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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 토스터는? 일주일도 넘게 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쓰다 보면 그냥 토스터 보다는 오븐 토스터가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훨씬 쓸모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쓰던 건 돈을 들여 바다까지 건너게 하기에는 너무 낡아서 가져갈 마음이 선뜻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새거를 사자니 오래 써서 더러워졌다는 사실을 빼놓고서는 멀쩡한데… 오븐 토스터만큼 가격의 차이가 심한 가전제품도 어쩌면 찾기 힘들 것이다. 17불 짜리 가장 단순한 것부터 500불 짜리 온갖 기능이 다 갖춰진 것들까지. 그러나 사서 썼던 것은 17불 짜리였고 새로 살게 될 집에는 오븐이 있다고 들었으니 설사 새거를 사더라도 그것보다 더 비싼 것이 필요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일주일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더 길게 망설이다가 그냥 쓰던 걸 가져가야 되겠다, 라고 마음을 먹고 비닐 봉다리에 토스터를 담는 순간 손잡이가 뚝, 떨어져나갔다. 4일 토요일 아침 여덟시였다. 나는 그 전날 오전 GRE를 보고 저녁때 까지 필요한 것들을 사느라 돌아다니고 나서 밤새 짐을 챙기고 있었다. 토스터는 마지막으로 가져가기로 결정한 물건이었는데 결국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급하게 우리나라 온라인 상점들을 몇 군데 찾아보았으나 쓸데없이 비싸기만 했다. 결국 월마트로 차를 몰아 처음부터 눈독들이고 있었던 18불 짜리를 사가지고 오자 짐을 싣기 위한 컨테이너가 집 앞에 막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언제나 시간에 민감해야만 하는 이사의 특수성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사하다가 뒷통수를 얻어 맞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나만해도 3년 전 이 집에 이사올 때 어이없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으므로 이번의 이사에도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또 꼼꼼하게 일을 잘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도 가져가실 건가요?’ 라는 물음에 편하게 대답하기 힘들었다. 내 돈을 주고 부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일에 사람을 부리는 건 나에게 어째 불편한 일이다. 언제나 나에겐 나보다 험한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아주 쓸데 없는 미안함 따위가 있으므로. 그건 그 사람들의 삶이고 이건 내 삶이니 그들은 그렇게, 나는 또 이렇게 사는 것인데 어째 나는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왔고 또 그래서 이 사람들을 부린다는게 왠지 사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나 역시 그렇게 편하게 살아왔던 사람도 아니고 또 그렇게 정말 편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늘 그렇게 사람들을 부려 버릇해서 이런 일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꽤나 오래 전이었음에도, 그래도 나는 불편함을 느꼈고 따라서 짐을 싸는 과정이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짐은, 꽤 많았다. 사장이라는 사람이 견적을 낸다고 와서 짐이 별로 없다고 말했을 때에도 나는 사실 별로 믿지 않았었다. 벽장을 열어 책이며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 보여줬음에도 그는 그랬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싸 놓고 보면 꽤나 많을 것이라고- 그리고 짐이 반쯤 상자에 담겨지고 나서야 사장은 아, 생각보다 짐이 훨씬 많은데요 라고 얘기했다. 네에, 제가 그래잖아요. 그래서 뭐 세 시간이면 끝낼 것이라고 얘기했던 과정은 저녁 여섯시나 되어서야 마무리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짐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은 착잡했다. 뭐가 저렇게 많은 걸까… 짐을 줄여야 되겠다고 나름 열심히 버리고 또 팔았음에도 짐은 여전히 많았고 나는 대체 지금의 내 상황에서 뭔가 저렇게 많아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혹이 많이 달린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가져갈 짐을 싸는 만큼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쓰레기 처리 업체를 불렀는데 정말 미니카 만한 트럭이 와서 짐을 싣고는 300불을 불렀고 나는 버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을 써야 된다는 이 현실에 두 배의 죄책감을 느꼈다. 정말 속이 쓰렸다.

짐이 다 나가고 나서, 나는 며칠 동안 쓰다가 버리고 오려고 따로 남겨둔 이불과 베개 대용의 쿠션을 덮고 또 베고 아무 것도 없는 집의 카펫 바닥에 누웠다. 시간은 일곱시 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며칠을 빈 집에서 지내다가 마지막 날에나 공항 근처의 모텔에서 자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 수퍼마켓으로 육개장을 사러 갔다가 저녁으로 먹을까 사왔던 만두를 붙박이 전자렌지에 데워 맥주와 함께 먹고, 적당한 술기운과 전날의 밤샘의 도움이라면 일단 그 날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일단 어둠이 깔리자 무엇인가 물건들이 들어차 있었을 때에도 적당히 을씨년스러웠던 집은 진공의 느낌으로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나는 곧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맥주를 한 병쯤 더 마시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얼른 한 병을 더 비우고 그 술김에 삼십 분인가를 깜빡 졸다가 깨고 나니 완전히 어두운 집은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살면서 느꼈던 그런 느낌의 공간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하나씩 등을 돌리기 시작해서 그 마지막이 이 집, 내가 그래도 나름 행복하게 살아왔던 이 집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공의 느낌 사이로 하루 종일 들락거렸던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피곤함 때문이었는지, 나의 몸은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 여기에서 있다가는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꼭 필요한 짐만 주섬주섬 챙겨서는 집을 빠져나와 늘 영화를 보러 다니던  쇼핑몰을 오며가며 보던 모텔로 향했다. 시간은 열 시 오 분 전이었고, 나는 만두와 맥주에도 허기를 잠재울 수 없어 집앞 공원 상가의 햄버거 집에 들러 마지막 손님으로 치즈 버거를 사서는 먹으면서 다시 차로 향했다. 차문을 열었을 때, 손은 온통 고기 기름 범벅이었다.

 by bluexmas | 2009/04/10 10:01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9/04/10 10: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4/12 09:52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