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찾다

냉장고에 과일이라고는 토마토 밖에 없어서, 동사무소에 가는 길에 장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집을 나섰다. 생각해 보니, 토마토는 야채잖아. 그럼 집에 과일이 없는 셈이다. 과일이 없으면 우울해진다. 늦은 오후에서 저녁으로 향하는 해는 엄청나게 뜨거웠다.

참외가 제철인데, 은근히 제대로 된 참외를 찾기가 쉽지 않아 시장을 한참 헤매고 돌아다녔다. 물론 참외가 정말 엄청나게 많기는 했지만, 대부분 더위를 잔뜩 먹은 노란색을 띄고 있었다. 꼭지는 당연히 까맣게 말라 비틀어져 있고. 어째 햇볕을 잔뜩 머금고 속으로는 이글이글 끓고 있어서, 냉장고에 넣어놔도 식지 않을 것 같은 노란색이었다. 그래도 시장인데 살만한 참외도 없나… 싶어서 실망스러운 마음에 장을 나서는데 거의 끄트머리에 있는 가게에서 그나마 좀 덜 뜨거워 보이는 녀석들을 찾았다. 껍질을 까면 한 사람이 딱 하나씩 먹을 수 있을만한 크기, 그런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한 무더기에 오천원이면 다른, 벌써 시들어 가는 녀석들 보다는 비싼 셈이었는데 그래도 별 주저 없이 샀다. 오이며 양파를 산 장가방이 무거워져, 오는 길에는 역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어째 그럴 것도 같더라니, 모퉁이를 도는 버스에 어머니가 보인다. 차가 본가로 가는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집에 들러 아버지 얼굴을 뵙고 산 참외 몇 개를 놓고 왔다. 딱 반씩 갈라도 내가 더 많이 먹는 셈인데, 그것도 못하게 막으신다. 열 개쯤 되는 것 같았는데 꼴랑 네 개를 내려놓는다. 한 개에 오백원 꼴이니 뭐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 셈이었다. 두 분은 저녁을 드시기 전에 산책을 하시겠다고 해서, 같이 집을 나와 내가 사는 옆 단지까지 같이 걸어와서 나는 집으로, 두 분은 늘 걸으신다는 단지 바깥쪽 논길로 향하신다. 갈라서는데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가까이 살아서 좋다고, 안 해도 좋을 한 마디를 또 하신다.

요즘 그냥 이렇게 산다. 물론 참외는 맛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제목을 붙였는데, 왠지 느낌이 어디에서 본 것만 같군. ‘##이 #다’ 뭐 이런.

 by bluexmas | 2009/05/27 21:19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Amelie at 2009/05/27 21:41 

냉장고에 넣어놔도 식지 않을 것 같은 노란색이라는 말에,

그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맹맹한 참외의 맛이 떠올랐어요.

찝찌름 하네요.

전 요즘 생양파를 장에 콕 찍어서 먹어요.

양파가 제철이라 그런지 즙도 많고 달달하니 파프리카? 같아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27 21:46

요즘 양파가 정말 맵지도 않고 맛나더라구요. 그럴 때에 양파 간장 장아찌를 담궈보시는 것도…. 비율은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엄격하게 지킬 필요는 없구요 간장이랑 설탕, 그리고 식초를 팔팔 끓여서 미리 유리병에 담아두신 양파에 붓고, 뜨지 않도록 돌로 담궈놓으셔도 되고, 안 담궈 놓으셔도 되는데 어쨌든 뚜껑을 꼭 닫아서 좀 두시면 양파장아찌가 되죠. 그냥 밥반찬으로 좋지만 삼겹살 구운데 썰어서 같이 드시면 파무침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Commented by basic at 2009/05/28 13:31 

앗. 정말 오랜만에 보는 참외.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과일은 아닌데 안 먹은지 몇 년 되니까 그립네요. 양파 짱아찌라… 저도 한 번 담아봐야겠어요. 🙂 근데 먹은 후에 입냄새는 어떻게 되는 건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29 00:13

저도 미국에 있을 때는 거의 안 먹었는데, 오니까 또 맛있게 먹게 되던데요? 장아찌를 담그면 냄새는 좀 덜 나는 것 같아요. 물론 마늘은 여전하구요… 양치질 준비를 늘 하시는 것도 방법이겠죠?^^

 Commented by 카이º at 2009/05/28 16:31 

요즘 여기저기 참외 많이 팔더군요 ㅎㅎ

윗분 말씀 보니까 갑자기 양파 먹고 싶네요 ㅠㅠ

양파 굉장히 좋아하는데 ㄷㄷ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29 00:13

양파는 수퍼마켓에서도 사실 수 있답니다^^ 한 번 시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