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삭 대장
한 십 오년 전 쯤에는 번역가로, 그로부터 오 년 쯤 뒤부터는 소설가로 정말 좋아해서 한 때 전작을 다 읽었으나 생각보다 빠르게 흥미를 잃게 된 어떤 분이 번역한, 그러나 내가 안 읽었던 소설을 우연히 손에 접하게 되었는데, 읽을 생각도 없이 그냥 딱 펼친 쪽에서 ‘아사삭 대장’ 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아사삭 대장? 이게 대체 뭘까… 문맥을 보면서 생각해 보니, ‘Captain Crunch’ 라는 이름의 미국 시리얼이 딱 생각나더라. 그럼 고유명사인 셈인데 아사삭 대장이라니, 아사삭 대장…번역하신 분의 이력에 보면 늘 미국 모 대학에서 모 분야의 교환 연구원을 하셨고 또 그로 인해 겪은 미국 생활을 소재로 산문집이며 소설도 한참동안 꽤 많이 쓰셨고 나는 그걸 거의 다 읽었던 터라, 이 양반이 이게 시리얼인지 모르실거라고 생각은 안 드는데, 그걸 굳이 ‘아사삭 대장’ 이라고 옮긴거라면 약간 ‘오버’ 했다고 생각해아만 하는 건가? 만약 캡틴 크런치가 아니고 ‘Corn Flake’ 였다면 ‘옥수수 쪼가리’ 라고 번역하셨을라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아스트랄, 까지는 아니고 ‘아사삭’ 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사삭 대장, 으음… 충격에 그 날 내내 길을 걸을 때마다 머릿속이 아사삭 아사삭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발걸음도 아사삭 아사삭 한게 별로 가볍지 않았다.
참고로 내가 저 양반을 한때 얼마나 좋아했냐하면, 혹시라도 내가 글 써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된다면 영향 받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고 싶다고 한 때는 생각했을 정도라서… 그러나 아사삭 대장은 좀 아사삭한듯… 아, 이 글 쓰면서도 타자소리가 아사삭아사삭 하고 나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렸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집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가 아사삭, 아사삭으로 들릴테니 문도 다 닫고 자야 될… 그것도 아니면 저 그림의 진짜 아사삭 대장이 꿈에 나타나 자기는 화가 너무 나서 누구에게라도 폭력을 휘둘러야 되겠다며 삽만한 숟가락으로 찢어져라 내 입에 아사삭 대장 시리얼을 쑤셔 넣을지도… 그러면서 정말 아사삭 아사삭 소리나게 씹으라고 그러면 어쩌지? 숟가락이 삽만하면 입이 찢어져서 씹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는 아사삭이 싫어요’ 라고 외치다가 쑤셔넣는 삽숟가락에 입 찢어졌다는 얘기를 하려니 어째 옛날에 들은 반공우화가 막 생각나네, 이름이 뭐였더라?
# by bluexmas | 2009/07/28 01:45 | — | 트랙백 | 덧글(14)
비공개 덧글입니다.
나머지 두 양반은, 글 써서 돈 벌게 되는 날 밝혀볼게요^^
“캡틴 크런치라고 해봤자 국내 독자들 아무도 이게 시리얼인지 모르겠지. 차라리 콘푸레이크로 바꿀까, 아니면 우리말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바꿀 방법이 없을…아사삭 대장!!!”
근데 제법 중독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