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의 제국으로 귀환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발단은 헬스클럽에서 잰 몸무게였던 것도 같다. 또 외할머니께서 좋지 않으신 것 같으니 주말에 예산에 가야될 것 같다는 어머니의 메일 때문인 것도 같았다(지난 몇 만년간 친척들을 보지 않았더니, 별로 보고 싶지 않고 또 사실 앞으로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촌형제들에다가 그 애들에다가… 모르겠다). 머리가 길어서 기분도 그런가… 싶어 고민을 좀 하다가 머리를 자르러 가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탔더니 오리에서 분당 끄트머리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고, 좌석과 좌석 사이가 정말 멀미날 만큼 좁은 시골 버스를 그것도 중간에 한 번 갈아타고 오리역까지 가서 머리를 잘랐으나 기분은 아주 나아지지 않았다. 시골 구석에 있다가 밖에 나왔으니 다른 볼일도 좀 봐야겠다 싶어, 다시 분당선-노약자석에 앉은 할머니들끼리 쌍욕을 하고 싸우고, 내 옆의 남자애는 시계추처럼 좌우로 끄덕거리며 졸아서 어느 순간 머리통을 잡아 유리창에 짓이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괴로웠다-을 타고 선릉을 거쳐 강남 교보에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들여다 보고 버스 시간에 맞춰 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그 수많은 인파를 헤치다가 문득 알아버렸다. 내가, 사람들을 다시 미워하기 시작했구나.  그것이 내가 사람들 가운데에서 내 몸을 빼내 낯선 어딘가에다가 쳐박고 싶은 아주 정확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알아버렸던 것이었지, 나는 사람이면 혈액형처럼 가질 수 밖에 없는 모순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모순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모순을 가지고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거나 끊임없이 정당화하는 작태를 싫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물론 미움의 테두리 안에는 나 자신 역시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함되니까, 이건 뭐랄까 피할 수 없는 굴레와도 같은 것, 내가 사람 사이에 있는 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어느 순간 미쳐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그렇다면… 단 한 번도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이 미움의 제국으로 돌아오고 나니 어째 내가 희망이라는 걸 품었던 순간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만 같은 착각에 시달려, 괴로와.

 by bluexmas | 2009/05/19 21:57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