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줄이기

WBC 중계를 보면서 씨디장에서 씨디를 꺼내 알맹이는 앨범에 담고 껍데기는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씨디들이 mp3로 추출 되어서 아이팟에 담겨져 있으니, 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400장을 넘어가면서는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다. 그래도 음악은 쉽게 디지탈화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부피를 줄일 수 있지만, 책은 그게 불가능하다. 지난 한 달 동안 책을 정리하면서 눈 딱 감고 꽤나 많이 버렸음에도 싸가지고 돌아가는 짐 가운데 책이 1/3은 차지할 것 같다. 매달 그림만 휙 넘겨보고 쌓아놓는 건축잡지 따위는 매달 필요한 부분만 스크랩을 해 놓았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부피는 엄청나니 짜증나는 김에 그냥 싹 다 버리고 싶지만 또 그러자니 아주 약간 뭔가 마음에 걸리고(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노라니 그냥 버려야겠다는 쪽으로 자꾸 기울고 있다…)…

사실은 별 것 아니지만, 이렇게 씨디 껍데기라도 꾸역꾸역 버리는 건 언젠가 초라하게 나마 가지고 있던 씨디나 책 따위를 벽에 빽빽하게 채운 집 따위를 꾸리고 살겠다는 바램, 아니 욕심을 버리는 의식에 가까운 행위이다. 책이나 씨디 따위를 모으기 좋아하면 다들 책장 같은데 그런걸 빽빽하게 채우고 살고 싶다는 욕심 역시 부록처럼 가지게 마련이다. 때로 사람들은 그렇게 모은 책이나 씨디 따위의 내용을 접함으로써 얻은 무엇보다는 그렇게 눈으로 보는 물질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거나 경의를 표하기도 하니까. 아니면 모으는 사람조차도 그걸 과시하기 위해 모으기도 할테고. 어릴 때 읽었던 어떤 동화에서는 그런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장식을 위해 양장본 책들을 질 단위로 사들이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저녁 내내 씨디를 뜯어서 열심히 껍데기를 추려 냈지만, 이건 그냥 새발의 피일 뿐이고 내 한 몸을 위한 것들임에도 짐이 너무나 많아서 대체 난 뭐하는 인간이길래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한 것일까 고민스러운 밤이다.

 by bluexmas | 2009/03/24 14:01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9/03/24 18: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3/25 13:33 

그러게 욕심 따위는 부리고 싶지 않은데 이건 꼭 필요해, 라고 생각하는 것만 모아놓아도 엄청나게 욕심 부린 것이더라구요.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