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에 얽힌 농담 세 가지

아무개 님 블로그에 덧글을 쓰다가 생각난 얘기(어째 그 덧글 아닌 어딘가에도 쓴 것 같다).

1. 4-5년 전이었나, 매봉터널 지나면 있는 바벨탑 같이 높은 모 아파트 단지 앞 상가에 새로 생긴 무슨 빵집에 갔었다. 뭐 음식 관련된 가게들이 대부분 ‘정통’ 이나 ‘원조’ 를 내세우는 걸, 설사 정통이나 원조가 아니라도 좋아하니까, 이 빵집도 자기들이 무슨 정통 뭐시기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기억하기로 일본에서 배운 주방장이 빵을 굽는다고 그랬던가? 하여간, 일행이 베이글을 좋아해서 쟁반에 담았더니, 크림치즈와 같이 드실거면 같이 내오겠다고(아마도 구워서 내오겠다는 얘기였겠지)… 그래서 가져갔다가 내오는데, 무려 베이글을 세로로 네 등분을 한 것이 아닌가.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베이글을 먹었던 게 대략 1998년 쯤이었으니 그때는 벌써 베이글이 대중화된지도 한참이었고, 그건 물론 베이글이라는 빵을 크림치즈와 같이 먹는다면 가로로 반을 갈라 그 사이에 크림치즈를 바르는 것이었을텐데, 무려 세로로 네 등분 된 베이글은 좀 황당했다(아니, 빵이라는게 생긴 걸 딱 보면 본능적으로 가로로 자르고 싶지 않나? 바게트도 아니고). 정통이라면서… 그 주방장이 정통으로 배운 곳에서는 베이글을 세로로 네 등분해서 먹나봐, 라고 생각하면서 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움에 떨었다.

2. 이마트에 갔다가 조선호텔에서 만든 베이글이 아인슈타인 베이글의 딱지를 달고 나온 것을 보고 살짝 경악했다. 일단 대놓고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의미를 두고 무슨 카페같은 곳에서 사먹는 케잌과 같은 정도로 고급스럽지도 않은게 아인슈타인 베이글인데 무려 호텔에서 만든 베이글에 아인슈타인 베이글의 딱지를… 회사를 다닐 때, 돌아가면서 준비하는 금요일 아침의 절반은 언제나 아인슈타인 베이글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온갖 다른 종류의 음식이었다. 회사 바로 앞에 가게가 있어서 귀찮으면 그냥 거기에서 출근길에 들러서 사오면 되니까.

그러나 사실 정말 경악했던 이유는, 아인슈타인 베이글이 우리나라에 버젓이 있어서도, 무려 호텔씩에서 만들어 파는 베이글이 딱지를 빌려서도 아니고, 진열대에 무려 ‘웰빙식품’ 베이글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기억하기로 그 근거가 지방이 안 들어가서였나? 물론 베이글 레시피에 식용유 정도 말고 별 다른 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베이글이 얼마나 밀도가 높은 빵임을 생각하면 그 탄수화물이 건강에 아주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베이글을 웰빙식품이라고 일컫는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떡만큼 밀도가 높은 베이글, 달리기 대회 같은데 나가면 결승점에 빠지지 않는 회복음식 가운데 하나다. 그야말고 밀도 높은 탄수화물 덩어리니까. 살 안 찌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나처럼 탄수화물 너무 많이 먹으면 바로 배가 나오는 사람에게는 웰빙식품이 아닐 듯. 게다가 아인슈타인 베이글 따위가 종류 불문한 미국의 대량생산 식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걸 웰빙식품이라고 일컫는 건 사기가 아닐까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Glycemic Index를 생각해도 하얀 밀가루 베이글은 그다지 좋지 않을 듯)?

3. 이건 농담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뉴욕의 베이글은 맛이 다르다고 얘기하는 걸 많이 주워 들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그러더라. 나는 워낙 맨하탄이며 뭐 이런 동네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과연 뉴욕의 베이글이라도 뭐가 다를까, 그냥 기분의 차이겠지,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인데 혹자는 뉴욕의 물이 달라서 빵을 만들면 맛이 다르다고… 뭐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기억하기로 그나마 맛잇게 먹었던 베이글 가운데 하나가 소혼가 어느 동네를 싸돌아다니다가 말도 안되는 담배가게 같은데에서 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크림치즈를 가운데 발라놓은 베이글이었으니까. 그게 정통베이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로로 반이 갈려 있었다.

