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날에도 병든 닭처럼
가을이라고 해도 누구나 믿을 그런 서늘하고 좋은 토요일에도 나는 인터넷 야구 중계를 틀어 놓은 채 소파에 누워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무척 더울 아틀란타의 여름 날, 꾸역꾸역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대강 저녁을 쑤셔 넣고 소파에 누워 졸면서 야구를 보던 뭐 그런 순간을 몸이 그리워 하고 있는 모양… 그러나 벌건 대낮에 이러고 있으려니 나는 뭐하는 인간인가, 하는 자괴감이 먹구름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자다가 깨서 대강 먹고 또 자고 깨다를 반복하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일어나 잠깐 밖에 나가 이마트에 들렀다.
토요일 저녁의 이마트는 지옥에 무한수렴하는 아수라장이다. 언젠가 그런 말을 했던가? 돌아온 이후, 나는 언제나 오감의 포화상태로 고통받고 있다고. 어느 감각 하나에도 남아 있는 여유 공간이 없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많고, 어디를 가나 시끄럽고, 또 어디를 가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온다. 소리를 끄면 좀 나아지지만 아이팟을 안 가지고 나가면 속수무책… 3층부터 올라가 복사용지를 한 묶음 사고 2층을 거쳐 1층으로 내려 오는데 경사진 자동보도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트의 모든 물건들이 나에게 덤벼드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 특히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건 우유칸에 있는 이마트 우유였다. 대체 왜 그런 것인지 하얀 팩의 가운데에 연한 파란 색으로 커다랗게 써 있는 ‘우유’ 두 글자가 백 만 개쯤 냉장고에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난간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균형을 잃고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1층으로 마저 내려가는 그 잠깐 동안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 밤에는 우유 팩도 아닌 그 팩의 ‘우유’ 글자가 팩에서 빠져나와서 나를 돌림빵하는 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우’자와 ‘유’ 자가 팩에서 뛰쳐나와 그 ‘ㅇ’의 사이에 내 몸을 끼워 넣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를 당겨 뼈마디를 분질러 놓는… 백만마리의 ‘우’자와 ‘유’자라면 내가 아주 잘근잘근, 흐느흐늘한 연체동물이 되겠구나, 해삼처럼… 물론 나는 덴마크나 파스퇴르 우유를 마신다. 그래서 이마트 우유가 더 무서운 것일지도… 사실 요즘은 파스퇴르 우유도 잘 사다 마시지 않는 게, 나는 절대 먹지 않는 액상과당이 든 사과 요구르트를 네 개씩 끼워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백 밀리리터 짜리 우유 두 팩을 끼워서 파는 덴마크를 사오곤 한다. 그러나 덴마크 우유의 나쁜 점은, 일단 정사각형이 단면인 플라스틱 병이 냉장고 문에 딸린 음료수칸에 잘 안 들어간다는 점…물론 아직도 왜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도 아닌 덴마크 우유가 특정 상표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있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덴마크가 더 나은 낙농선진국이었던가? 잠깐이지만 가 보았던 사람으로써는 도무지 이해가 잘… 하다 못해 핀란드 우유면 안 되는 걸까?
…라고 생각을 해 보니 왠지 핀란드라면 사람들이 소젖보다 순록젖에 더 믿음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오니기리? 핀란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 주엔가 카모메 식당을 봤다가 아무런 갈등도 고민도 없는 얘기에 보고 나서 짜증을 버럭 내었더니, 원래 그런 얘기인데 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냐는 얘기를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다. 그런 영화는 무슨 전인류의 의식을 관통하는 철학이나 우주를 떠다니는 진리의 입자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냥 보고 ‘아 저런 얘기’ 하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 되는 건데,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그걸 알고 나니 죄책감을 느꼈다.내가 그렇게 순수한 인간이 못 되는 것 같아서.
어쨌든 모든 끼워팔기의 나쁜 점이라면,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원하지 않는 물건을 데려다가 처치곤란에 전전긍긍해야만 한다는 것. 맥스 맥주 피처 두 개를 팔면서 무슨 팝콘 따위를 끼워 팔던데, 팝콘을 먹고 싶었다면 아마 직접 튀겨서 먹었겠지.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먹히는 홍보전략이 나에게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쁜 점이라면, 집에 와서 그 물건들을 서로 붙여 놓느라 미친 듯이 칭칭 감아 놓은 테이프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 한 보따리 사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자리를 만들어 가면서 물건들을 쑤셔 넣는 과정은 참으로 피곤하다. 그런 가운데 떼기 어려운 테이프를 떼어서, 손에 붙어 버리는 걸 다시 또 떼어서 쓰레기통에 넣는 건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게다가 그러게 끼워파는 물건의 값이 내가 원래 사는 물건의 값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위에서 말한 파스퇴르 우유의 경우, 무려 네 개나 되는 요구르트를 끼워서 파는데 정말 그만큼을 공짜로 줄 수 있으면 왜 돈을 받고 요구르트를 따로 파는 걸까?
