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변장려대사
900번째.
으음? 추운 겨울 밤이었다. 전철이 막 미금역을 떠나려는 찰나, 뱃속에서 무엇인가 움찔했다. 그렇다, 자연이 나를 부르고 계셨다. 이 밤에? 굳이 자랑거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일일 일회의 규칙적인 삶을 지난 십 여년 간 영위하고 있었다. 시간대는 언제나 아침, 일어나자마자 물을 한 컵 마시고 컴퓨터를 켤 때 쯤이면 언제나 자연은 나를 부르시곤 했다. 그건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시절 부터 계속되어 왔던 부모님의 ‘무조건 아침’ 훈련 덕분이었다. 나는 언제나 아침을 먹어야만 했고, 또 집을 나서기 이전에 반드시 화장실에 들러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단백질보다는 섬유질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식단을 영위한 덕분에 때로 등교 이전의 배변의식에는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서 바지를 까내리고 쭈그리고 앉는 재난을 피하려면 집을 나서기 전에 무조건 처리해야만 했다. 고등학교에나 가서야 수세식 화장실을 쓸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열악했던 바, 하루가 멀다하고 넘치는 화장실은 차라리 재래식보다도 못할 때가 많았다. 빠지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넘치는 물에 옆 칸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완전 무방비 상태로 발목까지 적시는 재앙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없었으니까. 하루 최소 열 다섯 시간 이상을 보내야만 했던 학교에서 본의 아니게 큰 일을 치뤄야 될 상황이면 나는 언제나 전전긍긍해서 시원하게 거사를 치를 수 없었다.
어쨌든, 커피가 원인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누군가와 저녁을 같이 먹고 에스프레소 좋아하신다면서요? 라는 말에 이끌려 갔던 카페에서였다. 단 한 번도 커피와 장운동과의 관계를 밝힌 자료를 찾아본 적은 없었지만, 커피를 많이 마시면 나는 언제나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부르심을 받곤 했다. 그날도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전철의 역간 평균 운행 시간은 2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늦은 밤이고 종착역이라 그런지 열차는 더디게 굴러갔다. 나는 아주 약간 다급함을 느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 정도로 버틸 수 있는 상황, 괄약근에 약간 힘을 주니 마음이 곧 편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 쓰고 마지막 남은 한 쪼가리 휴지와 같이 사소한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보정역은 초행이었고, 따라서 화장실의 위치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일일 일회의 규칙적인 삶을 영위한 나였지만, 규칙에는 언제나 예외가 제대로 안 씹어먹은 콩나물을 소화기관과 바깥 세상의 분기점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형태로 만나는 것처럼 딸려 있는 법. 종종 벌어지는 이날 밤의 것과 같은 돌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나는 잘 가는 지하철역의 화장실 위치라던가 청결도가 특히 뛰어난 역의 화장실 등등을 기억해왔는데, 보정역의 상황에는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 긴장에 힘 주고 있던 괄약근이 아주 살짝 느슨해지려던 차, 열차는 역에 도착했다. 문 바로 앞에 서 있다가 뛰어가고 싶은 마음 정말 간절했지만, 뛰면서 힘주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나는 끝까지 괄약근에 힘을 꼭 준채, 플랫폼 아랫층 계단 바로 옆에 위치한 화장실에 도착, 오백원짜리 동전을 투입해 휴지를 산 뒤 발을 들였다. 이쯤에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긴장을 늦추겠지만, 그렇게 긴장을 늦췄다가 화장실의 상태가 자연의 부르심에 응할 수 없을 만큼 나빠 낭패를 꽤 자주 봤던 경험은 나의 마음, 그리고 괄약근을 다잡았다. 개선문 거리의 맥도날드를 생각하자 느슨해지려던 괄약근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인간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화장실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아서, 나는 그중 가장 양호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칸에 들어서서 가방과 외투를 걸고, 바지를 내린 뒤 쭈그리고 앉았다. 아랫쪽의 고리에 먼저 가방을 걸고 윗쪽의 고리에 외투를 걸었는데, 그날따라 가방에 내용물이 많아서 외투가 제대로 걸리지 않았으므로, 쭈그리고 앉는 나의 마음은 그렇게 느긋할 수 없었다. 사실 양변기가 아니라면 자세와 돌발적인 튐의 우려 때문에라도 그렇게 느긋할 수는 없었으니, 나는 아쉬웠다. 그러나 마음이 조금이라도 느긋해질 수 있는 다음 목적지까지는 너무 먼 길이었다.
