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조용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애로부터 단체 메일 비슷한 걸 받았다. 철수(가명)랑, G랑 J 생일이 곧 다가오는데 다 같이 모여서 파티하자! 라고. 그런데 나는 정말 그 여자애가 누군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다른 애칭으로 불리는 J의 여자친구라는 걸 알았다. 다른 친구 M이 가자고 그랬는데 ‘응 생각해 볼께’, 라고 대답하고는 금요일에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애초에 갈 생각이 없었다. 내 이름까지 걸고 정말 파티를 하려고 한 것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가봐야 내가 없어질 건 뻔하니까. 아니 그것보다 너무 멀어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니까. 혼자 집에서 마시는 술이 더 맛있게 느껴진지는 정말 꽤나 오래된 일.
2. 생일 하루 전날이 회사에서 잘린지 두 달이 되는 날인데, 나는 M선배와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이 없다. 무슨 서류 따위를 받으러 갔던 날 얼굴이나 볼까 전화를 했었는데 끊어졌고, 그 뒤로 다시 전화가 오지도 않았다. 물론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사람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연락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나는 할 얘기가 없어서 연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고 싶지 않다. 같이 잘린 동갑내기 한국 여자 직원 K도 전화를 한 번 했었는데 안 받았다. 뭐가 궁금한데?
3. 그리고 그 동안 머리도 한 번도 안 잘랐다. 미장원 아주머니한테 회사 잘렸다는 얘기는 했는데, 그 뒤로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서…’아 이제 저 한국 돌아가는데 그동안 머리 잘 잘라주셔서 감사해요’ 라는 얘기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잘 잘랐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별로 없으니까. 두달 동안 안 잘랐더니 머리가 좀 길기는 길었구나.
4. 일했던 팀장 J가 최근 새 집으로 이사해서, 가구 따위를 헐값에 넘겨볼까 연락을 했었는데 이런 저런 것들에 관심이 있으니 치수를 좀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준 뒤로 연락이 없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사견적을 내보고 그렇게 넘기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차라리 가져가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에게는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다. 작년에 사서 대여섯 번 쓴 잔디깎는 기계 쯤은 그냥 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다가 팔아야 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5. 매주 업데이트 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던 소장 M은 정말 메일을 보내도 아무런 말이 없다. 진짜 궁금해? 정말? 바빠서 답장 못했다 이런 얘기는 듣고 싶지도 않다. 아니, 회사에 일 없는거 다 아는데 무슨 일을 하느라 그렇게 바쁘실까나…? 차라리 솔직하게 그냥 관심 없다고 하는 말하는게 듣고 싶다. 사실 난 회사 사람들한테 관심 정말 없거든.
6. 어차피 연락할 사람도 없고 해야될 필요도 없어서 가족이나 나를 알면서 블로그에 오는 사람 말고 아무에게도 연락할 계획이 없다. 집도 일부러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구했다. 쳐박혀 있고 싶어서. 친척들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친척이 친구보다 못한 세상에 친구도 별로 없는 내가 친척은 뭐 또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해야 될 이유가 있나.
7. 그저 조용히 떠나서 조용히 돌아가고 싶다.
# by bluexmas | 2009/03/23 13:09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