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명불허전’ 목란 방문기
다른 중국집들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했던 건, 지난 십 년 동안 단골이었던 종로의 모 단골집 음식 맛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느낀 다음 부터 였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음식 맛도 변한다. 때로 의도적이기도 하고, 또 만드는 사람은 정말 전혀 느끼지 못하는데 먹는 사람이 변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물론 정말 먹는 사람의 입맛이 변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단골이라도 음식 맛 변했다고 얘기하는 건 어째 그걸 만드는 사람에게 할 얘기가 아니라는 일종의 예의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그런 경우 시간이 좀 지나 한 번 정도 더 먹어본 뒤 정말 변했다고 느껴지면 다른 집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집을 다시 안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곳 역시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았던 곳이, 어떤 사람들은 명불허전-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그렇게 칭하는 것을 들었다-이라고 말하는 서대문의 목란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을 찾아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맛있다고 얘기들은 음식을 두서없이 먹어보았고, 다음에는 2만원 짜리 코스 요리를 먹어보았다. 처음 먹은 요리는 군만두, 탕수육, 동파육, 그리고 해물누룽지탕.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그 두 번에 걸쳐 먹었던 ‘요리’들 가운데 나는 군만두가 가장 맛있다고 느꼈다. 튀기지 않고 정말 구운 만두, 간이 잘 맞는 만두속(속의 간이 안 맞는 만두가 꽤 있다. 딱히 중식이 아니더라도)까지.
하루 전에 주문해야만 먹을 수 있다는 동파육, 그래서 예약도 할 겸 하루 전인가 전화를 했었는데 약간 껄끄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건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사실 동파육을 처음 먹어 보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은 없었으나 일단 이 삼겹살의 부드러움이 압력솥 조리로 부터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시간을 줄여 보겠다고 수육을 압력솥에 했다가 여러 번 거의 곤죽이 되어버린 삼겹살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고기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삼겹살의 지방 부분은 수육하듯 일반 솥에 담아 너무 오래 삶으면 맛이 다 빠져버린다. 그 반대로 수육으로 먹으려는 고기는 압력솥 보다 일반 솥에 삶는게 더 낫고…), 거기에 팔각의 향과 간장의 맛… 그 정도? 동파육을 먹은 소감치고는 너무 성의가 없나? 어쨌든 통과.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던 탕수육. 소스를 따로 달라고 말하지 않는 건 내 실수였다. 그러나 소스가 끼얹어져서 나왔는데도, 튀김이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삭바삭한게 아닌 딱딱함. 그리고 소스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소스를 따로 달라고 말하지 않은 실수를 더더욱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들만큼. 어째 소금간이 좀 약한 듯한 느낌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었던 해물 누룽지탕. 얻어 먹는 자리였는데 너무 내 마음대로 시킨 것 같아서 일행이 시키는 걸 먹었는데, 이걸 먹기 전에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렇게 맛의 균형이 잘 맞는다는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 위에 언급한 모처의 단골집이 사실 누룽지탕-복을 넣었다-을 잘 해서 한때 많이 먹었었는데, 이 날 먹은 누룽지탕은 거기에 비해서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었다. 해물들이 전체적으로 조리가 잘 되었으나, 간이 좀 싱거운 느낌이었다(나는 절대 짜게 먹는 사람이 아닌데…). 거기에 해산물들 사이에서도 어떤 건 짜고 어떤 건 싱거웠는데, 예를 들어 다른 해산물보다 꼴뚜기/주꾸미는 약간 더 짰다. 관자는 마른 것이었는지 냉동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냄새가 좀 났고, 오래 조리했는지 질겼다. 해삼이나 오징어를 비롯한 다른 해산물들이 정말 불에 살짝 닿아서 약간 덜 익은 것과 딱 먹기 좋은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 할 만큼 잘 조리되었다고 생각해서 왜 관자만 이런지 약간 궁금했다. 어쨌든 그렇게 이 날의 저녁은 끝. 군만두에 반했고, 동파육에 조금 감동했으나 나머지는 아주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 이것저것 먹어보고 바로 일주일 뒤에 저녁 약속이 있어서 겸사겸사 목란에서 2만원 짜리 코스 요리를 먹었다. 녹 아무개님이 블로그에서 소개하신 것처럼, 코스의 구성은 계살 유산슬, 팔보채, 깐풍기, 새우 칠리, 그리고 짜장과 짬뽕 둘 중 하나의 식사였다.
