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특선 불효자 깐풍기

불효자는, 그저 울기만 하면 되나? 그냥 불효자라면 그렇게 울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실업불효자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버이날 아침에 일어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깐풍기나 만들었다. 필요한 재료를 사러 어제 밤 늦은 시간에 이마트엘 들렀는데 평소엔 멸치며 말린 홍합 따위가 차지했던 공간이 인삼을 위시한 각종 건강보조제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면서 왠지 어버이날이라면 저런 거라도 한 상자 사다가 안겨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잠시 우울해졌었다. 그러나 그냥 깐풍기를 만들기로 했다. 굳이 중국음식 아니어도 상관은 없고 또 깐풍기 말고 탕수육도 있고 난자완스도 있고 대부분 흉내는 낼 수 있는데 왜 굳이 깐풍기를 만들고 싶어졌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 깐풍기의 레시피는 벌써 블로그에 올렸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굳이 같은 레시피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뭐 중국음식 명인들처럼 만드는게 아니라 아마추어로써 흉내만 내는 정도로 만족하고 싶으면 굳이 레시피를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튀김+소스가 깐풍기고, 튀김은 튀김옷 입혀서 튀기면 되고, 소스는 고추와 마늘, 생강, 파 등등을 볶다가 고추기름, 참기름, 굴 소스 적당히 넣고 맛술로 약간의 국물을 만들어 주면 되니까. 식탁에 내기 전에 끓는 소스에 골고루 버무려주기만 하면 되고.

그래서 이번엔 그 깐풍기를 만드는 자체보다 다른 걸 연습해보고 싶었다. 그건 바로 통닭을 사다가 직접 살을 발라서 튀김을 만드는 것.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편한게 좋으니까. 하지만 이마트 같은 곳에서 닭을 찾아보니 일단 허벅지를 포함한 다리 두 쪽에 오천원이 훌쩍 넘는다. 여경옥 주방장의 책을 참고한 첫 번째 깐풍기 레시피에서는 허벅지살이 적당히 씹는 맛이 있어서 가장 좋다고 그랬는데, 다리를 뺀 허벅지만은 따로 팔지도 않고, 또 다리 두 짝에 오천원이 넘는 가격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통닭을 찾아봤는데 일단 토막이 쳐져 있지 않은 닭은 다 백숙용이라 이런 데에 쓰기는 아깝기도 하고 또 살도 별로 없고, 그렇지 않은 닭들은 전부 토막이 쳐져 있었다. 토막이 쳐져 있는 닭이 굳이 나쁠 건 없지만, 닭 한마리의 껍질을 모두 벗기고 살을 발라내려면 차라리 토막쳐져 있지 않은 닭이 손에 쥐기 편하지, 토막이 쳐져 있는 닭은 칼을 다루기에 영 불편하다. 결국 고민 끝에 시장 닭집에 가서 한 마리 오천원짜리 중간크기를 샀다. 기억하기로 시장에서는 단 한 번도 닭을 사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망설였다. 어떤 닭집 또는 정육점의 닭들 진열 상태를 보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벌써 죽어서 머리도 잘리고 털도 뽑힌 놈들인데 무슨 상관이 있냐고 되물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멍든 닭은 별로 사고 싶지 않다. 어쨌든 닭 한 마리에 오천원이라니 싸기도 하고, 또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와 고기로 국물을 내면 두 사람이 닭죽이나 칼국수 정도는 충분히 끓여먹을 수 있는 국물이 나온다. 양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만 가지 수프의 기본 국물로 쓸 수도 있고(만들어서 뼈를 버리고 통에 담아 얼리면 적어도 한 달은 보관할 수 있다. 소스 같은 걸 만들때 쓰기 위해 적은 양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얼음처럼 얼려서 다 얼고 난 뒤 비닐주머니에 담아 놓으면 보관하기도 편하다).

