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 했구나, 그 때 나는.

무엇인가 쓰려고 워드 파일들을 뒤지다가 작년 말 언젠가 누구에겐가 썼던 글의 파일을 발견했다. 내가 그걸 파일로 만들어 남겨 놓았을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들여다 보는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더 웃긴 건,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안 나지만 불과 반 년 조금 더 된 그 때 정말 엄청나게 절절했다는 사실… 정말 지금의 생각이랑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짧지도 않은 글을 읽으면서 ‘아니, 내가 정말 이렇게 절절해야 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어째 절절함이 상대를 잘못 찾아가서 바보짓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로 부터 ‘쓸데없이 심각한 병신’ 이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던 터라, 때로 절절해지는 것이 감정의 삽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가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떤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보여준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안 받아 줄 것 같은데 보여줘서 후회하기도 하고, 분명히 받아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 받아줘서 후회하기도 하고… 그 후회는 곧 민망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반 년 전의 글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차마 민망함을 느낄 수 없었는데, 그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절절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엔, 후회는 해도 민망함은 못 느낀다. 적어도 보여준 게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정말 진심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막말로 쪽팔리지는 않다는 얘기. 진심을 보여줬는데 거절당하는 거라면, 거절 당한다는 사실에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더라. 그럼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거절은 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양방향으로 버거운 일이다 보니 어쩔 때에는 그냥 자폭하는 기분으로 거절 당하는게 낫다고 생각도 하게 된다. 그냥, 아 #발 최선을 다해서 진심을 보여줬으니 거절해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이런 식이랄까? 응, 이게 마지막 승부수야, 내 진심이라는 거지, 어떻게 생각하시나? 따위의 유치한 생각과 행동 후에, 남녀상열지사는 대개 이 길, 아니면 저 길로 통하게 마련이다. 그런 일에 회색이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까만 것이거나 하얀 것이거나,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둘 가운데 어떤 색깔이 예, 를 의미할 것인지는 상열지사를 꾸려 나갈 두 사람의 합의만 있으면 된다. 대부분 하얀 색을 긍정으로 택하는 가운데, 때로 누군가는 까만 색을 긍정으로 택하기도 한다. 어떤 색을 긍정이며 행복의 색으로 택하거나 말거나, 둘만 상열지사 행복하게 꾸려나가면 그만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옆에 사람을 두고도 행복함을 못 느낀다고 알고 있다. 그러면 슬프다. 우리는 다 이 껍데기를 쓰고 딱 한 번 산다, 바로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좀 살자.

그럼,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때는 진심이었지, 그러니까 그때는. 물어 볼 가치도 없는 질문. 그때 물어보나 지금 물어보나, 한 40년 쯤 지나서 죽기 직전에 물어보나 대답은 같다. 아마 죽어서도 같은 대답을 할거다.

 by bluexmas | 2009/07/10 02:36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at 2009/07/10 04: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10 10:05

네,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경우도 많이 있죠. 어쩌면 의미가 없는 건데 왜 그랬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겠죠.

 Commented at 2009/07/10 10: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11 23:20

그러셨다면 제 마음이 기쁘죠…

 Commented by midaripark at 2009/07/10 10:29 

바로 다음날, 그간의 침묵에 관한 것들, 나의 절절한 심정, 담아 보내버렸당.

매만지는데는 하루 걸림, 세번의 리액션엔 무응답… 매일밤 조증 환자 행세를 하며 이사람 저사람 불러 술먹고 노는 기간… 생각보다 힘들지만, 나 지금 다시보아도, 잘했어 잘했어 백번잘했어라고ㅠ

이제 좀 행복하게 좀 살자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11 23:22

잘 하셨어요. 행복해지려고 관계를 맺는데, 그 반대로 관계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면너무 슬퍼지죠. 정말 관계의 정리만큼 힘든일이 있을까 싶어요.

당분간 마음 내키는대로 하시면서 즐겁게 지내세요. 기회 되면 또 만나서 식도락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