첫 타자 게살 유산슬. 왜 게살이어야 하는가? 흰자로 추정되는 재료는 왜 들어 있는가(정말 궁금해서 누군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게살이라는 재료가 얼마나 섬세한 맛을 가졌는가를 생각했을 때, 돼지고기와 걸쭉한 소스가 함께 나오는 음식에 섞은 게살의 맛이 얼마나 남아날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아마 그 궁금증은 중국요리의 영역 밖의 것일지도… 게살이 없더라도 유산슬 자체의 맛은 달랐을 것 같지는 않고, 게살을 넣어서 냄새는 달랐는데 그 냄새가 그렇게 반가운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통과.
다음 타자 팔보채. 역시나 관자가 그 전 주에 먹은 누룽지탕에서와 같은 느낌이었다. 질기고 냄새나는. 다른 해물들의 조리 상태는 훌륭했다. 역시나 약간 부족한 소금간.
깐풍기. 팔보채보다 더 매운 음식이지만 간은 더 잘 맞는 느낌. 그러나 튀김은 그 전주에 탕수육을 먹었을 때 보다 더 딱딱하다는 느낌이었다. 입에 넣고 씹을 때 입천장이 긁히는 듯한 느낌이 약간 있었으므로 이건 딱딱한 편. 전체적으로 튀김의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새우칠리. 식재료로써의 케찹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다지 강한 인상을 못 느꼈다. 새우가 얼마나 좋고 또 튀김이 얼마나 잘 되고를 떠나 케찹이 너무 시고 달면 그 모든 재료의 맛과 조리의 노력을 덮어버린다. 그건 전적으로 케찹의 잘못이다. 대부분의 케찹이 너무 시고 또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달다.
마지막으로 식사(이 날은 날씨가 더워서 냉방을 하느라 창문을 닫아서 자연광이 없었고 따라서 사진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빨간 짬뽕을 즐겨 먹는 사람이 아니어서 짜장을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짜장면보다 조금 더 질긴 느낌의 면(물어보지는 않았는데 그게 그 집의 면 삶기 선호도일지도)에 오징어를 썼는데 별로 신선-그러니까 이 느낌은 생물이든 냉동이든 그냥 일반적으로 집에서 사다가 오징어를 조리했을 때 느낌보다 조금 덜 신선하다는-하다는 느낌이 없었고, 춘장의 조미료 맛/단맛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한 느낌이어서 별로였다. 요즘 찾기 힘들지만 나는 쓴 춘장을 더 좋아하는데, 이 춘장은 다른 곳에서 먹는 춘장들보다 훨씬 더 조미료의 느낌이 많았다. 달다기 보다 들척지근한 맛 역시 별로.
그리고 후식이 있었으나, 언급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므로 통과. 내오는 음식들의 수준에 비해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코스에 대해 전체적인 인상을 간단히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가격대 성능비는 정말 훌륭하나 아주 뛰어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런 인상은, 각각의 요리가 조리된 상태를 말하기 전에 코스의 구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부터 느껴지는데, 일단 요리들이 게살 류산슬을 빼고는 모두 매운 맛 기반이고 소금 간이 살짝 안 되어 있었다.(혀가 매운 맛을 먼저 느끼지만, 그 뒤에 짠맛을 느끼므로 소금간을 잘 안 하면 뒷 맛이 허전하다. 그냥 매운맛만 느껴짐…). 따라서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 가장 저렴한 만 오천원 짜리 코스는 류산슬/팔보채/탕수육으로 구성되어, 팔보채를 먹고 난 뒤 매운 맛을 단맛과 신맛이 조화되는 탕수육으로 씻어내는 효과가 있는데, 이 코스는 류산슬 이후로 계속해서 매운맛 요리만 나와서 조금 지루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식감 역시 마찬가지. 굳이 게살을 넣지 않아도 되니까 단가를 맞추려거든 그냥 류산슬을 하거나 , 아니면 냉채 종류를 넣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3만원과 4만원 짜리 코스에는 냉채가 있던데… 물론 2만원짜리 코스라는게 두 시까지만 먹을 수 있는 만 오천원짜리와 나머지 더 비싼 코스들의 중간에서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 적게 저녁으로 코스를 즐길 수 있게 기획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냉채 같은 것 보다는 보다 더 중국 요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먹고 싶어 할 것이므로 식당에서도 그렇게 코스를 짠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루했다.