그렇게 화장실 문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가방과 외투 말고도 나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들은 화장실 벽에 가득했다. 전형적인 화장실의 낙서들-한편으로 너무나도 뻔해서 굳이 언급하고 싶지도 않지만, 막상 심심함을 느낄 때 없으면 조금은 섭섭한-과 신장상담, 그리고 휴대전화번호. 나는 신장상담 전화번호를 볼 때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의 생물강사 생각이 났다. 나는 신장이 세 개에요, 유전이라고 그러더라구요. 아빠도 세 개, 나도 세 개. 그 얘기를 듣고 짓궂은 누군가가 공책의 표지에 하얀 색 수정액으로 크게 ‘신장 세 개’ 라고 써서 냈었지. 신장이 세 개면 하나쯤 팔 수 있을까? 그리고 정면 벽, 쭈그리고 앉은 눈 높이에 붙어 있는 스티커가 마지막으로 그의 눈길을 끌었다. 쾌변, 인생활력의 제일요소입니다. 쾌변장려협회, 1588-34#0.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쥐색정장차림의 남자 상반신. 쾌변장려대사 김##.
가만, 이 남자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정말 어디에서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쭈그리고 앉은 채로 기억해보려 했지만, 남자에 대한 흐릿한 기억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쾌변장려협회, 라는 단체의 명칭 또는 존재에 더 신경이 쓰였다. 쾌변장려협회, 라니? 화장실이라면 사단법인 한국 화장실 협회가 실권을 잡고 있지 않나?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 단체는 화장실에 초점을 두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협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배설행위 그 자체, 그러나 어떻게? 그가 협회 존재의 이유보다는 존재 가치의 달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할 찰나, 남자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남자는 두 살 어린 동생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저기요, 오늘 정호 생일이라고 선물 샀는데 저 가도 돼요? 초대를 안 했는데 오겠노라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고, 어린아이가 당돌하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어쨌든 그 당돌함이 원동력이었을까, 그는 그 나이때부터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했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몇 아동복 광고나 드라마 같은데 얼굴을 비췄다고 들었다. 그리고 몇 년 쯤 지나 우리나라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단막극에 때때로 얼굴을 비췄지만 그렇게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는데, 일단 그의 이목구비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배우의 그것으로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범한 인상이었고, 그런 평범한 인상은 세월을 거듭할 수록 더 평범해져만 갔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으므로, 등하교길에 그를 먼발치에서 볼 일이 몇 번 있었지만 평범하다는 느낌은 늘 그대로였다. 모두가 ‘스포츠머리’ 라고 일컫던, 앞머리만 조금 남긴 까까머리를 하고 다녀야만 했던 그 시절에도 그는 연기를 한다는 이유로 머리를 길렀지만 그의 머리가 길거나 짧거나, 그의 모습을 매체에서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도 인기가 별로 없는 배우였다.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놀랍게도 공중파 방송극의 주말 연속극에서였다. 구십 년 대 중반이었나? 사업밖에 모르던 남자가, 충실하게 내조-라는 말 따위를 내 입으로 담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하지만 굳이 설정을 설명하자면-하던 부인을 잃은 후 사업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나가느라 갈팡질팡하다가 새장가 따위로 그 갈팡질팡의 보상을 받는다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의 연속극이었는데, 그는 남자의 삼남매 가운데 둘째, 큰 아들이었다. 나는 워낙에 연속극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그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몇 회 정도 어머니의 옆에 앉아서 지켜보다가 관심을 접었으므로 그 연속극에서 그가 어떤 연기를 보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연속극이 끝난 이후 그가 다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잊혀졌다.
으음? 엉덩이에 닿는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집의 화장실이라면 모를까, 공중화장실, 그것도 지하철 역의 공중화장실은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에 후각적으로 그리 유쾌하고 편안한 장소는 아니었으니 기억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온 나의 코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뒷처리를 한 뒤 일어나 바지를 추켜 올렸다. 물을 내리기 전,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거의 다름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직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인 법… 그렇게 세월의 흔적이 묻은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범해서 어느 누구라도 그가 한때 배우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듯 싶었다. 게다가 지금 그의 직업이 믿거나 말거나,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쾌변장려대사라면.
꽤 추운 겨울 밤, 그로부터 작별을 고한 나의 산물은 변기속에 나름 얌전히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마치 나의 산물로부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그렇게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콧구멍으로 스멀스멀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환상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점심에 뭘 먹었더라? 아하, 그러고 보니 그날 점심은 숯불 꽃등심이었다. 어른을 만나 점심을 얻어 먹을 일이 있었다. 그래도 꽃등심이라면 그 냄새도 그럭저럭 즐길만하지 않을까? 일인분 이백그램에 오만원이었는데. 나는 물을 내렸다. 대체 그게 어떤 삶의 길을 걸어 공중파 연속극으로부터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궁금했지만, 나의 쾌변생활에는 장려대사까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변기를 흐르는 물에 그에 관한 궁금증도 함께 씻어 흘려 보냈다. 그래도 직함이 대산데 돈은 넉넉하게 벌지 않겠어? 화장실 문을 나서는데 역시 배설 이후 체온이 내려간 것인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외투 깃을 여미며 단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두 개의 큰 불빛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냄새나는 밤이었다.
# by bluexmas | 2009/05/02 14:28 | —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