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데에서 비롯된 분노
시가 넘어서야 이마트로 향했다. 장을 봐야지… 짐도 왔으니 젤라토를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두 번 다시 씨발 투게더 따위는 먹지 않기로 했으니까. 어쨌든, 두 손에 가득 들고 간신히 걸을 수 있는 만큼 장을 보고 걸어 오는데, 저만치 앞에서 젊은 부부가 다가왔다. 둘 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길 건너 편의점에서 산 모양이다. 남자는 벌써 자기 몫을 입에 넣고 씹고 있는데, 여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콘의 포장지를 벗겨서는 길에다가 그대로 버리고 입에 넣기 시작했다. 맛있는지, 둘다 실실 쪼개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부부와 내가 걷고 있던 길이 골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대로에 붙은 도로로 폭이 적어도 십 미터는 될 법한 인도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니 쓰레기가 많아서 그냥 내버려도 별 표가 나지 않을 정도의 길이였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길은 깨끗했다. 쓰레기통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깨끗해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 정말 여기에 이렇게 쓰레기를 막 버려도 될까, 라고 잠시 생각은 할 만한 정도로 깨끗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런 생각이나 거리낌 따위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게 나를 아주 잠깐 동안 미친 듯이 화나게 만들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거리낌이 없다. 나는 궁금하다. 대체 저래도 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주 짧은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쫓아가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나만 미친놈 되는게 현실이고 또 아주 정확하게 따져보자면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건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 그냥 삼키기로 했다. 남의 삶 따위에 영향 같은 것 미치고 싶지 않고, 누군가 가르치려 들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저런 종류의 인간들이 저 따위로 구는 게 나의 삶에 영향을 안 미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구는 둥글고 싫어도 사람들의 삶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단지 그래서 화가 났을 뿐이다. 언젠가는 저런 사람들의 저런 행위가 나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테니까. 지지난 주엔가는 역 앞 건널목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는데, 근처 어딘가 학교에 다닐법한 애들이 비타 어쩌구로 추정되는 병에 담긴 음료수를 마시고는 그 병을 바로 옆에 있는 화단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버리는 것을 보았다. 뭐 정치를 바로 잡겠다느니,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보겠다느니 하는 희망찬 구호 따위는 바로 저렇게 아무런 생각 없는 행위가 곳곳에서 이루어 질때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저 따위 기본을 지킬 생각도 아예 없어 보이는 인간들이 그것보다 몇 차원은 더 높을 법한 정치며 환경이며 온갖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있을리 만무하며, 또한 혹시나 어떤 개념을 세워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본도 안 되는데 그딴 것들을 신경 쓰겠다고 난리치는 꼴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구석구석을 잘 뒤져 보면 세상은, 그리고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조금 어둡다. 애초에 영어 조기 교육 따위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인간으로써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는 건 사실 조소를 사서 버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09/06/06 00:59 | Life | 트랙백 | 덧글(14)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면.. 후다닥 뛰어가서 제가 줍습니다 ㅎㅎ
저도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라 가방에 쓰레기가 언제나(?) 넘쳐나거든요. ㅎㅎ 쓰레기통이 좀 많아졌으면 하고 생각도 합니다. 버스가 멈추는 곳에는 하나씩 있을 법도 한데 가끔 없는 곳도 있더라구요.
이런 말 하는 마음도 그렇게 편하지는 않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