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 더러운 꿈

 잠을 자며 더러운 꿈을 꾸었다. 사실 그 긴 잠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었다. 몇 시간 자다 말고 일어나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는데, 어이없는 이메일이 와 있었다. 당장 답장을 쓸까 하다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써서 질근질근 밟아주기로 마음 먹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꿈에서 정말 누군가를 질근질근 밟는 꿈을 꾸었다.

그 누군가는, 꿈에서 거짓말쟁이였다. 그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런 거짓말을, 또 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들이 빚어내는 모순의 거품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기다랗고 뾰족한 쇠바늘로 그 거품을 하나하나 터뜨려 가며 그가 지독한 거짓말쟁이임을 폭로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보니 오후 두 시였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뭐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 사람이 나고, 나는 단지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꿈을 꾼 것일 수도 있다(뭐 그럼 이 꿈이 변태적인 호접지몽의 인간관계 판이라고 되는거냐). 어쨌거나 남을 질근질근 밟는 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니 기분이 더러웠다. 비가 내려서 그렇게 더운 날씨도 아닌데 몸도 누구에겐가 얻어 맞은 듯 안 쑤신 곳이 없었다. 행복해지려면 남을 밟아야 되는게 아니라, 그런 일을 아예 만들지 않도록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만들지 말아야만 한다. 사실 그건 인지상정 따위를 생각해 보았을 때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지만, 이제 세상은 인지상정 따위를 생각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살기 버거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행착오의 책은 어떠한 결론도 없이 조용히 예제만을 제시함으로써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내 시행착오의 책은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두 배는 더 두껍다.

그래도 난, 그 쇠바늘로 그의 눈을 찌르지는 않았다. 단지 거품만. 이왕 바늘을 든 김에- 하는 유혹이 있었으나 참았다. 주변의 사람들은 ‘눈찔러-! 눈찔러-!’ 소리를 질러가며 나를 부추겼지만, 나는 그래도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품위는 지키고 싶었다. 앞으로 장님으로 살아갈 그를 긍휼히 여겨서가 아니라.

 by bluexmas | 2009/07/17 14:54 |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