글만 올리면 심심할 것 같아서 사진을 주워왔는데, 출처는 여기.

 by bluexmas | 2009/05/11 19:06 | Taste | 트랙백 | 덧글(27)

 Commented by Amelie at 2009/05/11 20:07 

하하하하 네등분!

치즈를 발라주는 방식 이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요..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20

히히히히 네등분! 이죠. 치즈는 어디에다가 바르면 될까요? 아무래도 위에 발라줘야 되겠죠? ^^ 참 정통치고는 제대로 정통인거죠 베이글 어떻게 내오는지도 모르니까…

 Commented by xmaskid at 2009/05/11 21:21 

아인슈타인 초코칩 베이글 좋아했었는데, 동부에 오니까 찾기가 힘드네요. 파네라 브레드에서 모카칩 스월 베이글이 한정으로 나오는데, 아침에 일찍 가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22

아인슈타인에 초코칩 베이글이… 있기는 있었던 것 같네요. 전 원래 베이글 잘 안 먹고 먹어도 호밀베이글 이런 것만 찾았거든요. 파네라 브레드 빵은 기억하기로 그렇게 맛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책이랑 도구가 다 오면 베이글 구워볼까 생각중이거든요. 결과가 좋으면 올리겠죠 뭐^^

 Commented at 2009/05/11 21: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23

앗 그렇군요^^ 내일 수정하겠습니다. 지적 감사…

 Commented by zizi at 2009/05/11 22:40 

하하 세로본능.. 아마 빵을 입으로 가져가서 먹는 것보다 손으로 뜯어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름 배려랍시고 그렇게 해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23

그렇죠! 그게 바로 정통의 배려인 것이죠… 정통이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는 겁니다^^;;;;

 Commented by 리엘 at 2009/05/11 23:32 

제가 예전에 일본에서 베이글을 산 적이 있었거든요. 커팅을 해달라고 했더니 ‘세로로’ 커팅을 해주서 정말 황당했다는…;;;

아니 이 나라에서는 베이글을 세로로 커팅해서 먹나 싶었더랬죠;; 게다가 한국에서는 커팅 당연하게 해주는데, 거기는 원래 커팅 안해준다는 식으로 한마디 하면서 커팅해주더라는…;(그러면서 커팅 세로로 해주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24

의사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나봐요. 뭔가 cut이 아닌 slice를 부탁했어야 하는 것일까요? 일본말로 얘기하셨을거라 생각하는데.

 Commented by december at 2009/05/12 00:11 

오늘 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있다 베이글을 먹었는데 베이글 포스팅이라니 반갑네요~

아인슈타인 베이글은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먹은 베이글은 말도 안 되게 달아서 10초 정도 이 시간에 베이글 구울 결심을 할 뻔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어째서 베이글을 하나 다 먹고도 저는 아직도 배가 고픈 걸까요. 어이구.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27

베이글이 달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데, 혹시 거기도 정통 베이글 집이겠죠?^^;; 흐흐. 저는 통밀로만 빵을 굽는 레시피가 나오는 책을 샀는데, 거기에 베이글도 있는 것 같아서 책이랑 도구가 오면 그걸 시도해볼까 생각중이에요.

… 베이글을 하나 다 먹고도 배가 고프다면 아마도 저처럼 저주받은 몸일지도 모르죠, 흐흐.

 Commented by 김환타 at 2009/05/12 00:24 

아~밀도가 높아서 칼로리가 높군요! 거기다 크림치즈까지 치덕치덕 발라먹으면…크흐흣! 하지만 베이글 너무 맛있어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음식같아용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00:30

그러니까 단위 면적당 많이 들어 있으면 칼로리가 높겠죠? 베이글은 정말 밀도가 높잖아요. 전 사실 너무 질겨서 그렇게 베이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랍니다. 통밀식빵에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바른 샌드위치가 제 취향이구요.

