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2집- ‘인디의 여왕’은 인격 분열증
교보 핫트랙스. 음반 진열대를 지나치는데 새로 나온 오지은의 앨범이 서너단 정도를 차지하고 진열되어 있었다. 붙어 있는 딱지에는 ‘인디의 여왕’ 이라고 써 있었던가? 그리고 함께 붙어 있던 화장품 샘플. 인디의 여왕과 화장품 샘플과는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이게 두 번째 앨범인 오지은이 어떻게 인디의 여왕 따위로 마켓팅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이왕 인디의 여왕이면 그에 걸맞은 뭔가를 붙어서 팔지, 왜 하필 화장품 샘플이냐고. 인디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설사 붙일 수 있다고 해도, 그 이유는 오지은이라는 음악가가 음악적인 완성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인디의 여왕 씩이나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무엇인가 음악과 관련된 걸 붙여서 팔아야 되는 것 아닌가? 이게 무슨 여성지도 아니고 쓸데없는 것들을 붙여서 파는 행태를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채 판을 뜯기도 전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나 인디의 여왕이든, 화장품 샘플이든 그게 오지은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겠지, 라는 생각으로 편견이나 사심 따위를 애써 옆에 치워두고 음악만 듣는다.
어떤 면에서 오지은의 두 번째 앨범은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 음악가가 걸을 수 있는 비교적 최선의 길을 따르는 전형을 보여준다. 음악을 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 어떻게든 어렵게 기회-여기에서는 즉 돈을 의미할지도-를 잡아 첫 번째 앨범을 내고, 좋은 반응을 얻어 조금 더 나은 상황에서 두 번째 앨범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음악가는 자기에게 주어진 더 나은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일단 그렇게 주어진 기회가 돈과 얽혀 있고 그것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음반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의미한다면, 음악가는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해서 보다 더 나은 스튜디오에서 보다 더 나은 장비로 보다 더 나은 세션맨을 써서 음질이 좋은 음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처음에는 철저하게 무명이지만 첫 앨범을 내놓고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져 취향이 비슷한 동료 음악가와의 연대를 더 쉽게 꾀할 수 있어서 자기의 음악에 다른 양념을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음악을 만들고 녹음하고 연주하는 것 외의 직업을 가져 보다 더 나은 창작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었다가 그 문제를 해결해서 더 많은 시간을 창작에 투자해서 더 좋은 곡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오지은의 새 앨범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가운데 첫 번째는 아주 쉽게 충족이 되었고, 두 번째는 적당히 충족은 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오지은의 음악 자체를 더 낫게 들리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며, 세 번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음악가가 두 번째 앨범을 낼 때면 꼬리표처럼 딸려 오는 그 소포모어 징크스 Sophomore Jinx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정확히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통의 음악가(밴드/솔로 모두 포함)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립하는데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처음 음악을 시작해서 첫 번째 앨범을 낼 때 까지 앞으로 운이 좋아 세상의 귀에 들어온다면 내게 될 판들에서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쓸 확률이 높다. 웬만해서 딱 열 곡만을 써서 데모를 만들었다가 그것만 녹음해서 판을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어쨌든 그래서 첫 번째 앨범을 내고 두 번째 앨범을 낼 여건까지 만든다면 그렇게 두 번째 앨범을 위한 창작기간은 첫 번째 앨범을 위한 그것보다는 현저하게 짧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첫 번째 앨범을 내기 전까지 써 두었던 곡들을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곡들역시 담을 수 있을만한 정도는 아니었기 때 첫 번째 앨범에 들어가지 못한 것들이었을테니까. 