끼워파는 얘기를 하다 보니, 복음자리에서 나온 무려 유기농 케찹을 사왔는데 정작 필요했던 건 케찹이 아니라 끼워 파는 딸기쨈이었다. 오천 팔 백원에 파는데 딸기쨈은 삼천 삼 백원. 딸기쨈이 떨어져서 겸사겸사 사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속는 기분이 드는 건 대체 왜 일까? 그래도 ‘복음’ 이 들어간 상표라면 믿어야 하는 건가, 주님의 말씀처러엄? 집에 오는 내내 속는 기분을 지울 수 없어, 집 앞 사거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무단 횡단을 해 버렸다. 이렇게 무단 횡단죄를 많이 저지르면 천국 가기는 틀려먹은 것이겠지. 그러나 뭐, 예전에 떡허니 썼던 것처럼 거기는 나의 천국이 아닐테니 못 가도 아쉬울 것 같지는 않다. 걸어서 무단 횡단을 하면 왠지 죄가 배가되는 것 같은 데다가 오는 차들의 운전수들이 차도 없이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거리다가 무단횡단까지 하는 나를 너무 무시할까봐 뛰어서 길을 건너는데, 바람이 참 시원하데… 그러나 나는 이렇게 서늘한 날에도 병든 닭처럼 하루 종일 졸기만 했다. 내 집의 공기에는 산소와 이산화 탄소와 더불어 피곤함이 섞여 있는 듯. 비실거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설겆이를 한 뒤, 어머니가 주셨으나 언제나처럼 너무 많이 주셔서 먹을 수 없었던 오이김치를 내다 버렸다. 음식을 버리는 건 참으로 못해먹을 일이지만 때로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미미한 설겆이라도 열심히 하고 나니 다시 나의 존재에 서려 있는 부담감을 조금 덜어낸 듯한 기분이었다. 최근 15년 동안 오이는, 그 옛날 간직했던 단단함과 아삭함을 포기했고, 그 이후 김치거리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했다. 그리하여 오이로 만든 모든 김치는 담근지 3일 이내에 물크러져 먹을 수 없게 됨으로써 만든 사람의 손맛에 상관없이 실패작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오이지는 멀쩡하게 담궈 먹을 수 있으니, 이렇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포기한 오이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마저 약화되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이지를 담그면 된다고 추천하고 싶다.
# by bluexmas | 2009/07/26 00:19 | Life | 트랙백 | 덧글(10)
제 혀엔 저온살균우유가 커피,홍차에 넣기에 더 나은 것 같더군요. 그 서울우유란 건 고소함이 좀 심해서 별로고, 파스퇴르는 우유 자체보단 포장용기 냄새가 우유에 밴 것 같아 별로고, 덴마크는 괜찮으면서도 나온 상품이 거의 다 저지방이라 그게 곤란하고-밋밋해요-, 결국 남양 아인슈타인을 종종 고르게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지 먹어봐야 되겠네요. 펠로우님께서 즐겨 드신다니-
비공개 덧글입니다.
복음자리는 ‘신앙촌’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지긴 하지만ㅋ 종교단체라기보다는 풀무원같은 빈민공동체 태생의 기업에 가까워. 만든이가 신부님과 종교인이다보니 보금자리->복음자리가 되어버린게 비극이라면 비극^^ 내가 다니는 회사랑 교류가 깊은 곳이라 좀 안다는.. 잼 선물을 받아도 내가 안먹다보니 늘 다른이 줬는데 들어오면 토스하겠음.. 우리나라 식약청이라는데가 워낙 섞는거에 너그럽게 해놔서 완벽하다고는 못하겠으나 #뚜기나 미원 같은데 보다는 훨 나을듯..
물론 %뚜기나 미원 같은데 보다는 훨 낫겠죠. 식품 회사의 마케팅에 신물난지 오래에요. ‘아 우리 새끼 한달에 삼센치 크게 하는 유기농 쑥쑥이 과자’ 뭐 이 따위의삼천갑자 동방석이 풍의 기나긴 이름도 정말 지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