계획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돌아오기 전에 씨디는 케이스를 뽑아서 2/3 이상 버렸고, 어쩔 수 없이 끌고 들어온 우리말 책들 가운데 읽지 않는 것들은 곧 다 팔아 버릴 생각이다. 책 판돈이 다만 몇 만원이라도 되면 한우 등심을 사다가 구워 먹을 생각이다. 지적 자양분 팔아서 육체적 자양분도 좀 쌓아 보자.
# by bluexmas | 2009/07/30 00:36 | Life | 트랙백 | 덧글(14)
그리고 요리책은 사진 보는 맛이라서 어차피 전자책으로 나와도 사기 싫더라구요. 부엌에서 막 넘겨가면서 보는데, 전자책에 뜨거운거 쏟거나 하면…
비공개 덧글입니다.
제가 구세대라서 그런지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하는 습관이 들어서 킨들이 별로라는 생각이 드나봐요. 소설책같은건 킨들로 읽을만 한데 전공책은 그림같은게 representation이 좀 별로라서 잘 안 사게 되네요. 그래도 여행갈 때는 유용해요. 한번 충전해놓으면 1주일은 가니까요.
구립/시립 도서관에 조금씩 올라와 있고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는 것 같더라구요. 소설책 같은게 올라와 있으면 유용하게 읽게 되어요.
동작구: e-library.dongjak.go.kr
광주도서관 http://ebook.citylib.gwangju.kr/main/main.asp
울산도서관 http://ebook.ulsan.go.kr/main/main.asp
김해도서관 http://ebook.gimhae.go.kr/main/main.asp
다독하는 편이라 저도 지금 집에 책이 포하상태..-_-;
일단 킨들로 사서 보게 되면 책값이 싼데다 자리도 안 차지하고 e-book에 꽤 익숙한 편이라 크게 이질감도 잘 못느끼고 있어요. 단점이라면.. 생각했던 것 보다 용량이 크지 않고 밤에 읽을수 있게 되어 있는게 아니라 (어두운데서 읽을수 있게 라이트라든지 그런게 없어요..) 좀 약간 걸리긴 하지만, 책 읽어주는 기능이 있어서 요즘은 전철타면서 노래 대신에 그냥 책 읽어주는 기능 틀어놓고 들으면서 다니게 되네요.
쓰고 보니 킨들 애찬-_-.. 저도 킨들 가격은.. 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자책은 꼭 살 것 같아요. 디럭스판 킨들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일단 좀 기다려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