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어 오덕

그저께 친구를 만나 오산 역 앞에 있는 두 마리 만 오천원짜리 광어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워낙 회가 잘 받는 체질이 아니고 소주 안주에 찬 회라니 오바이트의 지름길을 걷고 있던 셈이었지만 뭐 그날은 그럭저럭…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니어서 손님도 거의 없었고, 거기에 장단을 맞추려고 그랬는지 광어도 많지 않아서, 친구와 내가 처음 주문한 두 마리를 다 먹었을 때 수조에 남은 광어라고는 딱 두 마리. 나는 워낙 회를 잘 안 먹으니까 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지만 친구는 사정이 달랐는지 주인아저씨를 불러 남은 두 마리를 회쳐달라고 얘기해는데, 아저씨가 그 남은 두마리 팔기를 거부했다. 아아니 왜요? 나보다 술이 약해서 일찌감찌 얼큰하게 달아오른 친구는 어이가 없었는지 아저씨에게 따지는 어투로 물었는데, 아저씨 왈 한 이삼일 수조에서 노는 걸 보고 있노라니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한테 정이 들어서 차마 팔지를 못하겠다고…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어이가 없어져서, 그럼 다른 한 마리라도 팔으시라고 따졌더니 그럼 정들어버린 한 마리가 외로움을 탈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내일 새벽에 새 고기들이 들어오는데 그럼 팔으시겠다는 말씀을… 그 얘기를 들으니 왠지 술맛이 딱 떨어진데다가 어차피 안주도 없으니 술도 더 먹기 뭐해서 친구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친구의 아저씨 광어 오덕이에요? 요즘 세상에 오덕이 많다지만 세상에 광어 오덕도 있을 줄… 이름도 붙였겠네? 라는 비야냥거림에 아저씨는 소주 한 병 값 빼줄께, 라고만 말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카드도 안 받아서 현금을 대강 나눠서 계산하고는 가게를 나서는데 담배연기를 뿜는 소리에 섞여 아저씨의 탄식이 들렸다, 빌어먹을 정 때문에.

 by bluexmas | 2009/05/04 23:28 |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felix at 2009/05/04 23:31 

아. 정말 초현실적인 이야기네요.

 Commented by december at 2009/05/05 01:16 

한참을 웃었어요. 큭.

 Commented by zizi at 2009/05/05 02:03 

헐; 뭐죠?;;;

 Commented by 유 리 at 2009/05/05 06:26 

…주인 아저씨가 좀 재밌는 분이시네요. 음;;

근데 광어 오덕이라니;;; 친구분도 재밌으신데요?;

 Commented by starla at 2009/05/05 09:19 

광어를 수백 마리는 회치셨을 분이 정 들어버린 녀석은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05 11:10 

felix님: 정말 초현실적인 이야기죠? 믿거나 말거나라고나 할까요…

december님: 즐거우셨다니 다행이에요^^ 바다 건너에서 좋은 소식은 오고 있나요?

zizi님: ‘허구’ 라고 하죠^^

유 리님: 뭐 이거에 오덕, 저거에 오덕 하다 보면 결국 광어 오덕도 나오는 모양이에요… 허구동산에 사는 친구는 광어를 더 못 먹어서 까칠해진거겠죠^^

starla님: 다음에 가면 물어보고 후속 포스팅 할께요. 허구동산 광어나라라고, 광어 두 마리에 만 오천원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