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이하: 소공동의 오향족발 전문점, 향원
대체 어떻게 술을 마시는지,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분위기의 큰 술집들이 자리잡고 있는 소공동 골목을 지나다가 오향장육과 족발 전문점, 그리고 물만주 전문이라는 향원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렇지 않아도 꽤 오랫동안 족발이 먹고 싶었던 터라, 며칠 후 금주 기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들렀다. 족발에 거슬리는 냄새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때로 우리나라 식으로 만든 족발보다 오향, 특히 이 섞인 중국식 족발이 더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집에서 오향 장육을 흉내내서 몇 번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팔각은 정말 향이 강한 향신료이다. 두어개를 다른 향신료를 넣어 놓는 찬장에 넣어 두면 곧 팔각 냄새가 다른 모든 향신료의 냄새를 덮어버리니까.
잠깐 여담이지만, 마장동에 살 때 족발을 가공하는 것도 정말 지겹도록 많이 보았다. 족발에 그렇게 털이 많나? 기억나는 건 일회용 면도기로 밀거나 토치로 털을 그슬려서 없애는 것 뿐이다. 돼지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야 많지만(새끼 돼지는 엄청나게 좋아한다. 조그맣게 나오는 애완돼지가 있다면 한 마리쯤 키워보고 싶을 정도로), 족발의 털을 자세히 관찰한 적은 없어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돼지 다리에 그렇게 털이 많아서 면도까지 해 줘야만 하는지.
다시 음식 얘기로 돌아와서, 가게는 그 골목에 다닥다닥 늘어선 가게가 다 그렇듯 굉장히 작아서, 2층까지 합쳐봐야 탁자가 채 스무 개도 안 될 정도였다. 족발을 먹으러 왔으므로 2만 5천원 짜리 오향족발과 또한 전문이라는 물만두를 시켰다가, 옆 탁자에서 군만두를 주문하길래 충동적으로 군만두로 바꿨다. 그리고 그건 그날의 패착.
음식을 시키면 기본으로 나오는지, 만두를 두 개(사람 수대로 주는 걸까?) 넣은, 맑은 국물의 탕이 나왔다. 기스면 국물에 만두를 넣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국물도 괜찮았지만, 만두가 간이며 속, 피까지 괜찮아서 제대로 찾아 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국물에 담긴 만두를 먹게 되니까 군만두를 시키는게 이것저것 먹어보기에도 괜찮은 선택이었노라고까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곧 족발이 나왔다(아이폰으로 찍어서 오늘은 사진이 좀 흐리멍텅하다). 살이 하나도 붙지 않은 뼈는 왜 굳이 내오는지 모르겠지만, 그 뼈로 판단하건데, 다리 한 짝으로 만든 것 같았다. 보통 족발 가게에서 이만 오천 원에 한 대를 잘라 주던가?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 잠시 헛갈렸다. 어쨌든, 고기에 파와 생각보다 너무 두껍게 썬 마늘 몇 쪽, 그리고 바닥에 깔린 양배추, 그리고 ‘짠슬’ 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굳은 간장.
일단 고기는, 개인적으로는 따뜻해서 느끼함이 느껴지는 것보다는 적당히, 혹은 아주 약간 차다 싶게 식어서 쫀득거리는 족발을 좋아하는 편인데, 향원의 족발은 식었으나 그다지 쫀득거리지 않았다. 뭐 딸린 고기야 워낙 기름기가 없다 쳐도, 껍데기는 씹기에 조금 바쁜 편이었으나 되려 씹는 맛은 좀 부족했다. 질기지는 않지만 좀 씹어야 넘길 수 있는데 그 씹는 과정이 그렇게 즐길만한 것은 아니라고나 할까. 그리고 간은, 고기와 껍데기가 같이 붙어 있어도 껍데기는 짜고 고기는 싱거웠다. 전체적으로 족발 조각의 바깥 부분은 짜고 고기 부분은 싱거워서, 이걸 어떻게 조리하면 같은 조각이라도 겉은 짜고 속은 싱거울 수 있는지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군만두, 국에 들었든 물만두였든 맛을 봤으니 군만두를 시킨 게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군만두를 받아 한 입 먹자마자 바로 바뀌었다. 바닥이 노릇, 혹은 바삭하게 지져지고 나머지 면은 그래도 다소 부드러운, ‘목란’ 과 같은 곳의 군만두를 생각했는데, 이 집의 군만두는 거의 튀김만두였다. 전체를 기름에 넣어 튀긴 듯 바삭하다 못해 딱딱한 만두. 한 입을 베어 물자 만두 속의 뜨거운 기운이 확 올라오는데, 들여다 보니 튀기고 나서 만두 속에 큰 공간이 생겼지만, 그 반 정도 밖에 속이 들어있지 않았다. 물론 튀겨서 물기가 빠지고 속의 공간이 부풀어서 큰 공간이 생긴 것이겠지만, 그에 비해서도 속의 양은 좀 부족했다. 거기에 그렇게 촉촉하지 않아서 속은 좀 마른 편이었고,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아, 그냥 물만두를 시킬 걸, 하는 후회가 살짝 밀려왔다. 만두는 딱딱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만두 하나, 족발 하나를 먹고, 술 몇 병을 마셔 사만 얼마인가를 냈다. 나는 족발 전문이라 짜장면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는데 메뉴에 있어서 물어봤더니 짜장면도 맛있다고 하시더라(물론 맛있다고 하시겠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메뉴는 다른 중국집들에 비해 굉장히 간단한 느낌이었다. 요리가 한 열 가지 되나?
어쨌든, 전체적인 정리를 하자면 오향장육이 이 만원인데 분명히 원가가 더 쌀 족발이 이만 오천원인 건, 이 글을 쓰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조리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비쌀 것도 같지만 조금 비싼 편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오향육 전문점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는데, 먹어본 사람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까지의 특별함은 느끼지 못했다. 전문점이라면 전문점이 아닌 것보다는 무난함 이상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의 느낌은 없었다. 특히 족발의 껍데기 부분은 보통보다 훨씬 짜다고 느낄 정도로 짠맛이 강해서 간을 위해 짠슬을 곁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원가가 그렇게 비싸지 않을텐데 파채나 양배추 같은 재료는 조금 더 푸짐하게 내주셨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위치는 소공동 술집 골목, 신한은행 거의 다 가서. 송옥의 옆옆옆옆옆 집 정도 된다. 가격은 혹시나 해서 찍어온 메뉴 사진을 참고 하면 된다. 좁은 집에 금연이 아니므로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생각해봐야 된다. 좁아서 화장실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물어보거나 가지도 않았다. 없지는 않겠지. 개인적으로는 ‘족발 먹어보려면 거기 가봐’ 라고 낼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와 화곡동 시장에서 족발을 사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집 족발이 양이나 맛 면에서 사실 더 나았다. 물론 두 족발은 서로 비교할 종류는 아니지만.
# by bluexmas | 2009/07/03 09:45 | Taste | 트랙백 | 덧글(14)
북창동/소공동 그 골목에선 중국집 [자금성]이 두루두루 무난합니다. 70년대 명동에서 활약했던 유명 화상조리사 아저씨가 중국으로 갔다가, 2008년에 제자들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오픈했다더군요~
그런데, 혹시 홀리 차우는 어떠시던가요. 뭔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온 것 같았지만 그 나름대로는 괜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