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탄수화물: 과일 양념 비빔국수와 감자 메밀 부침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비오는 날에는 탄수화물이다. 배가 터지도록 탄수화물을 먹은 뒤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 졸고 있으면 감히 백수라서 행복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온 나머지 무서워서 잠이 잘 안 왔지만…
사람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식당에서는 과일과 야채 따위를 갈아 만든 양념으로 비빔국수를 만든다고 해서, 나도 한 번 시도를 해 보았다. 사실 밖에 나가서는 냉면이든 그냥 국수든 간에 ‘비빔’ 이라는 단어가 붙은 건 거의 안 사먹게 되는데, 내 입맛에 그런 음식들이 터무니 없이 맵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운 음식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맛있게 매운게 아니라, 그냥 맵기 위해 매운 음식이 싫다. 서로 원조라는 무#동의 낙지볶음, 한때 시대의 유행음식이었던 찜닭… 음식 한 입 먹고 매워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지금 음식을 먹는 것인지 고행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게다가 중국음식을 먹고 올린 글들에서 습관적으로 했던 얘긴데, 매운 음식에는 소금 간이 안 맞을 확률이 진짜 높다.
어쨌든 입 닥치고, 기본 바탕을 사과로 해서, 파인애플과 양파, 마늘, 그리고 생강을 조금씩 갈아 섞은 뒤, 고추장을 한 숟갈 넣고 다시 손 믹서기로 잘 섞어 주었다. 거기에 우리밀 국수를 삶아 깔고, 양념을 얹고, 오이채 듬뿍, 그리고 계란을 얹어 주었다. 내 입맛에는 약간 매웠지만 과일이 가지고 있는 은은한 단맛이 그래도 고추장과 잘 어울렸다. 문제라면 싸구려 고추장 역시 단맛을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어 과일의 단맛을 위협한다는 것..그리고 양념이 아주 약간 뻑뻑했는데, 이건 물을 섞기 보다 양념에 얼음을 섞어 시원하게 만들면 먹으면서 얼음이 녹으니까 어느 정도 해결이 될 듯.
그리고 감자 메밀 부침. 사실 언제나 탄수화물을 두려워해서 구황작물 종류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데, 햇감자를 상자로 사셨다고, 혼자 먹으면 일 년치를 부모님이 덜컥 안겨주셨다. 별 수 있나, 주신 건데 어떻게든 먹어야지… 여름이면 강판에 손으로 갈아서 감자전을 해 먹던 생각이 나서 이번엔 내가 직접 만들어 봤는데, 약간의 다르게 시도해봤다. 일단 감자는 손 믹서로 갈 수 있으니 훨씬 손 쉬우니까, 두 개를 하나는 완전히 물처럼 갈고, 다른 하나는 아주 작은 조각으로 갈아서 그 둘을 섞고, 거기에서 생긴 물을 흡수하라고 메밀 80%에 밀가루 20%로 된 메밀부침가루를 섞어 되직한 반죽을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부침가루라는게 보통 밀가루에 마늘과 양파 가루, 후추와 소금, 그리고 잔탄 검 Xanthan Gum과 같은, 식감을 위한 화학 첨가물을 넣어서 만든 것이니까 나도 흉내를 내 볼겸 잔탄 검을 뺀 나머지 양념들을 섞었다. 그리고 혹시 아삭아삭한 식감을 더할까 해서 양파를 잘게 다져서 넣었다. 이런 전 부치는 거야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고…
감자를 전부 물처럼 갈지 않았던 이유는, 아주 살짝 덜 익히면 잘게 갈은 감자에서 살짝 아삭아삭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는데, 어떤 건 너무 부쳐서 그런 아삭아삭함을 느낄 수 없었다. 메밀가루를 부치면 이런 식감이 느껴지는지 몰랐는데, 쫄깃쫄깃하기가 마치 찹쌀반죽으로 부친 떡 같았다. 어쨌든 먹을만 했다. 시골의 정취랄까…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는데, 꾹 참고 그냥 잠을 청했다.
# by bluexmas | 2009/07/11 09:57 | Taste | 트랙백 | 덧글(12)
과일을 갈아서 비빔자을 만드는건 정말 상큼하니 맛날것 같아욧!!!!
음… 퍽퍽해지는건 설탕대신 물엿을 쓰거나, 고추장을 조금 덜 넣고 대신 고춧가루랑 츠유를 넣어주면 어떨까 싶어요. 으흐흐… 조만간 함 해먹어봐야 겠네요, ^^
전 감자 가는 게 미숙해서 항상 손을 다쳐요ㅜㅜ
번거롭지만 감자전은 역시 강판에 갈아야 쫀득하고 맛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