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로 만든 닭 칼국수

명절 때 시골에 내려가면 젖소 갈비찜이 밥상에 올라오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갈비를 먹고 남은 뼈로 국물을 내서 드신다고 깨끗하게 먹을 것을 가족들에게 강조하셨다. 사람들 입에 들어갔다 나온 뼈로 국물을 끓여 먹는게 맞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게다가 솥에서 고기가 무를 때까지 끓여져서 뼈에 뭔가 더 우려먹을 건덕지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러나 살을 발라내고 남은 닭뼈에서라면, 충분히 국물을 우려낼 수 있다. 지난 어버이 날에 깐풍기를 만들기 위해 살을 발라 쓰고 남은 닭의 잔해를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국물을 내서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국물을 내는 건, 아주 간단하다. 뼈를 쓰기 하루 정도 전날 냉장실로 옮겨 녹혔다가, 솥에 넣고 마늘과 파 정도와 함께 끓인다.

외국의 요리에서도 닭 육수가 많이 쓰이는데, 이 육수를 만드는 방식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요리의 기본에 대한 책들을 보면, 거의 공통적으로 절대 팔팔 끓어 넘치는 정도까지 온도를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니까 적당히 끓을 정도의 온도로만 온도를 올리고, 또 뚜껑을 열어 놓은 채 끓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국물을 내다 보면, 물의 온도가 끓은 점 정도에 도달하면 거무스름한 거품이 올라오는데, 이게 단백질이고 온도를 너무 올려 물 전체를 순환시키면 그 단백질이 너무 많이 나와 국물에 다 섞이므로 국물이 탁해진다고. 물론 맛도 떨어질 확률이 높고(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책을 찾아봐야 되는데, 아직도 짐이 오지 않았다… 거의 두달 다 되었는데 내 짐은 대체 어느 바다를 떠돌고 있는 거냐 T_T).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끓여 국물을 낸 다음에도, 얼음에 담궈 빠른 시간 안에 식혀야 천천히 상온에 식힐 때 생기는 박테리아를 예방할 수 있단다. 국물 하나 내는데 참 복잡하기도.

어쨌든,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가능한 살살 끓여서 낸 닭고기 국물에 칼국수 면을 삶아 말았다. 면은 샘표인가에서 수입한 호주산 유기농 면이라던데, 외국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소금 간이 조금 많이 되어 있어 짭짤한 편이었다. 살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지만, 발라내기도 귀찮아서 그냥 전부 쓸어 담고, 파와 고추를 섞어 만든 양념 간장을 적당히 뿌렸다. 별거 없는 살림에 오천원 짜리 닭 한 마리 사서 네 사람이 먹을 깐풍기를 만들고, 남는 뼈로 칼국수 두 끼를 해 먹을만큼의 국물을 냈다. 이렇게 먹고 살면 돈 아낄 수 있을까나.

참, 말하기를 육수를 칭하는 stock 과 broth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데, stock은 뼈를 넣고 broth는 뼈 없이 고기만으로 낸 국물이라고. 따라서 stock의 맛이 더 진하다나(생각해 보니 이 얘기는 예전 글에서 한 것도 같다).

 by bluexmas | 2009/05/31 13:21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5/31 21:15 

반갑네요. 저도 저녁에 닭볶음탕(도리탕이 아니라는군요)을 해먹었지요. 육수 내는 경지는 아직…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31 23:40

저는 아직 닭’볶음’ 탕을 한 번도 해 먹어 본 적이 없어요. 닭을 집에서 자주 안 해 먹는데 해 먹으면 늘 통구이나 백숙을 만들게 되더라구요.

저는 일본말을 모르는데, 누군가는 ‘도리’ 가 새라고 그러던데 맞나요? 왠지 닭볶음탕이라고 일컬으면 그 맛이 안 나는 것 같아요. 저희 집에서는 닭찜이라고 불렀거든요. 갈비찜처럼 만드니까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6/01 01:28

그러게 말입니다. 도리가 새인것은 맞는데, 수십년간 닭도리탕이었던 것이 난데없이 닭볶음탕이 되니 아무리 일본말이라서라지만, 좀 그렇더군요. 아무튼 고춧가루 없는 닭’볶음’탕도 괜찮더군요. 거기에 약간의 로즈마리와 세이지까지(의외로 파와 같이 넣어도 괜찮더라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01 09:38

그런 말을 바꾸는 것보다 습관적으로 쓰는 영어 표현이나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웰메이드 영화’ 뭐 이런…

사실 전 닭도리탕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안 해 먹는건데, 어머니도 보면 간장 양념으로 만드시더라구요. 로즈마리와 세이지는 모두 닭과 잘 어울리는 허브니까 닭 냄새가거슬리신다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이지는 제 체질이 아닌 것 같고 로즈마리는 생으로도 많이 썼는데, 어떤 경우엔 너무 많이 쓰면 좀 역겨워지더라구요, 특히 닭가슴살 로즈마리 구이 이런 건 가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06/01 16:23

진짜 선수 맞으시네요. 혹시 요리 유학을 다녀오셨는가요. 저는 여러 면에서 초보랍니다. 로즈마리나 세이지는 지난번에 화분을 사다 놓은 것에서 약간 훑어다가 써보았구요.

제 방법에서도 주요 양념은 결국 간장과 마늘 양파 고추입니다. 아주 조금 올리브 기름을 넣을 뿐, 나머지 마늘 양파는 물론 감자까지 거의 허물어지도록 천천히 끓이는 방법 밖에 모릅니다.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03 12:36

요리 유학이라뇨, 무슨 말씀을-_-;;;; 잘 하는 것도 없답니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 뿐이죠. 짐이 이제 오니까 열심히 해 먹고 또 올려야죠^^

 Commented by 점장님 at 2009/06/13 11:42 

저희집 식단이 저래요. 남은 뼈나 국물 절대 그냥 못 버리는.. ㅋㅋ

신지카토 카레접시도 이쁘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13 13:03

그렇죠, 사실 집에서 저렇게 해 먹으면 거의 돈 안드니까 버릴 수 없죠 ^^

접시는 선물받은 건데 예쁘더라구요. 받고 맨 처음에는 당연히 카레 해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