그래서 첫 번째 앨범을 어렵사리 낸 누군가가 그때 가지지 못했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서 좋은 음질로 녹음되어 반짝거리는 케이스와 책자를 담은 두 번째 앨범을 내고도 그 지원의 여세를 몰아갈 수 없는 이유는, 음악가의 창작력이 두 번째 앨범에서부터 시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앨범을 낼 기회를 다시 잡아서 만회할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든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래서 음악가는 첫 번째 앨범을 내고 슬프게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90년대 중반에 등장했던 D 아무개 밴드를 그 전형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오지은의 두 번째 앨범이 바로 그 범주에 속한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인가? 아주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곡 자체가 좋고 나쁘게 들리는 것을 논하기 이전에 오지은의 이번 앨범에는 일관성이 철저하게 결여되어있다. 물론 첫 번째 앨범을 들으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오지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그렇게 풍부하게 담겨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워’ 나 ‘사계’ 와 같은 노래가 겉돈다고 생각했는데, 이 앨범에서는 한술 더 떠서 ‘진공의 밤’ 이나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와 같은 노래들까지 실려 있고 이런 노래들은 듣기가 메마른 감정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부르는 것 같아서 듣기가 괴롭다. 거하게 무슨 음역까지 논하시냐고 할 사람들도 꽤 있을텐데, 오지은은 고음과 저음 모두가 듣기에 그렇게 편하지 않다. 특히나 저음으로 내려가면 음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떤 느낌이냐하면, 사람들이 잘 부른다 잘 부른다해서 더 듣기 싫은, 김경호 같이 고음으로 질러대는 가수가 과장된 바이브레이션을 넣어서 안 되는 저음으로 노래를 부를때 느끼는 그 거북함이다. 그래서 ‘푸름’ 과 같은 노래 역시 듣기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심각하고 무거운 오지은은 듣는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나 이 괴로움은 카타르시스가 딸려 오지 않는 괴로움이니까 그냥 육체의 괴로움에 불과하다. 그냥 듣기에 괴롭다.
또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무겁고 심각한 감정의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곡들이 듣기 좋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인생론’ 과 같은 노래에는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다. 가사만 놓고 읽으면 그냥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그 가사가 실린 노래를, 그것도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와 같은 노래 다음으로 들으면 어이가 없어진다. 자의식 과잉으로 듣는 사람의 양 싸대기를 마구 때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어울리지 않는 귀여움을 떠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런 노래들을 연달아 듣다 보면 창작하는 사람이 보여, 혹은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세계나 감정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색깔, 혹은 감정으로 들쭉날쭉하는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서글퍼지는 이유는,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곡들이 가장 오지은스럽다고 생각하고, 또 그래서 가장 좋게 들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되는게 아니라’ 와 같은 가사를 담고 있는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과 같은 노래는 가사도, 또 그녀의 목소리며 연주도 저 위에서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감정의 과잉이 낳은 너무 무거워서, 또는 너무 가벼워서 듣기 거북한 노래들의 중간에서 오히려 빛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노래에서 딱 기분 좋게 떨리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스스로 프로듀싱 했다고 밝히고 있는 이 앨범이 정말 그녀의 순수한 판단 아래 기획되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두 번째 앨범을 내고 ‘인디의 여왕’ 이 된 오지은은 앨범 속에서 인격 분열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또 누군가는 다양성을 논하겠지만, 이건 다양하다기 보다는 그저 중구난방일 따름이다. 부디 세 번째 앨범에서는 오지은이 그 분열로 고생하는 인격들을 좀 다독거려서 좀 더 자기처럼 들리는 노래를 많이 담은 앨범을 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때쯤 되면 또 ‘인디의 여왕’ 이라고 딱지 붙여 팔아도 트집잡지 않을 테니까.
# by bluexmas | 2009/05/16 23:16 | Music | 트랙백(1) | 덧글(10)
암울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샤방샤방해져서 흠칫 놀랬던 기억이…….
당시의 매체/청자들의 반응엔 뭐랄까 ‘하이프’가 흘러넘쳤던 것 같아요ㅎ
세번째 문단은 정말 정곡인 것 같습니다. D모 밴드까지 다:D
D모 밴드가 누군지 아시는 분들이 많을까요?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