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프레소
그렇다, 이름에서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 알바프레소는 에스프레소의 변종이다. 그러나 그냥 변종은 아니고, 일종의 열등한 변종이다. 나는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커피의 세계 역시 모든 음식들의 그것이 그러하듯 심오하다. 말하자면 깊이 파고들어 좋은 것을 추구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집에서 자기 커피콩을 볶겠나. 기후조건이 허락된다면 집에서 바질이나 파슬리 따위의 허브를 키우듯 커피 나무를 키우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어쩌면 기후 조건이 안 맞는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거기까지 시도함으로써 삶이 더 피곤해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니까(본인은 커피광이 아니므로 커피콩을 볶거나 커피 나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치즈는 좋아해서 직접 만들어 보고 싶고, 빵도 잘 먹으니까 종종 굽기도 하고 또 더 잘 굽고 싶다. 아마 강아지만한 꼬마 소가 있다면 젖소로 한 쌍 정도 집에서 키워서, 애완동물처럼 예뻐하면서 가끔 젖도 짜 먹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각설하고, 그렇게 오묘한 커피의 세계이니만큼 맛난 에스프레소를 뽑는 것 역시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정말 그걸 원한다면… 인터넷 같은데 찾아보면 정말 수 많은 정보가 있을텐데, 일일이 찾아서 확인하기 귀찮으므로 그냥 주워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만 적어보면,
– 보통 10불만 줘도 살 수 있는, 칼날로 가는 커피콩 갈이는 모터와 칼날의 열로 인해 콩의 맛에 영향을 끼치므로 burr로 가는 콩갈이로 가는게 맛을 보장한다. 물론 칼날 달린 콩갈이는 갈린 입자의 크기를 들쭉날쭉하게 만드니까 그것 역시 별로… burr는 사전을 찾아봐도 우리말 한 단어로 옮기기가 쉽지 않은데, 설명하니 귀찮으니 예를 들자면 요즘은 많이 쓰는 후추 갈이가 burr로 되어 있다고. 어쨌든, 이 burr가 달린 콩갈이만 해도 웬만한 커피 메이커보다 비싸다. 그냥 쓸만한 정도가 100불 안팎이라고 들었으니까.
– 싸게는 몇 십불에서, 비싸게는 뭐 오토바이 만큼 비싼 에스프레소 메이커를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압력이다. 뭐 오토바이만큼 비싼 기계들이야 대부분 압력이 문제가 될 건덕지는 없을테고, 집에서 쓰기 위해 파는 기계들에게는 중요하다. 압력이 모자라면 제대로 추출이 안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 수치가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가정용으로 나온 기계들의 대부분이 이게 모자라다고 들었다. 텔레비젼에서 보았을 때, 그래도 쓸만한 기계를 사는 가격의 마지노선은 300불 정도.
– 콩을 갈아서 채울 때, 다녀 넣기 위해서 누르는 압력도 당연히 중요하다. 누군가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체중계인가를 가지고 나와서는 그 적절한 압력을 수치로 환산해서 보여주더라. 찾아 보니 30파운드 정도니까 대략 13-4 킬로그램 정도.
뭐 이건 그냥 몇몇 예일 뿐이고, 까다롭자면 한 없이 까다로울 수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커피 잘 만드는 법 소개가 아니므로 일단 통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보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내가 잠깐 들여다 본 곳은여기.
어쨌든, 이렇게 비교적 고가의 기계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게 에스프레소 뽑기인데, 설령 기계가 정말 오토바이 한 대 만큼 비싸다고 해도 그 기계 앞에서 뽑는 사람이 알바생이라면,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가 되지 못하고 그냥 알바프레소가 된다. 지난 주 수요일이었나, 꼭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간을 좀 때우고 싶어서 눈 앞에 보이는 커피가게에 들어가서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에스프레소 뽑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고, 모두가 알바생이었던데다가 다 고만고만한 프랜차이즈 커피가게라면 내가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단지 연하게 내린 커피를 한 컵씩 마시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점심도 국을 먹었는데 그걸 먹고 또 커피 한 컵이면, 가뜩이나 작은 방광을 물려받아 부모님을 원망할 때가 있는 사람으로써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늘 더블샷을 시켰는데, 그냥 싱글샷만 시켰다. 그러나 내 앞에 나온 알바프레소는 더블샷도 넘는, 거의 트리플샷 정도 되는 양으로 그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넘칠세라 찰랑찰랑…까지는 좀 과장이겠지만, 하여간 그 정도로 가득 나왔고, 역시 맛은 전형적인 알바프레소의 맛이었다. 그냥 내린 커피와 에스프레소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어느 날은 그냥 내린 커피에, 또 어나 날은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양과 진하기… 아무리 커피 맛에 둔감하다지만 적어도 맛있는 에스프레소는 맛있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이건 그냥 2,800원을 내고 자리를 빌리는 정도로만 만족하지 않는다면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나의 기대가 크지 않았다고 얘기했던가? 알바프레소는 어딜 가나 알바프레소일 뿐이므로, 이런 커피 가게에서 진짜 에스프레소를 바란다면 어째 닭보고 날아보라고 채찍으로 때리면서 괴롭히는 느낌이어서 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다음 약속까지 남은 시간을 보냈다. 공간을 가르는 유리벽에 뭐 얼마나 신선한 콩을 쓰고 잘 관리하고 등등… 의 얘기를 잔뜩 적어 놓았던데, 그저 공허한 느낌이었다. 그 공간에 가득 들어찬 어느 누구도 커피 자체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알바생은 계속 열심히 알바프레소를 뽑고 있었다.
# by bluexmas | 2009/05/25 10:43 | Tast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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