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벗으면

자꾸 하루키 책에서의 머릿가죽 벗기는 얘기와 헛갈리는데, 아마 그건 창비아동문고의 전래동화에서 읽은 얘기일거다. 호랑이의 가죽을 벗기는 이야기였나? 자고 있었는지, 아니면 잠들게 만들었는지 어찌 되었든 호랑이가 가만히 있을 때 발을 묶었나? 그리고는 머리에 십자모양으로 칼집을 내서는, 엉덩이에 채찍질을 했는지 아니면 꼬리에 불을 붙였는지 어쨌거나 뒤에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주면 호랑이가 참다 못해 껍데기를 버린 채로 홀랑 뛰쳐 나온다고.

집에 오다가 좀 엉뚱한,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노래를 들었는데, 그런 구절이 나오더라. ‘As I shed my skin I leave you behind, as I shed my skin I go on to a better life(to THE better life 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잠시… 뭐 양놈들이 지들 말이니까 알아서 옳아주시겠지만서도-_-;;;)’ 만약 껍데기를 저 호랑이처럼 홀랑 벗고 뛰쳐나가서 버릴 수 있는 걸 버릴 수 있고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면 나도 머리에 십자로 칼집 한 번 넣어서 껍데기로 부터의 탈출을 시도해봐야 하는 걸까?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눈도 내리는 우리나라로 돌아 왔으니 이왕이면 눈 많이 오는 날 한 번 시도해봐야 겠다. 일기 예보에 눈이 온다는 날 밤을 새워서 기다리는거지, 이왕이면 눈이 많이 쌓인 날 새벽이나 아주 이른 아침에 밖에 나가면 아무도 눈을 밟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그 모든 준비를 한 다음에 엉덩이에 채찍질을 하던지 아니면 꼬리는 없으니까 대강 말단부인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불침을 놓듯 불을 붙이던지, 그러면 그 십자 칼집 사이로 내가 껍데기를 버린채 퐁, 하고 튀어 나와서는 껍데기가 벗겨진 고통에서든, 아니면 새 삶을 얻는 기쁨에서든 그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펄쩍펄쩍 뛰어다니게 되지 않을까, 피를 똑똑 흘리면서? 바로 그 똑똑 떨어진, 햐앟고 깨끗한 눈 위의 핏자국을 보고 싶어지네. 이왕 눈이 깨끗할 때니까 글씨라도 쓰면 좋지 않을까 몰라, 옛날 첫눈이 오면 운동장에 지가 좋아하던 여자애들 이름을 발자국으로 남겼던 것처럼(진짜 있었던 일! 물론 나는 소심해서 그런 짓 할 수 없었고…그리고 그는 벌써 그 때에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몇몇 말 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그러나 첫 번째 눈이 내릴 때 하면 첫 눈에 충동적으로 저질렀다고 할 사람이 많으니, 조금 참았다가 두 번째나 세 번째 눈이 내릴 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차피 첫 눈은 그렇게 많이 오지도 않으니까 알아서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도 역시 자제를, 종교랑 결부시키면 곤란하잖아. 그냥 새 삶을 찾아볼까 시도해본 것일 뿐인데. 어차피 나는 남들을 위해서 피 흘려볼 생각을 할 만큼 너그러운 사람도 아닌데 뭐.

 by bluexmas | 2009/06/08 01:03 |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09/06/08 01:04 

허풍선이 남작 이라는 이야기에서 읽은 내용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08 01:06

으하하 그런건가요? 너무 오래 전에 읽은 얘기라 출처가 기억도 나지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