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난 지옥 갈건데?
명동 교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명동 거리를 잠시 쏘다니고 있었다. 옛날에도 무슨 옷가게가 가득찬 상가였던 건물이 개보수를 했는지, 스타벅스를 들였다고 작은 잔에 카페 모카 따위를 나눠주고 있었고, 생마늘이 듬뿍 들어간 명동 교자의 김치를 열심히 먹고 나니 어째 나 자신이 마늘이 된 것 같아서 여느 때와 다르게 나눠주는 걸 마셔볼까 줄을 섰다. 바로 옆에서는 어떤 여자가 무슨 교회에서 나왔는지 전도를 하는데, 이 여자가 초등학교 저학년인 듯한 아이를 데리고 나왔더라.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커피 따위라도 얻어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이 말 걸기 쉬우니까, 아이가 줄을 서 있는 나에게로 다가와서는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말하더라.
난 “응, 난 지옥갈라구” 라고 대답했다. 물론 아이 얼굴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뭐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자기가 뭐 하는지도 모를텐데.
정치, 혹은 종교적인 견해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이 블로그에 굳이 쓰지 않는 이유는, 일단 그런 얘기를 쓸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그런 종류의 것들에 가지고 있는 믿음은 이성적이나 논리로 인해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이 나지 않는 입씨름의 여지가 너무 많고, 또한 그런 소모적인 입씨름을 이 블로그에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자면, 일단 죽는 것 자체를 생각하고 싶지 않고, 또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천국이며 지옥 따위를 입에 담거나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설사 뭐 사람은 못되어도 괴물은 안되려고 쥐똥만큼 노력한 결과를 창조주가 알아주셔서 ‘그래, 많이 못마땅하지만 넌 천국 가’ 라고 할지라도 그 천국이라는데가 오늘 맞닥뜨린 것처럼 이 땡볕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까지 데리고 나와서 전도하는 아줌마나, 입에서 굴리면 굴릴수록 그 네 음절 두 마디의 말이 랩처럼 착착 혀에 감기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을 염불처럼 외는 악마의 얼굴을 한 할머니나, 또 하나 둘도 모자라서 한 눈에 세기 귀찮은 떼로 사람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 늘어서서 복음 성가 따위를 부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면 ‘죄송한데 저는 여기 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고 천국 가기를 거절하게 될 것 같다. 가봐야 별로 조용할 것 같지 않으니까.
그래 뭐,’맹목적인 믿음 blind faith’ 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눈이 머는 걸 수반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믿음이라는 감정이나 믿음을 가지는 행위는 이성이나 논리의 과정을 통해 얻는게 아니니까. 그러한 믿음을 너무 많은 대상에 가지고 살면, 세상은 그런 믿음을 가진 나와, 그렇지 않은 타인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게 되고, 거기에다가 자신이 가진 믿음의 원천에 티끌만한 결함도 없다고 생각하면 그 믿음을 가지지 않은 타인을 보는 눈에는 측은지심의 콩깍지 또는 필터가 덜컥 씌워지게 마련이라, 모두가 가련해 보이니 그들을 내 믿음의 원천인 세계로 일분 일초라도 빨리 불러들이기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은 결국 전도라는 이름의 일방적인, 그리고 오감으로 향하는 폭력으로 화하여 오늘같이 70%의 불지옥을 닮은 날 명동거리에서 복음의 빵껍데기를 쓴 싸구려 소세지가 되어 기름에 튀긴 핫도그로 화하게 되는 것이다. 참, 그 명동에 말도 안되는 핫도그며 소세지, 떡볶이 따위 파는 노점들에서 미친 듯이 솥 걸어놓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 걸 그 폭력전도와 함께 보고 듣고 있노라니, 그게 지옥도 아닌가 싶더라. 누군가는 ‘Heaven is a place on earth’ 라고 노래고 했다지만 그건 아니라고 쳐도 이 세상이 딱히 지옥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여기를 앞다투어 지옥으로 만들고 때가 되어야만 찾아오는 불확실한 내세의 개인적인 획득만을 앞다투어 찬양하며 기다리는걸까? 우리, 아직 갈 길 멀다. 그리고 여기는 현세니까 천국이며 지옥가는 걱정은 좀 아껴가면서 하자, 덥다. 그리고 삶에 걱정할 건덕지 엄청 많으니까 이런 글 썼다고 내 걱정 안 해줘도 된다. 말하고 있는거잖아, 여건이 그러하다면 설사 천국갈만하게 살았다고 해도 지옥가는 거 굳이 마다하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종교 비판할 생각으로 쓴 것 아니니까, 지레 눈에 쌍심지부터 돋우지 마셔. 말 했잖아, 덥다니까.
집에 오는 길에는 역 앞에서 또 그 예의 ‘학생이에요? 얘기 좀 해, 말 좀 들어.’ 여성동지들과 맞닥뜨렸다. 난 학생? 만 나와도 입닥치고 꺼지라는 의미로 손을 번쩍 들어주는데, 그래도 자꾸 대들더라. 맨날 반바지에 티셔츠 입고 배낭이나 메고 쭐레쭐레 다녔다니, 내가 지들 나이 또랜줄 아나봐. 다들 내 조카뻘같던데.
# by bluexmas | 2009/07/06 00:22 | Life | 트랙백 | 덧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