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싸구려, 마주앙 2종 시음기

마주앙? 어째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그러나 알게 뭐냐, 물론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백화점이며 마트 따위의 포도주 매장에서 팔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때로 비웃음이 나온다. 첫 번째 비웃음의 이유는, 물론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서. 그래, 뭐 그건 주세 때문이라고 억지로 이해해주고 넘어가기로 하자. 때로 정말 그 양조장에서 생산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모모회사의 싸구려가 삼만원도 넘는 가격표를 떡허니 배때기에다 붙여놓고 위풍당당하게 진열대에 자리 잡고 있는 꼬라지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다른 나라의 녀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의 저가-그러니까 미국에서 10불 안쪽,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삼 만원 안쪽-인 녀석들은 자체 생산도 아니고 다 큰 양조장에서 나온 걸 사다가 딱지만 붙여서 판다고 들었는데… 특히 Gallo가 정말 밭이 많다고. 그러고 보니 이 얘기는 백만년전에 했던 기억이 나는군)…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때로 정말 말도 안되는, 소주나 막걸리보다도 못한 술 아닌 술이 그저 포도주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팔리고 있어서 속는 셈치고 한 번 사 봤다가 정말 속아서 짜증이 날 때가 있어서. 물론 포도로 만들면 포도주가 될 수 있는 자격조건을 갖추는 셈이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게 다 마실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 물론 내가 돈이 없어서 우리나라의 가격 기준으로 보아 몇 만원이 넘는 녀석들은 사서 마실 수 없지만, 그렇다고 또 그 가격대 이상, 예를 들어 삼 만원 이상의 포도주를 사면 과연 마실만 할 것인가… 또 그게 바 같은데 가면 적어도 오 만원은 할텐데 그게 오 만원짜리 무엇, 예를 들어 한우, 처럼 그 오 만원의 가치를 지닌 식품의 맛이 날 것인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소주며 막걸리, 맥주 따위로 음주욕을 채우다가 누군가 마주앙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싸구려지만 대놓고 싸구려임을 부정하는 포도주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싸구려인 마주앙이 낫다고 해서 나도 한 번 시도를 해 보았다. 웃기는게 또 이마트와 같은 곳에서는 어찌 되었든 있어 보이는 수입 포도주를 팔기 위해서인지 마주앙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일부러 시장에 딸린 마트까지 찾아가서 샀다. 바로 동네 앞 수퍼마켓도 있기는 했는데, 무려 만 이천원에 가까운 가격. 시장 마트에서는 구천 육백원인가에 팔고 있었다. 웃기는게 정말 있어 보이는 수입 포도주만을 팔기 위해서 마주앙 따위를 안 판다면, 마주앙 역시 원액 또는 포도를 수입해다가 만들어 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대체 무슨 모순? 병 딱지에 한글을 써 놓으면 와인이 포도주가 되고 따라서 더 이상 쿨 할 수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리슬링과 카버네 소비뇽이 있어서 각각 한 병씩 사다가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시음하는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는 리슬링. 오오, 마주앙에서 리슬링이 나오다니…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때에는 뭐가 뭔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게 리슬링인지 뭔지, 옛날에 나왔던 것들이 아직도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냉장고에 보관해서 적절한 온도로 맞춰준 다음 마셔보았다.

으음… 어떤 품종의 포도로 만든 포도주이건간에, 또 얼마나 싸고 비싸건 간에 마시면 보통 그 맛의 느낌이나 잔향이 최소한 목을 넘어갈때까지는 지속되기 마련인데, 얘는 그게 다른 많은 포도주들의 한 반 정도 밖에 안 됐다. 달리 말하면, 처음 입에 들어갔을때 뭔가 그 포도주라는 느낌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그냥 뚝, 끊겨버린다. 그리고는 ‘내가 지금 뭘 마셨지?’ 하는 순간적인 기억상실과도 같은 느낌.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리슬링의 느낌 따위는 나지 않는다. 내가 마셔본 리슬링이라는게 대부분 15불 미만의 싸구려라는 걸 감안했을때, 이건 리슬링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이 납작하고 평평한 느낌이었다. 물론 리슬링이 아니기 이전에 포도주가 아닌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그건 두 번째로 마셨던 카버네 쇼비뇽을 마시고 나니…