그래서 싹수 있어 보이는 닭을 도마에 올려 놓고 일단 가슴쪽부터 껍질을 벗긴다. 사실 닭을 해체하는 데에도 순서가 있기는 하다. 요리프로그램을 보면 많이 나오고 유튜브에도 꽤 있다. 이상하게 지금 이 글을 쓰는 맥에서 링크를 복사해서 붙일 수 없어서 글 자체에 링크를 심지 못하고 있는데, 유튜브에 가서 ‘Butchering Chicken’으로 검색하면 닭들이 비참하게 도살당하는 비디오들 가운데 몇몇 도움되는 동영상들을 볼 수 있다. 그걸 보고 따라해도 되는데, 어차피 살만 발라낼 것이므로 대강 해도 될 것 같아서 가슴부터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발라낸 다음, 다리를 분리해서 허벅지와 다리 살을 발라냈다. 생각보다 닭이 작아서 날개에는 발라낼 살이 없었으므로 통과. 다른 동물은 모르겠지만, 닭의 경우 관절과 관절 사이를 찾기 쉬워서 해체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여담이지만, 고기를 해체할 때 쓰는 칼은 ‘Boning Knife’라고 끝이 갈고리처럼 뾰족하게 올라와 있고, 과도와 식도의 중간 정도 길이에 날이 그 두 칼들보다 얇아, 뼈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거나 뼈에서 살을 긁어 내는데 편하도록 되어 있다. 대학시절 자취를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해서 언제나 사람들이 그 칼을 가지고 돼지나 소를 해체하는 것을 창 너머로 보곤 했다. 도살은 안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도축된 동물들이 올라오면 마장동에서 부위별로 해체, 가공해서 식당으로 넘기니까. 기억하기로 현업종사자들은 그 작업을 ‘깐다’ 고 표현했다. 이를테면 ‘오늘 돼지 다섯 마리 깠어’ 뭐 이런 식이었던가? 어느 골목에서는 고깃배가 들어오고 큰 고기들이 팔린 뒤 그물에 붙은 잡어들을 모아서 파는 할머니들처럼 뼈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고기들을 긁어모아서 대접에 담아 파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어째 닭이 너무 작다 싶었는데, 살을 발라내고 나니 너무 없어 보여서 이걸로 4인 가족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그러나 튀겨놓고 나니 튀김옷을 입어 양이 꽤 불어났다. 튀김옷은, 레시피마다 달라서 계란을 쓰라는 데도 있고, 물에다가 전분만을 쓰라는 데도 있는데 시간이 많으면 얼음물에 찹쌀가루만 녹여 써 보려다가 일단 앙금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계란을 풀었다. 자식의 옷을 입고 튀겨지는 부모라니 어째 좀 이상하지만, 맛 좋으면 그만이니까 통과(같은 맥락에서 오야꼬동 역시…).

일단 그렇게 튀김옷을 입혀 한 번 튀기고, 본가에 가져가 상에 내기 직전 다시 한 번 살짝 튀겨서 양념과 섞었다. 참고할 만한 다른 레시피까 있을까 블로그들을 뒤져보니 쓴 기름의 온도를 더 뜨겁게 올려서 두 번째 튀김을 하라고 얘기하던데, 알기로 한 번 튀긴 기름은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처음 튀길 때 섭씨 170-180도 정도로 뜨겁게 한 기름을 쓴다면, 일단 그렇게 다 튀긴 기름을 다시 가열해도 180도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는 것, 언젠가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다. 일단 기름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무엇인가를 튀긴 기름에는 불순물이 섞여있으므로 온도가 더 올라갈 수 없는 것인가? 하여간 고민말고 새 기름을 더 섞으면 온도가 올라간다. 어차피 닭 한 마리 정도 튀긴 기름이면 많이 줄어들어 있어 기름을 보충해줘야만 한다.

맛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던 가운데 비상용으로 산 이금기 팬다 굴소스가 영 골치거리였다. 그냥 기억만 믿고서는 굴소스를 안 샀는데, 만들기 직전에 레시피를 다시 확인하니 굴소스가 필요했던 것… 부랴부랴 집 앞 수퍼마켓으로 달려갔는데 오직 이금기 굴소스 밖에… 우리나라 상표로 굴소스들이 꽤 나오니까 웬만하면 쓰지 않았을 것을, 어쩔 수 없어서 샀지만 그 인공적인 냄새며 맛에는 정말 거부감이 일었다. 뭐 중국음식에 조미료맛은 필수니까 이금기가 정석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불효자는 그냥 울면 될 것 같은데, 실업 불효자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깐풍기를 만들었다는 오늘의 얘기, 참으로 눈물겹구나?

그냥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닭고기를 사려고 돌아보니 이 시골촌동네 이마트만 그런지 다른 곳도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조리하기는 무척 간편하지만, 사실 뼈도 껍질도 없이 깨끗한 닭가슴살은 조리를 해도 정말 아무런 맛이 없다. 맛이 사실 살보다는 지방에 깃들어 있는데, 뼈도 바르고 껍질도 떼어내서 그 근원을 없애버리면 가뜩이나 지방 하나 없는 닭가슴살에 맛 따위는 없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오래 조리한다면 장담하건데 채 반도 먹기 전에 쏠린다. 다이어트 하는데 도움된다고 그렇게 구운 뻣뻣한 닭 가슴살 먹다가 토하면서 눈물 흘린게 어디 하루 이틀이랴… 조리하고 떼내어 버리는 한이 있어도 뼈나 껍질이 붙은 녀석들을 사는게 더 좋다. 별 차이가 안 날 수도 있지만 그 뼈와 살을 발라냈기 때문에 붙은 가공비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저녁을 먹고 텔레비젼을 보니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어머니들이 하나 같이 ‘어버이날 선물로는 현찰-또는 상품권이 최고!’ 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우리 부모님도 사실은 그런데 내색을 안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0.3초간 했다.

 by bluexmas | 2009/05/08 22:58 | Tast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9/05/09 00: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09 10:12

사실은 닭에서 살 발라내는게 오징어 손질이랑 별로 다를 다 없더라구요. 오징어는 껍데기 벗기는게 가끔 짜증나는데, 마른 수건으로 문지르거나 손으로 대강 비비면 떨어지죠. 저도 닭가슴살을 싫어하지는 않는데, 너무 오래 조리하면 뻣뻣해지는 게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