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연속극
어머니가 ‘즐겨’ 보시는, 아홉시 뉴스 전에 방영되는 일일연속극에는 꼴랑 두 가족이 등장한다. 겨우 두 가족 가지고 일일 연속극의 이야기가 진행이 될까? 작가도 그걸 걱정했던 듯, 인간으로써 상상할 수 있는, 또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 두 가족의 관계를 꼬아 놓았다. 다이어그램으로 그리면 간단하지만 그려서 스캔하기가 귀찮으므로 그냥 말로 설명하면, 가족’ 갑’의 엄마는 결혼을 막 해서 아이를 가졌을 때에 남편을 잃는데, 그 엄마의 어머니 되는 사람이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이를 다른 가정에 주어버림으로써 여자가 재가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런데 설정인지 아닌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이를 준 가정이 바로 그 죽은 남편의 형네집(가정 ‘을’), 따라서 가정 ‘을’은 조카를 데려다 딸처럼 키우고 그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쉬쉬한다. 한편 그렇게 아이가 죽은 줄만 알고 있던 여자는 아이가 있는 남자와 다시 결혼해서 위의 가정 ‘갑’ 을 이뤄 아이 둘을 더 낳고 사는데 그 가정 ‘갑’의 큰 딸, 그러니까 이 엄마가 낳지 않은 딸은 가정 ‘을’ 의 둘째 아들과 가슴 두근두근하는 사이인데, 이 딸은 또 미국에서 생양아치 같은 놈이랑 결혼해서 살다가 이혼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있었고, 생양아치 같은 전 남편이 미국에서 쫓아와서 여자를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아이를 유산시키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정 ‘갑’ 의 둘째딸, 그러니까 엄마가 낳은 친딸은 그 엄마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큰 딸과 모델과 에이전트의 관계로 회사에서 엮이는데, 또 그 회사는 ‘갑’의 아버지가 차린 회사고, 또 그 집의 막내, 아들은 ‘을’ 집안의 고모, 그러니까 자기 엄마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딸을 데려간, 또 그 남자의 첫 번째 그리고 죽은 남편의 여동생의 딸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같이 하고 또 친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을’ 의 남편이 온통 사기꾼인 큰 아들과 그 사기에 관련된 분쟁을 벌이다가 쓰러진 뒤 깨어나서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다가 회복되면서 벌어진다.
아, 이렇게 쓰고 나니 대체 나도 어떻게 썼고, 또 저렇게 쓴 걸 읽고 대체 누가 이 연속극에서 어떻게 인간관계가 얽혔다고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저 연속극의 꼴랑 두 가족 속에서 얽힌 인간관계나 그 상황을 보면, 정말로 저런 모든 상황들이 저렇게 흔하게 존재하는지 궁금해진다. 사산부터 시작해서, 이혼, 출생의 비밀,유산, 사기, 기억상실… 뭐 작가라는 사람들이야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 저런 이야기들을 엮어낸다고 쳐도, 정말 저런 걸 보고 앉아 있으면 즐겁나? 그래서 궁금한게, 정말 어머니가 저걸 ‘즐겨’ 보시는 걸까? 간만에 집에 들러서 어머니 보시는 옆에 앉아서 저 연속극을 보고 앉아 있노라니 상황은 한층 접입가경, 그 아이의 출생의 비밀을 본인도 알게 되었는데, 그걸 그 딸이 알도록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또 엉뚱한 사람을 잡고 비난하고 있고, 비난 받는 사람은 자기가 뭘 잘못한지도 모르고 시종일관 미안하다고 고개 숙여 빌어대고… 보면 볼 수록 그 꼬인 인간관계 속에서 넘쳐나는 오해 따위에 불쾌감을 느껴, 끝까지 지켜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보는 어머니마저도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서, 과연 이런 연속극 따위를 보는 이유가 즐기기 위함인지, 고통받기 위함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뭘 원하는 걸까? 이런 연속극 따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때로 현실을 너무 단순화시켜 짜증나게 하거나, 또 저런 경우에서 처럼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서 짜증나게 한다. 물론 현실을 현실로 묘사하려면 다큐멘타리 따위를 보면 된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가지를 절대 친 것 같지 않은 저런 연속극 따위가 작가와 배우와 방송이라는 시스템까지 써서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의미는 대체 무엇인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 by bluexmas | 2009/05/09 11:55 | Media | 트랙백 | 덧글(10)
비공개 덧글입니다.
가끔 저런 드라마 보면서 답답해하고 욕하면서 계속 보시는 분들 보면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