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일기(12)-Mentor, Thumbdrive, More Career Statement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전 회사를 갈 때 대체 어디에 주차를 해야 될까? 라는 것이었다. 20분에 2불이니까, 더 이상 회사 주차장에 할 수는 없고, 또 하고 싶지도 않고… 멘터와 회사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상가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운동 삼아 걸어가면 어떨까, 아니면 상가 서점에서 공부하다가 심심할때쯤 걸어서 갔다올까… 온 생각을 별 것도 아닌 주차에 집중하면서 차를 몰아 시내로 향했다. 아, 왜 기분이 촌에서 장날을 맞아 당나귀 타고 읍내로 향하는 시골 머슴 같을까. ‘올때는 장터에서 산 호박엿 먹으면서 오느라 이 길이 덜 지루할꺼야’ 뭐 이런 생각도 하는…

멘터와 만나 점심을 먹은 식당은 ‘Wolfgang Puck Express’ 라고, 항상 좀 어눌한 억양으로 영어를 하시는, 그 잘 나가는 주방장 울프강 퍽 선생이 하는 백만 식당 가운데 가장 바닥에 위치한, 그래서 퍽 선생이 백만년에 한 번 들를지 말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처음 생겼을 때에는 그래도 퍽 선생이 손은 아니어도 발로 조리한 정도의 음식을 선보였었는데, 몇 년 시간이 지난 지금은 퍽 선생도 아니고 선생의 도플갱어나 이블 트윈이 발로 만드는 음식, 그것도 엄지와 검지발가락에 칼을 끼우는게 아니라 넷째와 새끼 발가락에 끼우로 만드는 듯한 음식을 하는 그렇고 그런 장소로 전락해버렸다. 뭐 퍽선생 주말마다 초싸구려 중국산 주방기구 홈쇼핑 채널에서 팔아 쳐먹기 바쁜데 여기까지 신경을 쓰실리 만무…? 뭐 그래서 먹고 나면 ‘Wolfgang, fuck!’ 을 외치고 싶은 그런 식당, 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먹는 중국 닭고기 샐러드를 먹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샐러드를 다 주워 먹고 난 뒤 접시 바닥에 깔린 참기름을 마실 수 있을만큼 참기름을 많이 써서, 씹어 삼킨 음식이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바로 장을 미끈미끈 빠져나와 변기로 직행하는. 뭐 그런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결국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아니 이건 샐러드가 아니라 참기름을 국물로 하는 닭고기 수프였다니까.

어쨌든, 멘터와의 대화에는 아무런 알맹이가 없었다. 뭐 애초에 알맹이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모든 인간관계를 목적 지향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인간은 기회주의적인 동물로 불완전 변태하고, 삶은 위선자의 그것으로 변신한다. 그냥 나는 그를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내가 유일하게 물어본 질문 같은 질문은 “이력서랑 포트폴리오 다 만들었는데, 이걸 미국 전역의 모든 회사에 뿌릴까? 아니면 그냥 선택해서 보낼까?” 였다. 아마 엄마나 기저귀의 도움 없이 배설할 수 있는 나이의 인간이라면 답이 뭔지 알만한 질문이겠지. 한 시간도 채 못 되어서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속이 참 미끈미끈했다.

어쨌거나 오후엔 무려 공부를 했다. 시험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공부는 하나도 안 했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겹치다보니 감히 걱정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던게 사실이다. 지금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냐 하면, 거의 puff pastry 수준인데, 버터가 아닌 피범벅의 스트레스가 층층이 들어 앉은 형국이랄까? 아니 뭐 그렇다고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버리겠다 그런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아 제발 머리털만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밤마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절절히 비는 정도에 불과하다. 오늘 집에 차를 몰고 오다보니 보름이던데 차라리 늑대가 되었으면 더 행복할지도? 어쨌든, 서점에 앉아서 실직자 주제에 무려 공부를 하시다가, 다시 한 번 퇴짜를 맞은 career statement를 들여다 보았다.’ It is still massive’ 라고 그는 메일에 얘기했다. 아 그러나 그게 사실은 나의 빌어먹을 스타일이다…. 어디에서 자를지, 나눌지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것, 그래서 한 없이 길어지고 또 덩어리지는. 무려 10여년 전에 하이텔 학교 동호회에 말도 안 되는 글을 쓸때도 후배들은 ‘아 형 글은 대체 왜 그렇게 빽빽해요’ 라는 얘기를 늘 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한 줄 쓰고 또 한 줄 띄우는, 말하자면 double space로 글을 썼는데 나는 그런 것 절대 없이 빽빽한 덩어리로 보이는 단락들을 쓰곤 했으니까… 그러나 이게 뭐 나 좋자고 쓰는 글도 아니고, 전 회사로 들어가기 전에 한 시간을 들여 전체를 덩어리들로 나누고 또 그 덩어리들이 각각 완결성을 띄도록 손보고… 그러나 사실 이런 종류의 영작이라는게 나에게는 늘 셔츠 단추를 끼우는 것과 너무 비슷하게 느껴져서, 일단 어느 방향으로 쓰기 시작하면 아예 갈아 엎어서 다시 쓰기 전까지는 방향 전환이 힘든지라… 어쨌든 시간은 오후 네 시가 되어, 나는 주저없이 랩탑을 접고 나를 버린 회사로 향했다.

금요일 오후에 메일을 받았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이미지 준비가 되었으니 월요일에 주워가라고… 나의 경우 사실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내 개인 컴퓨터에 자료들을 모아 놓았다가 정기적으로 집으로 가져와서 저장해놓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일이 벌어지기 직전 몇 주 동안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 집으로 가져가야…’ 라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이런 일을 당해서… 마지막 순간의 게으름을 극복했다면 구차하게 나를 버린 회사에 손 벌리는 일은 없는데, 젠장.

어쨌든, 회사에서 좀 떨어진 근처 건물의 갓길 주차장에 위태위태하게 차를 대고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중 수요일 이후로 시내는 처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한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사람들 내보낸 회사가 하나, 둘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나처럼 교외에 집이 있어서 안 내려오면 이렇겠지… 라고 생각하고 찾은 주차공간이 공짜라는데 기쁨을 느끼며 회사로 향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건 포트폴리오를 위한 이미지들을 넣었다는 thumb drive와 회사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청구했던 자질구레한 비용 수표 가운데 하나($4.33! 오늘 먹었던 그 참기름 말은 점심 샐러드 가격의 절반이나 될까 말까 한…), 그리고 하이라이트: 사장님의 편지. ‘에 그러니까 이 사람을 자른 건 능력 탓이 아니에요, 경제가 워낙 나쁘다 보니…’ 그러나 그 편지에 내 이름조차 틀렸으면 나는 어디에 속하게 되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실업잔데 뭐 이름이 중요하겠냐만… 그리고 thumb drive엔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은 이미지가 단 하나도 없었고, 나는 그저 ‘에 뭐 니들이 그렇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능한한 빨리 회사를 나섰다. 회사 마케팅을 위한 팜플렛이라면 모를까, 나의 포트톨리오를 위한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많이 취했으므로 나머지는 내일 계속? 덧글? 내일 달게요…

 by bluexmas | 2009/02/10 16:10 | Life | 트랙백