그래도 베이글에 크림치즈, 그리고 훈제 연어는 맛있죠. 케이퍼랑 빨간 양파 절임까지 곁들이면…^^

 Commented by 킬링타이머 at 2009/05/12 00:31 

그래도 이마트 아인슈타인 베이글이 쉽게 접할수 있는 수준에선 가장 훌륭해서 자주 먹었었죠.

일반 빵집에선 모양만 베이글인걸 팔아서;

코스트코는 가기가 힘들고…커피전문점에서 파는것도 별루…

요샌 전문점이 많이 나와서 괜찮은가 모르겠네요.

한창 먹을때는 끼니를 다 그걸로 때우는데, 작정하고 구하려면 힘들어요

구워먹어야하는가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11:04

저도 안 먹어봤는데 무려 호텔에서 만들었으니 맛있겠죠 뭐. 베이글이 참 푸석푸석함과딱딱함의 유혹사이로 쫄깃해지기가 쉽지 않죠. 뭐 전문점도 저는 그리 믿는 편이 아니라서요. 그런데 끼니를 그걸로만 때우시면 속이 불편해지지 않나요? 너무 밀도가 높아서 저는 그렇더라구요.

 Commented by Marilucero at 2009/05/12 02:30 

베이글하면 뉴욕 베이글이지요. 다릅니다, 확실히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11:05

그, 그런걸까요? 저는 잘… -_-;;;

 Commented by penne at 2009/05/12 05:45  

뉴욕에 베이글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 많기도 하지만, ‘뉴욕 스타일 베이글’은 다른 베이글(예를 들면 몬트리올 베이글)과 만드는 과정이 조금 다르기도 하답니다^^; 소금을 쓰지 않는 몬트리올 베이글과 달리 소금과 몰트과 모두 들어간다든지 등등.. 맛에 있어서도 다른 종류의 베이글에 비해서 더 쫀득하고 부드러운 편이지요.

그리고 뉴욕 베이글이 맛있긴 맛있어요..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11:05

몬트리올 베이글 같은게 있는지 몰랐어요. 언제나 소위 말하는 ‘뉴욕 스타일’ 베이글을 먹었거든요. 어쨌거나 베이글은 제 취향이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mmst at 2009/05/12 06:38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 ‘건강’과 ‘정력’이라고 하면 환장을 하고 달려드니까 일종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듯 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11:06

네, 물론 마케팅이라고 생각하죠. 이젠 아무도 믿지 않을텐데 아직도 죽어라 웰빙 딱지를 붙여대는 걸 이해할 수 없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05/12 09:23 

베이글이 웰빙이라면…. 음…-ㅁ-;;

예전에 수유 쪽인가 백화점 생기면서 행사할 때 지하식품매장에서 스콘을 영국식 웰빙빵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워낙 강렬한 충격을 받았기에 베이글이 웰빙이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곤 넘어갈거예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11:07

스, 스콘은… 몇 번 만들어봤는데 들어가는 버터를 생각하면 베이글보다도 더 웰빙이라고 할 수 없는데. 정말 강렬한 충격이군요. 그에 비하면 베이글은 웰빙 양반이네요.

 Commented by liesu at 2009/05/12 13:36 

세로로 자른 베이글 넘 웃겨요.ㅎㅎ 전 한국베이글이 호주베이글 보다 훨씬 맛있는 듯.. 여기 빵 (대체로) 맛없어요. ㅜ.ㅜ 저 아는 호주분도 한국빵집 너무 다양하고 맛있는 거 많다고, 거기서 살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구요.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2 23:18

아, 호주는 빵이 별 맛 없나요? 저도 호주의 음식 문화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영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만 하는데 그래도 환경 덕분에 재료는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민자가 많아서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드네요.

 Commented by liesu at 2009/05/14 01:33

이민자가 많아서 다양한 음식을 즐기기는 정말 최고의 나라인 것 같아요. 굳이 세계각국 여행할 필요 없이, 그냥 여기서 유럽,중동,남미,아프리카,아시아 한 큐에 해결가능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