그리고 음식 외의 이야기들. 첫 번째는 친절도와 서비스.
음식 장사는 음식 맛도 맛이지만 서비스,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좀 민감한 편-돈 내고 사먹으니까-인데 사람이 없는 시간에 갔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던 주방장님 빼놓고는, 애초에 풍기는 느낌이 친절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이는 듯 했다. 1층을 전체를 맡은 단 한 분의 여자분도. 동파육을 먹으려면 하루 전에 주문을 해야 된다고 들어서, 예약도 할 겸 미리 전화를 걸었는데, 일행 가운데 시간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저녁을 먹기엔 비교적 이른 시간인 다섯시에 예약을 했더니, 동파육을 먹으려면 여섯시는 너무 이르다고 하는게 아닌가. 정확하게 음식을 그 전날 조리하는지, 아니면 그 날 아침에 주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차피 하루 전에 전화를 하는 데 한 시간 차이가 얼마나 큰가 싶어서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다섯시도 여섯시도 아닌, 모두 한 발짝 양보한 다섯시 반으로 예약 시간을 잡기는 했지만, 응대하시는 분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행 가운데 시간 여유가 없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고 설명을 하니 그럼 음식도 미리 시키는 건 어떠냐고 말씀하시는데, 코스도 아닌데 메뉴도 안 보고 미리 시킨다는 것도 좀 그렇고(이런 얘기를 하는 상황 역시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요리를 안 시키면 싫어한다고 하던데, 싼 요리를 먹을 생각도 아니었고 그 가운데 하나를 꼭 먹겠다고 전화까지 미리 했는데 왜 그럴까. 정말정말 맛있지 않으면 친절하지 않아도 가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정말정말 맛있는 집은 어떤 음식을 하든 그것보다는 더 친절했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생각.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란은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고(가보기 전까지 사진만 보고는 몰랐었다), 따라서 음식을 먹기에 아주 안락할 수 없는 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비교적 폐쇄적인 공간은 식당을 위한 탁자와 의자를 놓기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내놓는 음식도, 또 그 수준을 생각해봐도 목란은 그냥 동네 짜장면집이 아닌 요리집이라고 생각하므로, 조금 더 편했으면 좋겠다(주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 아니면 누가 부러 거기까지 찾아가서 짜장면 한 그릇만 먹고 오겠는가? 알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일테고, 그렇게 찾아 가면 대부분 요리를 먹지 않을까). 화장실 때문에 2층에 가보니 공간이 많이 있는 것 같아 보였으나 제대로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물론 휠체어 뭐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은 하기 어렵고(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탄 사람이 건물에 들어선다고 해도, 내부가 휠체어로는 도저히 이동할 수 없고 화장실도 2층에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여건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게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생각해 보았는데 별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정리를 하자면, 아주 찾아가기 어려운 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편한 곳에 자리잡지는 않은 목란은 결국 부러 찾아가는 집이 될텐데,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종종 가서 더 많은 음식들을 맛보고 싶기는 하지만, 중국음식이 생각날 때 가장 먼저 아, 이 음식 먹으러 가자! 라고 그 음식과 함께 가장 먼저 생각날 집은 아닌 것 같다. 바꿔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훌륭하기는 했지만, 군만두를 빼놓고 다른 음식들이 먹어보지 않은 다른 많은 음식들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자극해서, 발길을 부러 이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누군가가 백만년 된 곰탕집이 맛 없다고 글을 올렸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던 걸 생각하면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식당에 대해 같은 의견을 내지 않는 스스로에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만, 어쨌든지간에 나에게는 목란이 ‘명불허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 by bluexmas | 2009/05/28 10:54 | Taste | 트랙백(1) | 덧글(4)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날수도 있고
글쓴이분에게는 그냥 그럴수도 있구요 ㅋㅋ
그보다 식사가 굉장히 많네요 ㄷㄷㄷ
몇분이 가신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