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째
그제 그 #같은 나초를 쳐먹고 비몽사몽간에 내 집으로 와 자빠져 잔 뒤, 나는 이 곳으로 옮겨왔다. 두 양반은 집에 아무 것도 없이 휑덩그렁해서 지내기 불편할테니 더 있다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들 하셨지만, 그럴 수록 나는 좀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갈등의 싹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어제 냉장고가 들어와서 일단 음식 보관에는 문제가 없어졌고, 같이 샀으나 소식이 없는 세탁기를 기다리고 있다. 빨래 돌리려고 벌써 형광 물질이 안 들어 있다는 유한양행의 액체 세제까지 사다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왜 소식이…
집은 참 마음에 든다. 돌아보니 오산은 굉장히 작은 동네, 부모님이 늘 가시는 이마트는 걸어서 10분, 10분을 더 걸으면 오산역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5분만 더 걸으면 재래시장일 듯. 할머니가 늘 떡이며 다식, 한과 등등을 명절마다 손수 만드셨던 덕분에 그런 종류의 음식에 굉장히 까다로운 우리 가족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떡집이며 뻥튀기를 파는 노부부도 있고, 직접 쑤어서 판다는, 도토리가루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를 품는 엄마를 호되게 꾸짖는 할머니한테서 샀던 도토리 묵도 맛있고…
뭐 알고 보면 그런 건 정말 중요한게 아니기는 하지만. 게다가 서울에 가는 게 정말 행차스럽다고 느껴질만큼 힘들어서 조금은 문제. 덕분에 어디 나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이 나이에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걱정이…
어쨌든, 이제 혼자 지내게 되었으니 빨리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요즘 나오는 방울 토마토가 정말 맛있어서 이걸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이 물론 너무 맛있기는 한데, 그렇게 너무 맛있다 보니 주체할 수 없이 먹고 매끼 후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교도소에서처럼 1식 3찬을 준수해왔던 나에게 1식 10찬의 밥상은 좀 버겁다. 백수라고 살까지 찌면 정말 곤란하지 않겠나…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방금 부모님 댁에서 맛있는 떡과 밥풀과자 등등을 한 꾸러미 들고 들어왔다. 나 어쩌면 좋냐 OTL
# by bluexmas | 2009/04/23 23:35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