리슬링 아닌 리슬링을 마시고 나니 어째 기대 따위는 가지는 것 자체로 죄악인 것 같아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딴 카버네 소비뇽… 그러나 기대 자체는 가지는 것 자체로 죄악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녀석은 형편없었다. 뭐랄까, 이건 정말 포도주가 아냐, 이건 정말 술이 아냐… 와 같은 절규가 내면에서 계속 새어 나오고, 나는 그걸 마치 못 들은 양, 무시하고 그저 알코올을 섭취하기 위해 때려 부었다고나 할까? 카버네고 나발이고 이 술은 정말 술이 아닌 듯한 느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개그와 같은 맛이었다. 그것도 매 모금이, 매 잔이 정말 다르게 웃겨서 어느 한 순간에 마시다 말고, 그것도 자정을 달려가는 한 밤중에 혼자 미친 듯이 웃었다. 그래도 다 마시니까 알코올이 들어서 기분은 알딸딸하고, 배도 부르더라.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글은 ‘마주앙 개싸구려니까 이딴거 마신다고 포도주 마시는 척 하지 마셔’ 와 같은 얘기를 하려고 쓴게 아니다. 내 기준에서 보기에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싸구려 포도주가 싸구려임을 부정하며 팔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따위를 마시느니 대놓고 싸구려인 마주앙을 마시는 건 나의 포도주 음주욕을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시도해 본 것인데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고, 따라서 마주앙을 마시니 같은 가격으로 복분자주 두 병을 사서 마시는게 여러모로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참, 복분자주 얘기하니까 또 어이없는게, 요즘은 복분자 ‘주’ 가 있고 또 복분자 ‘와인’ 이 따로 있던데 대체 이 둘의 차이는 뭘까? 포도주가 포도주라고 부르면 쿨하지 못한지 와인이라고 불리는 것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데 복분자주는 또 왜 복분자 와인으로 팔려야만 하는 것일까?

 by bluexmas | 2009/05/18 23:33 | Win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leinon at 2009/05/19 09:06 

밸리타고 돌다 들렀습니다. 마주앙은 대체로 보관상태가 형편없고, 오래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대로 보관, 숙성된 상태로 마시면 적어도 가격 정도의 맛은 하더라구요. 코르크가 상하거나 시큼해진 마주앙이 아마 전체의 80%는 넘을 겁니다;; 온도 높은 곳에, 세워서, 빛을 받으며 보관된 ‘발효식품’이니 그야말로 ㄷㄷㄷ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9 09:34

그래도 제가 산 곳에서는 무려 누워서 보관하고 있더군요^^ 어쨌거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마주앙은 비롯,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팔리는 만 오천원 이하의 포도주들 모두요. 그냥 소주나 마실까해요.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06/10 00:47 

가격이 다는 아니지만..대체로 국내서 만5천원 미만 와인들은 위험하긴 하죠^^; 개인적으론 남아공산 골든칸 까베르네소비뇽2006(이마트서 만7천원 내외)정도를 살짝 추천해봅니다. 이건 독일 수퍼에서도 3~4유로에 팔더군요. 그럭저럭 납득할 정도 맛은 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6/11 01:50

알죠 골든 칸! 한 병에 3불에 팔아서 피노타지랑 뭐랑 두 병 사다 먹어봤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럭저럭 납득할 정도 맛, 아니면 그것보다 살짝 못한 맛이었어요. 어딘가 글도 썼던 것 같은데…

일 때문에 독일에 자주 가시나봐요. 저도 베를린에 보름 있어봤는데, 이상하게 독일에서 마신 맥주는 기억이 잘 안 나고, 같은 여행때 체코에서 마신 필스너 우르퀠 기억만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