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일기(22)-1불 짜리 축복

회사는 안 다녀도 매주 먹는 쌀국수는 빼놓지 않는다고… 점심을 먹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는데 키가 190 센티미터 쯤은 될 법한, 50대는 족히 된 남자가 다가와서는 구걸을 했다. 차림새로 보아 구걸밖에는 할 게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어 놓았고, 사람이 없는 그 구석에서 그와 나,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구걸하는 사람을 한 둘 맞닥뜨려왔던 것도 아니고 덩치가 크다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너무나 빤히 마주 대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그냥 돈이 없다고, 저리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갑에서 딱 한 장 남은 1불 짜리를 꺼내서 건넸고, 그는 ‘God Bless You’, 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에게든 또 어떤 상황에서든, 설사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축복 따위라면 두 손으로 받아서 주머니 속 어딘가에 고이 모셔두고 싶은 게 요즘의 상황이긴 해도, 그게 1불 짜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약발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그 혹은 신의 축복을 그냥 주차장에 먹다 버린 콜라컵 처럼 슬며시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떴다. 긍정적인 것은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해서 그런 것까지 집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1불 짜리 축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런 난세에서는, 어디에서든 그 누구에게든. 물론 1불 짜리 축복이라도 어떻게든 챙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기는 했지만…

회사와의 알랑한 끈이 끊긴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연락을 주고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존재의 인식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나처럼 쓸데없이 민감한 사람의 정신건강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무슨 네트워킹 행사 따위가 있다고 나처럼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에게 전체메일이 돌았는데, 또 그 답장마저 다들 전체메일로 열심히 돌리셔서 30분 간격으로 대여섯통의 메일을 받고는 쓸데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뭐 그런거다. 이봐요, 이제 더 이상 나를 좀 그 울타리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오늘은 그런 애들 가운데 누군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아파트를 인수할 사람이 없냐고 메일을 돌렸다. 요즘 같은 상황에 정말 아파트가 나갈 것인지 그것도 알 수 없지만, 과연 자기처럼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 가운데 ‘어 네 아파트 내가 세 들어 살게’ 라고 할 만한 사람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그걸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전체답신 버튼 눌러서 몇 줄 쓰는 걸로 이런 상황에 아파트 따위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naive함이 사태 해결의 원동력이라면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 뭐, 사실은 내가 쓸데없이 민감한 것이겠지, 나도 잘 안다.

이제 짐을 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어려운 건, 짐 자체를 싸는 그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정확하게 어떤 계획을 세워서 뭘 당장 들고 들어가고 또 뭘 그냥 놓아둘지, 또 어떻게 놓아둘지 분류하는 정신적인 행위이다. 한 번 개인재난의 비가 내리고 나면 까만 스트레스의 죽순은 언젠가 사람들의 욕구를 품은 채 하늘로 뻗어 올라갔던 바벨탑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아, 아까 그 1불 짜리 축복이라도 그냥 못 이기는 척 싸들고 들어올 걸 그랬나?

 by bluexmas | 2009/02/22 10:56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