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바빴던 하루

아주 간신히 운동을 마치고 들어왔다. 오늘은 정말 아령 들기 힘들더라. 기본이 8킬로그램, 회를 거듭하면서 10킬로그램 까지 가는데 9킬로그램도 아주 간신히… 최근에 5회 반복, 이렇게 했는데 3회도 아주 간신히…

새벽 한 시에 일어나서 카스테라를 굽고 오븐을 틀어놓은 김에 다른 것도 구워야 되겠다 싶어서 머랭 과자도 굽고, 온갖 쓸데없는 걸 하고 나니 아침 일곱시였나? 아예 그 김에 집 앞 아파트 주말 농장 밭에 나가 작은 컵 화분에 다닥다닥 붙어 자라는 바질 분갈이마저 해 주고 잠든 시간이 일곱시 조금 넘어서였는데, 아홉시에 예정대로라면 다음 주 화요일에 오기로 했던 에어콘 설치 기사가 전화를 해서 잠에서 깼다. 설치 관련해서 온갖 정보를 보내줬는데 그걸 거의 무시하는 듯한 말투… 나중에 쓸 생각이어서 자세한 얘기는 안 하겠지만, 시골에 가기 전에 동네 대리점에서 주말까지 배달해달라고 주문하고, 그 집 컴퓨터를 빌려서 지마켓을 통해 한 주문도 취소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엿 먹어봐라 라고 생각했다. 싸게 파는 척 하면서 다른 부대 비용으로 더 남겨 먹으려 들다니, 그리고 내가 속을거라고 생각했다니, 괘씸하니까 엿 먹어라.

하여간, 그래서 잠 몇 시간 못 자고 할머니를 뵈러 시골에 갔다 왔다. 무척 더운 하루였다. 차의 온도계는 바깥 온도가 32도라고 말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피곤해 보이셔서 결국 운전대를 내가 잡았다. 이 양반들은 내가 길을 모른다는 핑게로 열쇠를 잘 안 내주신다. 길은, 운전해서 가 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그걸 가끔은 아직도 나를 못 믿으시나? 라고 받아들일 때도 있다. 뭐 하려는 얘기와 전혀 상관 없는 얘기… 어쨌든 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상태셨지만 그래도 정말 구십세를 넘은, 꺼져가는 노인네의 모습을 하고 앉아계셨다. 지난 7년, 세월의 흔적이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저렇게 묻어나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좀 그랬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구워간 카스테라를 맛있다고 많이 드시더라. 다른 것도 해드릴 수 있게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우리 모두, 할머니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슬픈 것이지만… 밤에 몇 시간 동안 부엌에 쳐박혀 있는게 아주 즐겁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맛있게 드셔서 그걸로 됐다 싶었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아버지는 돌아 오는 길에 선산에도 들르자도 하셨다. 내가 가장 가기 싫어하는 선산. 13년이나 지났는데 할아버지 산소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땡볕에 10분 동안 풀도 뽑았다.  날은 덥고 여러모로 피곤했던 하루였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이라도 부모님과 죽음에 관련된 얘기를 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날이 싫다. 안 그럴 수가 없으니까.

 by bluexmas | 2009/07/09 00:08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7/09 13:44 

선산, 시골, 할머니… 친할머니는 곡절 끝에 한국 땅이 아닌 곳에서 눈을 감으시고 묻히셨지요. 형제들 중 저만 아직 못 가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잡았던 외할머니의 손 감촉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임종도 못했지요.

시골은 북한에 있고, 당연히 선산(있다면)도 거기 있습니다. 영화나 소설 등으로 느낌을 짐작은 합니다만, 시골, 선산… 정말 어떤 마음일지 괜스레 아득한 기분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10 10:12

아, 저희 회가도 원래는 북한쪽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이산가족이기도 하구요. 워낙 상상도 안 되는 동네라서 어떤지도 모르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