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가 덜 된 인간

서울에 갈 일이 생겨서 운동을 하고 미친 듯이 서둘러 두 시 버스를 일 분 전에 탔다. 눈에 보이는 버스에 올라타고 돈을 내면서, 강남역 가죠? 라고 물었는데, 이 아저씨가 대답을 안 했다. 씹나? 기분이 나빴지만 일단 넘어간다. 못 들었나보지. 뭐 그런 일로 사사건건 사람들하고 실갱이 할 필요 없으니까. 버스가 잘 굴러가서 강남대로에 들어섰는데, 길이 약간 막힌다. 전화요금을 내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연체되었다고 문자가 날아와서, 어딘가 들러서 해결을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창 밖으로 에스케이 대리점이 보인다.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혹시 여기에서 내려주실 수 있을까요? 역시 대답이 없다. 물론 이건 맞는 요구가 아니니 기사가 못한다고 말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짜지고 앉아 있다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그러나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탈때도 인사 주고 받고, 또 내릴때도 그러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 운전기사고 내가 손님이기 때문에 나에게 인사를 해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도 인사를 한다. 어쩔때는 그냥 나만 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이만하면 부족한 것 별로 없이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일을 하는 사람을 막 대한다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를테면 택시나 버스 운전하시는 분들, 아니면 청소하시는 분들 등등. 이건 대체 뭐냐,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아예 대답도 없고.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 정류장까지 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화가 났다. 그래서 내릴 때 입을 열었다. 못하면 못한다고 얘기를 하시면 될걸 아저씨는 왜 대답을 안 하시냐고, 그랬더니 이 기사는 다짜고짜 나에게 반말로 대답했는데 당신이 못들어놓고 뭐하는 거냐고 나에게 되려 화를 낸다. 나, 그렇게 화가 난 투로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예 이 개새끼야, 사람이 말을 하는데 씹냐? 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되려 나한테 화는 내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화라도 내고 싶었는지, 내가 한 마디 하니까 내리는 뒤통수에다가 대고 말을 멈추지 않는다. 당신 벙어리야? 라고 한마디 던지고 나는 내 길을 갔다. 저녁 시간에도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했는데, 기사들이 돌고 도니까 혹시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하면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막상 버스에는 인사를 가장 잘 하는 아저씨가 계셨다. 이 양반은, 정류장에서 버스가 설 때마다 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하신다. 나이 드신 분이 그렇게 인사를 하시는데 나는 더 공손하게 인사드려야 하지 않겠나? 나를 열받게 한 기사에게 삼천원 가까이 하는 돈 내고 네가 운전하는 버스 타서 월급 받는데 보태주니까 나를 주인처럼 굽신굽신 모셔달라는 기대 따위를 했다가 그게 충족이 안 되어서 열 받은게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먼저 공손했고,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써의 의사소통을 원했을 뿐이다. 물었으면 대답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대답했는데 당신이 못들어놓고 지랄이냐고 얘기할 때 처럼 크게 대답해줬으면 들어 쳐 먹었겠지. 이런 일 있었다고 내가 열 받아서 ‘역시 운전기사라는 인간들이 다 그 따위지 뭐!’ 라는 편견이나 가지고 살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런 취급 받아서 기분 좋나? 진화가 덜 된 인간들, 싫다. 그래놓고 또 일 끝나고 더러워서 이 짓 못해먹겠다고 어디에서 술 마실지도 모르겠지? 술도 아까워 술도. 사람답게 사는게 다 돈으로 이루어져서 나 돈 없으니 사람 답게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정말 사람답지 않은 생각이라니까.

 by bluexmas | 2009/06/09 22:03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06/10 00:22 

한국에선 은근 당연시되는 현상이긴 해요.. 일단 버스 옆/앞면에 강남역 표기가 있으니, 기사 입장에선 계속 물어보는 사람이 귀찮다는 생각은 할수 있어요. 실제로 출발해야하는데 ‘어디로 가요, 건너가요? 그럼 몇번 타야해요’ 까지 물어보는 사람도 종종 있거든요. 기사는 사실 그것까지 가르쳐줄 의무는 없으니 그런 상황이 되면 좋아할린 없습니다.

강남대로가 인도쪽이든 중앙정차대든 버스가 많으면 밀리는데.. 사실 본정류장까지 가서 문열어주는 게 원칙이긴 합니다. 정류장 아닌데서 문열어주다 사람이 다치면, 기사 책임이 되니 기사입장에선 정류장에서 세우려하죠.

bluexmas 님 짜증나는 상황이었겠는데, 개인적으론 기사들도 그냥 물어보고 억지요구를 하는 손님이 자주 있으니, 무뚝뚝 방어적 태도가 된다고 봐요. (실제 광역직행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려는데 손님이 ‘이거 강남에 가는거 아니에요?’ 당호아하면 별수 없이 진입 직전 적당한 곳에 세워주는 기사도 있습니다. 이럴땐 손님이 민폐인거죠) 너그러이 생각하시길^^;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06/10 00:28 

더 참고하자면..저도 외국에 잠깐 여행갔다 돌아왔을때,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말없이 무뚝뚝한걸 확실히 느껴요.

안타깝긴한데 사실 한국환경에서 그 사람들 입장도 이해가는게..원칙에 맞게 ,혹은 고객을 위해 융통성을 발휘하는 등 열심히 해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거대도시 서울/수도권에서 처리해야 할 고객은 많고..그러다보니 방어적,무뚝뚝, 자신이 손해봐야 하는 일을 하지않으려 해요,점점.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11 01:46

사실 저는 뭐랄까, 간도 쓸개도 빼놓은 듯한 친절함을 바라지는 않아요. 저런 일들도 워낙은 그런가보다 하는데,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던 것이었죠. 무뚝뚝하다기 보다 아예 무슨 일인가에 화가 난 것 같았거든요. 하루 정도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요.

요즘 경향이 보면 또 말도 안되는 데에서 친절한 척 하는 것도 있잖아요. ‘손님 이 옷은 스타일이 잘 나오셨어요’ 뭐 이런 근거도 없는 높임 따위랄까요? 그런게 오히려 더 싫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